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해진 RA'에 '52시간'까지...고민 깊은 증권사 리서치
입력 2019.02.19 07:00|수정 2019.02.19 17:47
    RA 높은 업무 강도에 비해 '낮아진 처우'
    리서치 인기도 떨어지고... 이탈 증가
    IB·VC·자산운용사 등 다른 곳 찾아 떠나
    • 최근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RA(Research Assistant)’가 귀해지고 있다. 고된 업무강도에 비해 예전만큼의 처우를 받지 못해 RA이들의 이탈이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52시간 근무제'까지 도입을 앞두고 있어 리서치센터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RA는 리서치센터에서 애널리스트를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담당 기업을 맡고, 자신의 이름을 건 투자분석 보고서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2~4년간의 RA 기간을 거친다. 이 기간 동안 매일 같은 새벽 출근과 야근으로 강도 높은 업무를 견디고 나면 소위 ‘시니어(senior)’라 불리는 정식 애널리스트가 된다.

      애널리스가 ‘자본시장의 꽃’으로 불릴 때만 해도 RA는 증권사 입사 희망자들에게 인기 직무였다. 최근엔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평이다. 높은 업무강도에 비해 과거보다 낮아진 처우와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중시하는 문화로 젊은 RA들이 잇따라 퇴사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에서 IB 부문이 강화되면서 리서치의 매력도가 떨어지고 있는 점도 거론된다.

      한 국내 대형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옛날에도 RA들이 많이 나가기도 했지만 나간만큼 채워졌다면 요즘엔 그렇지가 않다”며 “힘든 만큼 기대하는 보상을 받지 못하는 점이 이탈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리서치센터의 높은 업무 강도는 익히 알려져 있다. 보통 주식시장이 열리기 전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때문에 아침 6시쯤 출근을 한다. 새벽 5시 반까지 출근하는 곳도 많다. RA들 사이에서는 6시 출근은 '그나마 편한 곳'으로 불린다. 공식 퇴근 시간은 저녁시간 이지만 다음날 시장이 열리기 전에 일들을 처리하다 보면 보통 늦은 밤까지 회사를 떠나지 못한다.

      RA들은 무엇보다 리서치를 꺼리게 된 가장 큰 원인으로 예전과 비교해 낮은 처우를 꼽는다. 신규 애널리스트 연봉은 10년 전쯤만 하더라도 6000만~7000만원에 육박했다. 현재는 현재는 4000만~6000만원 수준에 그친다. 수억원대 연봉은 옛날 일이다. 한때 최상급 애널리스트 연봉이 10억 이상까지도 갔으나 최근엔 팀·부장급 애널리스트도 1~3억대 수준이다.

      국내 증권사에 근무하는 한 RA는 “예전에는 힘들게 버티면 좋은 처우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버티지만 요즘엔 애널리스트가 되어도 기대에 미치지 못해 애초에 다른 길로 가는 동기들이 많다”며 “보통 계약직인 고용 형태와 선배 애널리스트가 나가지 않으면 섹터나 기업을 맡기 어려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도 이탈 원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아예 VC(벤처캐피탈)이나 자산운용사 등 금융투자업 내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RA 출신들은 기본 업무능력이 높고 높은 업무강도를 견뎠기 때문에 채용에서도 선호된다는 평이다.

      국내 애널리스트 수는 매해 줄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등록된 애널리스트 숫자는 2016년 말 1125명에서 2017년 말 1064명, 올해 초 1009명으로 계속 감소 추세다. 증권사들이 리서치 자체를 줄이는 점도 영향이 있지만 낮아진 처우에 다른 직무나 회사를 찾아 떠나는 경우가 많다.

      한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IB가 뜨고 리서치 대우가 예전만 못하니 연구원들의 이탈도 많아지고 있다"며 "RA를 좀 이르게 진급시킨다 해도 결국 또 이탈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리서치센터에서는 나가는 RA도 문제지만 기존 RA들도 고민이다 . 현재 유예기간인 ‘52시간 근무제’가 올해 7월부터는 강제 도입된다. 업무량이 많아 52시간이 지켜지기 어려운 업계인데 그렇다고 지키지 않으면 RA들의 불만이 높아져 추가 이탈 혹은 신고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현재의 업무량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추가 인력 배치가 필요하지만 인건비 문제로 쉽게 늘리기는 어렵다. 회사마다 파트 타임제나 단기 아르바이트 등 대책을 고민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 증권사가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RA업무의 전문성, 사실상 풀타임(full-time)으로 애널리스트를 보조해야 하는 점도 고려사항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52시간제 도입을 앞두고 벌써부터 RA들에게 일찍 퇴근을 독려하기도 하고, 탄력근무제나 야근을 하면 다음날은 휴가를 주는 유연근무제가 있는 곳도 있다"며 "워라밸을 챙기는 분위기와 RA들 이탈 우려를 고민하면서 리서치 센터에서도 여러 대안을 생각 중"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