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잇따라 실패한 산은, 갈 길 먼 한진중공업 '경영정상화'
입력 2019.02.14 07:00|수정 2019.02.15 09:51
    수빅조선소 리스크로 평가한 산은
    2년전 RG 발급 보장 등 전폭지원
    오락가락한 구조조정 방향성에 우려↑
    • 한진중공업이 사실상 중소 조선사로 전락할 것으로 보인다. 상선 부문은 구조조정하고, 특수선 제작만 남을 전망이다. 한진중공업그룹은 에너지 부분에 힘을 싣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민자발전 사업은 여태 막대한 비용만 들어가고 수익성은 나지 않고 있다. 대륜E&S, 대륜발전, 별내에너지는 매각을 시도했다 실패한 회사다.

      필리핀 수빅조선소가 회생절차에 돌입하면서 한진중공업의 ‘경영정상화’는 요원해졌고, 산업은행의 구조조정은 또 다시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산업은행은 2016년 5월부터 한진중공업과 자율협약 양해각서(MOU) 체결해 관리해왔다. 지난해 별다른 조건 없이 자율협약을 2020년까지 2년 연장해줬다. 불과 몇 주 뒤 수빅조선소가 법정관리에 들어갔지만 채권단은 문제삼지 않았다. 수빅조선소가 회생절차를 밟게 돼 추가적인 현금확보가 어려워졌음에도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이례적이다.

      산업은행은 수빅조선소를 기회가 아닌 위험 요소로 평가했고 이번 사태를 리스크 해소 계기로 판단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산업은행이 보여준 행보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체결했던 당시 한진중공업은 수빅조선소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도 수빅조선소를 중심으로 한 경영 정상화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선수금환금보증(RG) 발급을 보장하는 등 전폭으로 지원해줄 방침이라고 밝히며 시장의 기대를 불러모으기도 했다.

      실제로 수빅조선소의 RG는 약 6100억원(산업은행 5000억원, 수출입은행 1100억원), 필리핀은행 제작금융 약 6000억원 등 총 1조2100억원 규모라고 전해진다. 이러한 방침이 나온 지 불과 2년 뒤 수빅조선소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산업은행은 수빅조선소가 법정관리 들어가기 2년 전 시중은행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진중공업 지원을 결정한 바 있다. 당시 한진중공업은 운용자금 2000억원이 부족해 자율협약을 신청했지만 구체적인 차입금 만기 현황과 부족 자금 발생 경위에 대해서 함구했다. 산업은행도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라고 설명했을 뿐이었다.

      한진중공업은 자율협약에 들어간 후 채권단으로부터 2500억원의 신규자금, 2000억원의 보증지원을 받았다. 이 자금만으로 수빅조선소의 경영정상화 해결까지는 어려웠다. 한진중공업은 채권단과 협의를 통해 2017년 3월 수빅조선소에 유상증자 2억2000만달러, 출자전환 2억2000만달러 등 총 4억4000만달러의 재무개선 조치를 취했다. 리스크로 파악한 회사에 계속해서 자금을 투입하게 만든 것은 산업논리로도, 금융논리로도 맞지 않다는 평가다.

      산업은행은 한진중공업을 비롯한 조선업 구조조정에 10조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했으나 여전히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조선업 전문가들은 바닥을 찍었던 선박 가격이 다시 올라가는 국면에 돌입하게 되면 저가 수주라도 받아야 다음에 더 좋은 가격으로 배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온다고 말한다.

      한 투자업계 전문가는 “조선업은 고정비로 인해 여타 산업에 비해 타임 리스크가 훨씬 크다”라며 “작년 선가 상승이 기대되는데도 산업은행이 단가가 맞지 않으면 무조건 수주를 받지 말라는 방침을 내린 점은 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전했다.

      다른 전문가는 “RG를 발급할 때도 산업은행은 크게 관여하지 않고 회계법인 등에 맡겼는데 선박과 관련된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라며 “실제 데이터에 의한 결정이 아닌 정책적이고 즉흥적인 의사결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끝에 한진중공업 없는 한진중공업그룹이 될지도 모른다. 한진중공업홀딩스는 대륜E&S에 1020억원을 증자하고 750억원 규모의 상환우선주(RCPS)를 발행해 한진중공업과 에너지 자회사와 연결고리를 제거했다. 이를 통해 한진중공업이 막중하게 부담하고 있던 에너지 쪽의 채무 보증을 털어낼 수 있었다. 반면 회사 내부에선 사실상 홀딩스와 한진중공업을 언제라도 떼내기 편한 구조로 만든 셈이라고 주장도 나온다.

      2년 전 자율협약을 신청했을 때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라고 일축했던 설명과 동떨어진다. 조선업 담당 애널리스트는 “조선업 다운사이징을 목표로 하고 있는 산업은행이 기술력, 수주잔고, 고용을 감안했을 때 선택과 집중을 한 셈이다”라면서도 “산업은행이 주채권은행으로서 오락가락한 태도를 보이는 등 구조조정 과정에서 시장에 준 시그널이 매끄럽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남호 한진중공업그룹 회장은 다음 달 열릴 주주총회에서 임기 연장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며 한진중공업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