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 Column]
SK텔레콤의 넷플릭스 대항책, 애국심과 하이닉스 신화
차준호 기자 | chacha@chosun.com | 2019.01.10 07:00
print인쇄 print공유하기
+ -

"영국은 (독자) 플랫폼 없이 넷플릭스에 시장을 열었다가 1년 만에 방송플랫폼이 다 죽었다"(박정호 SK텔레콤 사장)

박정호 사장은 지난 3일 SK텔레콤의 옥수수(Oksusu)와 지상파 3사(KBS·MBC·SBS)의 푹(pooq) 간 합병을 발표하며 향후 청사진을 공개했다. 양 사의 협력 배경으론 넷플릭스에 대항할 ‘토종 OTT(인터넷 동영상 서비스)’의 육성 필요성을 강조했다. 업계에선 일차적으론 국내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넓힌 넷플릭스를 견제하고 동시에 통신 3사 중 선제적으로 넷플릭스에 문호를 연 LG유플러스를 ‘해외자본’ 프레임에 가두려는 시도로 해석하고 있다.

회사 측이 배포한 공식 보도자료도 “토종 OTT 연합으로 국내 미디어 생태계 글로벌로 이끈다”로 시작한다. SKT는 이번 합병을 통해 ▲우리 문화와 국내 미디어∙콘텐츠의 다양성을 지키는 데 역량 집중 ▲오리지널 콘텐츠 등 국내 미디어 콘텐츠 강화 ▲콘텐츠 추천 강화 등 서비스 차별화 ▲K콘텐츠 해외 판로 개척에 주력 등을 밝혔다.

업계에선 공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SKT가 규정한 토종 K콘텐츠 사업자 중 일부는 각자의 역량에 따라 미디어‧콘텐츠의 다양성을 뽐내고 있고, 해외 판로 개척에도 성공했다. 그간 견고한 내수시장에 집중해 콘텐츠 다양성을 제한하고 해외 시장 공략에 주저해 온 통신사와 지상파의 뒤늦은 ‘애국심’ 마케팅 아니냐는 비판적인 시각이다.

넷플릭스 진입에 수혜를 보지 못한 'K콘텐츠 사업자'는 명확하다. 지상파와 SKT다. 지난해 지상파에서 주말 가족극을 제외, 평균 시청률 10%대를 넘긴 작품은 '리턴'(13%)과 '우리가 만난 기적'(11%) 두 작품이 전부다.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CJ와 JTBC의 드라마 시장 점유율 추이가 우상향하는 반면 지상파 3사의 하락은 가속화됐다.

KakaoTalk_20190108_153055697

그간 지상파는 넷플릭스 등 외부 OTT 사업자에 자사 콘텐츠 제공을 제한하는 방안으로 대응했지만, 문제는 OTT들이 비지상파와 협력만으로도 충분히 영향력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뒤늦게 방송연합회는 “LG유플러스가 넷플릭스 협력을 철회하고 정부 차원의 국내 사업자 보호가 마련돼야 한다” 성명을 내기도 했지만 큰 공감대를 얻진 못했다.

냉정히보면 콘텐츠 유통 변화를 읽지 못한 후속업체 간 뒤늦은 '궁여지책'일 뿐이란 평가도 나온다.

넷플릭스의 공세는 올해도 점차 가속화할 예정이다. 지난해 '미스터선샤인', '범인은 바로 너' 등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분야에 대규모 투자가 본격화되며 업계에선 “한국 시장 진입을 위한 과잉 투자”라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어느덧 존재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나의 아저씨(tvN)’에서 올해 '알함브라의 궁전(tvN)', ‘스카이 캐슬(JTBC)’까지 이른바 ‘텐트폴(가장 흥행에 성공할 만한 작품)’ 콘텐츠 대부분이 비(非)지상파를 통해 나왔고, 일부는 넷플릭스를 통해 시청자를 확보했다. 이는 각 제작사의 주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신규 제작사들의 기업공개(IPO) 행렬로 이어지고 있다.

