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도 투자 나선 롯데케미칼, M&A보다 JV로 기우는 저울추
입력 2019.02.11 07:00|수정 2019.02.12 10:13
    석유화학업계, 초호황에서 불황으로 반전 우려
    지속적 투자 필요하지만 M&A만이 능사는 아냐
    JV가 비교적 위험분산…상대社 콜옵션 행사 시 현금 유입
    • 초호황을 누리던 석유화학업계가 올해 불황으로 접어들 것이란 우려가 나오면서 롯데케미칼의 투자 방향에 관심이 모아진다. 앞서 화학 부문의 막대한 투자를 예고한 롯데케미칼이 예년에 비해 M&A보단 조인트벤처(JV) 비중을 높이는 게 유리할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롯데그룹은 앞서 ‘5개년 투자 계획’을 통해 50조원의 투자 계획 중 20조원가량을 화학 부문 등에 배정했다. 롯데케미칼이 롯데 재건을 이끌 캐시카우로 떠오르며, 진행 중인 금융계열사 매각 자금 일부도 유화 사업 쪽으로 투자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롯데케미칼이 올해 투자를 확대할 것이란 부분에 대해선 업계에서도 큰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규모의 경제’에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이라 향후 업황이 개선될 때를 고려하면 투자를 멈출 수 없다는 분석이다.

      다만 투자 방향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그간 롯데케미칼이 M&A를 통해 성장한 것을 고려하면 올해도 크고 작은 M&A가 진행될 것이란 시나리오가 있는 반면, 불황일 땐 M&A보다 합작투자가 낫다는 지적도 있다.

      석유화학산업 특성상 새로운 생산 설비를 짓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M&A를 통한 외형 확장이 가장 손 쉬운 방법이긴 하다. JV의 경우 기존 인프라를 활용하면서 투자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어 나름의 이점이 있다.

    • 금융투자업계에서 롯데케미칼이 올해 M&A보다 합작투자의 비중을 확대하는 게 유리하다고 보는 이유는 ‘위험 분산’과 ‘현금 유입’에 있다.

      롯데케미칼은 2014년 미국 석유화학기업 액시올(Axiall Corporation)과 에탄크래커(ECC)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현재 롯데케미칼과 액시올의 지분 비중은 약 90% 대 10%다. 액시올은 상업생산 후 3년까지 보유 지분을 최대 50%까지 늘릴 수 있는 콜옵션을 갖고 있다.

      에탄크래커 플랜트의 상업생산은 올 1분기부터 시작된다. 연간 100만톤 규모의 에틸렌이 생산되며, 이 가운데 40만톤은 엑시올에 판매될 예정이다. 업계에선 해당 콜옵션이 내년에 행사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점치고 있다.

      미국의 에틸린 공급량은 2017년 3000만톤에서 지난해 3400만톤으로 늘어난 상황이다. 올해는 3800만톤까지 증가할 전망인 데다 미·중 무역분쟁이 길어지면서, 최대 수요처인 중국의 수요 감소가 우려되는 분위기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롯데케미칼이 액시올을 무리하게 인수하는 대신 합작투자에 집중한 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한 액시올이 콜옵션을 행사할 경우 롯데케미칼 입장에선 현금 흐름이 개선된다. 1조원 이상의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예상돼 새로운 투자 발굴에 대비하기 용이해진다는 평가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미국 웨스트레이크가 액시올을 인수하면서 기업가치가 오른 건 사실”이라며 “다만 불황이 드리운 상황 속에선 투자 비중을 M&A보다 JV를 늘리는 쪽에 무게를 두는 게 위험을 줄이는 방법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제 인수할 매물이 없다는 점과 미국은 동남아에서처럼 M&A가 쉽지 않다는 점도 올해 합작투자가 대안으로 떠오르는 이유다.

      롯데케미칼은 그간 말레이시아 타이탄케미칼과 삼성SDI의 케미컬부문,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 M&A를 통해 외형을 확장했다. 업계에선 해당 기업들을 인수한 후 성공적으로 키워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더 이상 국내에 매력 있는 물건이 없고, 해외 역시 에탄크래커 등의 기반을 갖춘 ‘괜찮은’ 매물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게 유화업계의 평가다.

      롯데케미칼은 글로벌 시장 중에서도 미국 시장 투자에 관심이 큰 상황이다. 하지만 미국 기업의 경우 동남아 기업보다 인수가격이 비싸게 형성된 데다, 글로벌 굴지의 기업들이 인수에 나설 여지가 커 M&A 문턱이 높은 편이다. 따라서 올해 합작투자 비중이 예년에 비해 커질 수 있을 것이란 의견에 힘이 실린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롯데케미칼의 경우 액시올의 LC USA 외에 국내에서는 현대오일뱅크와 합작투자한 현대케미칼이 있다”며 “롯데케미칼도 현재 M&A 이외에도 해외 법인들과의 합작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늘려가고 있는 상황이라 업황이 꺾일 때 내부적으로 M&A와 JV의 비중 조정을 고민할 여지가 있다”라고 의견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