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서자(庶子) 자처한 삼성중공업 경영진
입력 2019.02.13 07:00|수정 2019.02.14 09:20
    • 조선산업 재편이란 명목 아래 산업은행이 현대중공업에 대우조선해양이라는 '선물'을 안겨준 모양새가 됐다. 삼성중공업은 애초 협상 테이블에 앉아보지도 못했다.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이 한창 물밑 작업을 벌일 동안 이 같은 사실을 인지했는지도 미지수다. 결국 삼성중공업은 산업은행으로부터 부여 받은 한 달을 채우지도 못한 채 인수전 참여를 포기했다.

      그간 삼성중공업 전·현직 경영진들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대우조선해양 인수설을 일축했다. 2012년부터 5년간 삼성중공업을 이끈 박대영 전 사장, 지난해 취임한 남준우 대표이사 모두 뜻을 같이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삼성중공업의 포기 선언까지 산업은행이 나서서 대신 전했다.

      대표이사들이 '일언(一言)'에 인수를 거부했던 대우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그룹에 포함돼 글로벌 1위 초대형 조선사로 재탄생 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산업 주도권은 이미 현대중공업에 넘어갔다.

      경영진이 자체 생존을 강조하는 동안 삼성중공업 사정은 극도로 악화했다. 지난해 수주는 2014년 대비 절반에 그쳤고, 매년 수천억원의 영업적자가 발생하고 있다. 부담은 고스란히 임직원들과 주주들에게 주어졌다. 1만4000여명의 임직원 중 400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두 차례 주주배정 증자를 통해 2조5000억원의 자금이 투입됐지만 회사 주가는 10년 중 가장 낮은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룹 지원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삼성그룹에서 매년 수천억원의 적자를 내는 곳은 삼성중공업이 유일하다. 합병설과 매각설에 끊임 없이 시달리는 이유다.

      뒤늦게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우조선해양 인수 제안을 받았을 당시부터 삼성중공업이 산업은행 '구색 맞추기'에 동참할 것으로 보는 이는 많지 않다. 그보다 삼성중공업이 더 나은 거래 구조를 만들어 낼 '여력'과 '의지'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과거 경영진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대해 '충분한 검토'와 이를 통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방안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현재의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투자자들은 경쟁력을 잃어가는 삼성중공업을 바라만 봐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현 경영진은 경쟁력 강화, 또는 최소한의 유지를 위한 어떠한 대안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번 인수전 참여 포기와 더불어 삼성중공업은 "외형 확장보다는 해양설비 및 LNG선박 등 잘하는(?) 것에 집중하겠다"고 입장이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 숫자로 드러난 결과는 '잘해왔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삼성그룹은 삼성중공업,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을 관할하는 'EPC 경쟁력 강화 TF'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출범한지 1년이 지났다. 현재 TF장을 맡고 있는 삼성엔지니어링 출신 김명수 사장은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을 주도한 인물이다. 삼성중공업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인사로 꼽히지만, 침몰하고 있는 삼성중공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책은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다.

      TF 차원에선 그룹 내에서 삼성중공업의 중요도가 후순위일 수 있다. 하지만 삼성중공업 경영진이라면 얘기는 다르다.

      비록 그룹에서 비주력사로 분류되지만, 여전히 수많은 임직원들이 속해 있고 관련업계 종사자와 투자자 수는 헤아릴 수 없다. 과연 삼성중공업 경영진이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룹의 지원을 요구했는지도 알 수 없다. 사실 그럴만한 '의지'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삼성중공업에 생계를 건 이들과 달리 경영진들은 비주력 계열사를 자처해 그룹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