일찌감치 자사의 OTT 서비스 ‘옥수수’를 한국의 넷플릭스로 키우겠다 선언한 SKT는 뚜렷한 대응책 마련에 실패했다. SKT 입장에선 CJ헬로비전 인수 무산이 다시 한번 뼈 아픈 상황이다. SK와 CJ그룹 양 측은 지난 2015년 CJ헬로비전 M&A 이후 SKT가 스튜디오드래곤 지분을 인수해 상호 협력하는 방안을 고려했지만 M&A가 무산되며 백지화됐다. SKT는 동일한 방식으로 지난해 SM엔터테인먼트와 지분을 섞어 협력을 모색했지만 영향력 측면에서 편차는 크다.

이번 지상파와 SKT간 합병 성사로 약 1400만명에 달하는 사용자를 확보한 만큼 이른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기반 자체는 마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근본적인 우려는 남아있다. 후속 주자인 합병법인이 해외 시장에 통할 독자 콘텐츠 생산 능력을 확보 했는지 문제다. 박정호 사장은 이번 발표를 통해 추후 JTBC, CJ로의 문호도 열어놓겠다 밝혔지만 업계에선 영향력을 갖춘 제작사가 신생 플랫폼에 종속되는 건 최악의 결정이라는 반응이다.

한 미디어담당 애널리스트는 “최근 지상파에서 유일하게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유지하는 KBS '하나뿐인 내편'을 기반으로 해외진출이 가능할지 스스로 돌아봐야 할 문제”라 말했다. 출생의 비밀 등으로 중장년 층을 대상으로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지만, 전 세대를 아우를 양질의 콘텐츠 확보까진 불확실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SKT 측과 방송 3사는 향후 가칭 ‘콘텐츠투자협의회’를 설립해 대규모 투자 여부 등을 공동으로 논의하고 결정하기로 내부 방침을 세웠다. 추후 싱가포르텔레콤 등 잠재 투자자를 통해 2000억원대 외부 투자금을 확보할 예정인 만큼 투자 규모 측면에서도 기존과 다르다는 설명이다. 다만 주주구성이 복잡한 만큼 의사결정이 수월할 지 여부는 과제로 남았다. 방송사 입장에선 본업인 기존 채널과 지분율에 따른 배당 수입 정도인 OTT 사업을 둔 우선순위 마련도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shutterstock_1200786709

기자간담회를 빌어 '하이닉스 인수' 공로를 다시 한 번 내비친 박 사장의 말도 도마위에 올랐다.

박 사장은 "반도체를 다운사이클에 투자해서 업사이클에서 벌고 우리나라 먹거리 산업으로 만드는 것을 직접 실천했다. 우리나라가 반도체만 아니라 콘텐츠 역량이 강하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문제는 합작사 운영 주체인 SKT가 그간 옥수수를 통해 출시한 오리지널 콘텐츠들의 실적은 반도체 호황과 정반대란 점이다. 지난해까지 예능 ‘엑소와 사다리 타고 세계여행’, ‘레드벨벳의 레벨업 프로젝트’ 드라마 ‘회사를 관두는 최고의 순간’, ‘애간장’ 등을 순차적으로 출시했지만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무엇보다 SKT의 미디어분야 M&A 역량도 여전히 검증되지 않았다. 박 사장이 자부한 SK하이닉스 인수 외에 SKT의 미디어부문 M&A에서 유의미한 성과는 전무하다. 과거 음원서비스 멜론 매각을 결단한 결정과 시점은 상대방인 PEF 어피너티에 천문학적인 수익을 안기기도 했다.

다른 IT·통신 담당 애널리스트는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 갑(甲)은 JTBC와 스튜디오드래곤 등 제작사 아니겠나"라며 "언제든 합류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보다 일종의 '스타트업' 같은 초심을 보이는 게 낫지 않았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1월 08일 16:00 게재]

기사 목록으로

Related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