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타 면제와 대우조선 매각, ‘불공정’의 데칼코마니
입력 2019.02.08 07:00|수정 2019.02.11 10:59
    • 우연의 일치일까? 닮아도 너무 닮았다.

      연이어 이슈가 되고 있는 24조원 규모의 사회간접자본(SOC)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그리고 산업은행의 대우조선해양 매각말이다. 결과를 두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 누구나 납득할 만한 공정한 프로세스를 밟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우선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면제 문제를 보자.

      서울에서만 살아 왔다면 잘 인식을 못하지만, 지방에 한 번 가보면 알 수 있다. 수도권 시민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구비돼 있는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전문가들도 “지역의 낙후한 인프라를 고려할 때 SOC 투자는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예타는 정부의 재정이 대거 투입되는, 투자사업의 정책적·경제적 타당성을 사전에 면밀하게 검증·평가하는 제도다. 1999년 김대중 정부 당시 본격적인 타당성조사 이전에 국민경제적 차원에서 사업의 추진 여부를 판단해 예산 낭비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됐다. 1999년 이전에는 부실한 타당성조사로 다수의 무리한 사업이 추진됐기 때문이다.

      지역에 대형 SOC가 필요하다면 정부가 ‘예비타당성 조사→타당성조사→설계→보상→착공’의 과정을 밝으면 된다. 해당 지역 주민들에겐 조금 인색하게 들릴 수도 있다. 여기에 들어가는 재정은 국민 세금이다. 잘 써야 한다. ‘공정한’ 프로세스를 밟아야 국민 다수가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예타를 면제 받은 23개(24조1000억원) 사업 중 새만금국제공항 등 14조8000억원 규모의 16개 사업은 예타조차 거치지 않았다. 작년 11월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 신청이 접수된 후 불과 두 달여만에 면제가 확정됐다. 도로, 철도, 공항만 만든다고 균형발전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 지역에 어떤 산업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 즉 SOC를 통해 그 지역의 생산성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지에 대한 정부의 중장기 청사진이 없다면 결국 내년 총선용이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번엔 대우조선해양 매각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2000년 10월 대우중공업의 분할로 신설됐으며 경영난을 겪다가 2000년 12월 최대주주가 산업은행으로 변경됐다. 2001년 2조9000억원 규모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이후 지금까지 13조원 규모의 자금이 투입됐다. 산업은행은 2008년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추진했고, 6조3000억원을 써낸 한화그룹을 우선협상자로 선정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이듬해 무산됐다. 그 새 글로벌 조선경기는 꺾였고 대우조선해양은 5조원 규모의 분식 회계를 저질렀다.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에서 책임진 이는 없었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위해 현대중공업과 장기간 협상을 했고 1월31일 기본합의서를 발표했다. 현대중공업이 조선 통합법인을 세우고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을 현물출자 하는 방식이다. 현대중공업이 최대 2조5000억원을 투입한다고는 하지만 당장 현금을 쓸 필요 없는 딜(Deal) 구조다. 현대중공업은 2008년 대우조선매각 당시 입찰가로 2조8000억원대를 써 내 산업은행에 굴욕을 안겼던 회사다.

      대우조선해양에 10조원이 훌쩍 넘는 세금이 투입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산업은행은 투자회수 극대화를 꾀하려는 모습이라도 보여줬어야 했다. 가장 공정한 프로세스라면 2곳 이상의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공개 입찰을 하고, 구주 매각을 통해 현금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산업은행은 구주 매각의 경쟁 입찰 방식이면 딜이 무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실상 현대중공업과 단독 협상을 6개월간 진행했고 ‘현대중공업의, 현대중공업에 의한, 현대중공업을 위한’ 결과물을 도출했다. 구색 맞추기가 없지 않았다. 기본합의서 발표 당일 삼성중공업에도 의향을 물어보겠다고 했고 기본합의서 대로 할 의향이 있는지 한 달 안에 답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것이 대규모 세금이 들어간 기업의 공정한 투자회수(Exit) 과정인지 묻고 싶다. 산업은행은 조선 통합법인의 2대 주주가 될 예정이기 때문에 실상 엑시트를 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20년간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로서 산업은행이 한 것이라고는 이제 와서 현대중공업에 경영권을 넘긴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해서도 '매각' 대신 '민영화'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매각 실패' 또는 '부적절한 매각' 같은 부정적 이미지 대신 민영화를 통해 부담을 크게 줄이고 긍정적 의미를 담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책임을 면피하려는 전형적인 공무원 마인드를 보여줬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정부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기치 하에 출범했다. SOC 사업과 대우조선해양 매각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정부의 예타 면제와 산업은행의 대우조선해양 매각 방식이 정부의 기치에 부합하느냐를 따져보자는 얘기다. 예타 면제가 내년 총선을 위한, 대우조선해양 매각이 산업은행의 면피를 위한 정치적 논리에 따른 것이라면 데칼코마니 같은 ‘불공정’ 프로세스는 정부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