'최악의 해' 보낸 현대차, 내년에도 '가시밭길'
입력 2018.12.13 07:00|수정 2018.12.14 09:42
    美·中 분쟁 속 속앓이, 관세 폭탄 '뇌관'
    대규모 리콜 현실화 땐 신뢰도에 '타격'
    지배구조개편·GBC·노사 갈등은 여전히 숙제
    펠리세이드·G90, 기함급 신차 '기대감'
    신차 사이클이 수익성 '반전' 계기 될 수도
    • 2018년은 현대자동차에 최악의 한 해였다. 한 숨 돌릴 틈 없이 내년에도 가시밭길은 눈 앞에 있다.

      제 1시장인 미국과 중국의 실적 부진은 이미 상수가 됐고, 두 나라 간 관세를 둘러싼 갈등은 현대차에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가 하향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신흥국의 성장세는 예전만 못하다.

      그룹 내부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는 늘어났다. 그룹 전반에 걸친 기업가치 하락에 지배구조개편의 선택지가 줄어들었다. 중국 시장에서 불거지고 있는 품질문제, 미국시장의 대규모 리콜 등 쓸 돈은 늘어나는데, 투자자들을 갈수록 더 큰 주주환원책을 요구한다. 현대차의 아킬레스건인 노사 갈등은 '광주형 일자리'를 둘러싸고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 "기저효과는 기대는 이미 끝"…2%대 이익률 고착화

      글로벌 경기호황에 힘입어 현대차가 확장세를 이어가던 시대는 저물었다. 꾸준히 지켜오던 4%대 영업이익률은 이미 2%대로 떨어져, 확실한 실적개선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사드(THADD)·대규모 리콜 사태과 같이 단발성 악재로 치부했던 이슈들은 해외 소비자들이 현대차에 등을 돌리는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한번 떨어진 기업 신뢰도(이미지)를 회복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올해는 최악이라 여겼던 2017년도의 '기저효과'를 기대했지만 오히려 실적이 뒷걸음질 쳤다. 주가는 10년 전 수준으로 회귀했다.

      일각에서 들려오는 중국 내 신차 품질 문제는 현대차 소비 심리를 더 위축시켰다. 미국에선 현대차의 세타2·GDI엔진의 조사를 진행 중이다. 현실화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문제가 된 모든 엔진을 새롭게 교체하는데 드는 비용만 8조원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도 거론된다. 조사 결과에 따라 리콜 규모가 확장되면 추가 비용 발생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 사이에서 '가성비'로 승부를 봤던 현대차에 대한 신뢰도에도 큰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수입하는 자동차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은 현대차 수익성에 큰 부담이다. 미국과 중국은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지만, 현대차와 협력 부품사들은 중간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전세계적으로 자동차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한 가운데 현대차가 현재의 실적을 완벽히 끌어올릴 요인은 사실상 없다고 본다"며 "관세문제, 리콜과 같은 해결되지 않은 대외 변수가 산적해 있기 때문에 현재의 수익성 방어가 가장 시급한 문제다"고 했다.

      ◇ 돌아오는 신차 사이클에 기대…"펠리세이드 앞세워 내수부터 회복"

      현대차가 하반기 내놓은 신차의 반응이 상당히 좋다는 점은 내년을 기대해볼 만한 요소다. 전세계적으로 초대형 스포츠유틸리티(SUV) 시장이 확대함에 따라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국내 시장에서도 대형 SUV를 선보이고 있다. 현대차는 11월 말 기함급 SUV '펠리세이드'를 공개했는데, 소비자들은 글로벌 메이커에 비교해 '가성비'에 높은 점수를 매기고 있다.

    • 2018년 출시한 현대차 기함급 SUV 펠리세이드(좌)·세단 최고급 라인업 제네시스 G90(우) 이미지 크게보기
      2018년 출시한 현대차 기함급 SUV 펠리세이드(좌)·세단 최고급 라인업 제네시스 G90(우)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신차가 출시되면서 유사 등급의 SUV 구매를 고려했던 소비자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돌려세울 수 있을 것이란 평가도 있다. 이 같은 가격 정책은 현대차가 침체한 내수 시장을 먼저 회복하겠다는 의지로도 풀이된다. 경쟁 강도가 국내 시장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해외시장에서 펠리세이드의 안착 여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SUV에서 펠리세이드가 앞장 선다면, 대형 세단부문에선 제네시스 브랜드를 단 G90에 거는 기대가 크다. 다만 대형세단은 수익성은 높지만 수요가 한정돼 있는 탓에 현대차의 상황을 반전시킬만한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있다.

      현대차의 신차 사이클은 대표적인 플래그십 모델 '소나타'로부터 시작된다. 내년 3월경 소나타 풀체인지 모델이 발표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연이어 등장할 3~4개 모델의 신차 판매 성과가 현대차의 수익성 회복에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현대차 성장의 발판이 늘 '기아차'라는 점이다. 펠리세이드 판매 확대는 현대 싼타페와 기아 모하비·카니발의 수요 층을 흡수해야 한다는 점이 전제로 깔려있다. 기아차는 올해 K9을 출시했지만, 기함급 G90의 등장으로 성장세를 이어가기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글로벌 매체들은 현대차의 수상 소식을 전했다. 영국 자동차 전문매체 BBC 탑기어 매거진은 현대차를 '올해의 자동차 메이커'로, 독일의 아우토빌트는 'i30N'을 '올해의 스포츠카'로, 미국 모터트렌드는 제네시스 G70을 '올해의 차'로 선정했다. 현대차는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외신들의 이 같은 호평은 분명 축하할만한 일이지만, 이 같은 호재에도 불구하고 판매부진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은 현대차가 깊게 고민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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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Topgear)

      현대차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사실 현대차가 다양한 라인업을 갖고 있고, 품질도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크게 뒤쳐지지 않으면서 '잘 만든다'는 인식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브랜드 이미지가 워낙 약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판매와, 이에 따른 실적 향상으로 연결되지는 못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현대차는 '제네시스'를 앞세워 고급브랜드 이미지를 굳힌다는 전략도 내세우고 있다. 제네시스가 글로벌 시장에 안착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다.

      ◇ 지배구조 개편·GBC 건립…불확실성 제거한다면 '기회' 될 수도

      이르면 내년 시작할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편은 마지막 도전에 가깝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현대차와 손해 볼 수 없는 투자자들의 줄다리기는 계속되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차를 '모빌리티 전문 기업'으로 변모 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정 부회장의 의중은 앞으로 진행할 지배구조 개편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현대파워텍과 현대다이모스의 합병으로 부품사들의 교통정리가 시작됐다. 현대위아를 비롯한 나머지 계열사들의 정리작업도 예고돼 있다. 같은 맥락에서 현대차·기아차·모비스의 역할 재정립도 기대된다.

      현대차 지배구조의 불확실성이 사라지면 투자 유인도 그만큼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요구, 특히 배당을 비롯한 주주환원에 대한 목소리가 잦아들면 미래차·모빌리티 분야에 집중할 수 있는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완성차 업체들과 비교해 한참 뒤쳐지긴 했지만 현대차는 실제로 지난해부터 미래차 관련 글로벌 업체들과 제휴를 맺고 투자를 단행하면서 미래차 분야에 힘을 쏟고 있다. 투자 성과를 논하긴 아직 이르다. 다만 현대차가 대대적인 투자를 꾸준히 이어간다면, 미래차 시장에서 글로벌 생산조직과 판매망을 갖춘 몇 안 되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 강남구 삼성동 GBC 조감도(출처=현대차)  이미지 크게보기
      강남구 삼성동 GBC 조감도(출처=현대차)

      현대차의 숙원사업 GBC 건립도 마찬가지다. 공사기간이 길어지면서 수 천억원의 매몰비용이 발생했고, 현대차가 사업을 포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다만 정부의 인허가를 얻어 착공에 돌입하면 이 같은 논쟁은 불식될 것으로 보인다. GBC의 건립이 현대차에 미칠 재무적 부담은 여전히 남겠지만, 현대차가 불확실성을 제거해 명확한 청사진을 제시한다면 '반전'의 카드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현대차와 노조, 민간과 정부가 모두 촉각을 세우고 있는 '광주형 일자리' 조성은 현대차에 유리한 상황으로 반전될 가능성도 있다. 현대차의 약점 중 하나로 꼽혀온 '고임금 구조'를 변화시킬 만한 명분을 만들 수 있다. 대의를 앞세운 현대차, 대립각을 세운 노조에 대한 여론을 현대차에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 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차는 침몰의 기로에 서있다. 글로벌 업체들은 미래차 시장 선점을 위해 서로 손잡고 또 경쟁하고 있는데 현대차는 이제껏 메인 플레이어로 대접받지 못해왔다. 중국 브랜드는 빠르게 성장하며 현대차의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현대차의 상황이 올해보다 나아질 것이라곤 누구도 보장하지 못한다. 현대차가 위기를 반전의 기회로 삼을 뼈를 깎는 전략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이견을 다는 이들도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