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못 떼내는 두산그룹…'형제의 난' 트라우마·책임 불분명 가족경영 한계
입력 2019.03.04 07:00|수정 2019.03.05 10:42
    밥캣 인수 이후 유동성 위기 딱지 떼지 못해
    시장에선 “일찌감치 ‘밑 빠진 독’ 건설 매각했어야”
    선대 회장 결단 부정할 수 없는 경영 구조
    “결단 없을 시 폭탄 돌리기 계속되는 모양새”
    • 두산그룹에 또 다시 유동성 위기론이 불거졌다. 원인 제공자는 두산건설이다. 두산중공업이 두산건설에 유상증자를 하기로 결정하면서 두산그룹의 재무 부담 연결고리가 '두산건설→두산중공업'에서 '두산건설→두산중공업→㈜두산'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시장에선 그룹 차원의 두산건설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일찌감치 두산건설을 떼냈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두산그룹 차원에선 쉽지 않은 결정이다. 가족경영 체제인 두산그룹에서 회장이 독단적으로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기 어렵고, 가족 누구에서 책임 여부를 묻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다.

      ◇ 유동성 위기 원인 두산건설 떼내지 못하고 또 다시 지원

      우선 두산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진 시점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큰 테두리에선 2007년 인수한 밥캣(현 두산밥캣)이 뇌관이 됐다. 당시 밥캣 인수에 들어간 자금이 5조원 가깝다. 인수금액 중 80%가량은 차입이어서 이자 부담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다. 불운하게도 인수 직후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했고 밥캣 실적은 추락했다. 이후 두산인프라코어는 공작기계사업부를, 두산중공업은 두산엔진과 두산밥캣 지분을 파는 자산 매각을 단행했다.

      두산그룹 유동성 위기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것은 두산건설이다. 2010년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 미분양 사태에 따라 2011~2012년 각각 2601억원, 449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두산그룹, 특히 두산중공업은 두산건설을 살리기 위해 여러 카드를 꺼냈다. 두산중공업은 2013년 이후 유상증자와 현물출자, 상환전환우선주(RCPS) 정산을 통해 총 1조7000억원을 두산건설에 지원했다.

      그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됐다. 두산건설은 지난해 어닝쇼크의 실적을 발표했다. 영업손실 522억원, 당기순손실 5518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부채비율은 2017년말 194.7%에서 지난해 말 552.5%로 급등했다.

      그동안 버팀목이었던 두산중공업은 한계에 직면했다. 누적된 계열사 지원과 탈원전에 따른 자체 사업 부진으로 재무구조가 나빠졌다. 2018년 3분기말 두산중공업의 차입금은 5조원에 육박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두산중공업은 두산건설을 살리기 위해 유상증자에 참여하게 됐다. 두산중공업 지분율 희석을 막기 위해 지주사 ㈜두산마저 두산중공업 유상증자에 들어가야 하는 실정이다. 말 그대로 두산건설 위기가 그룹 전체로 전이된 셈이다.

      시장에선 두산건설을 진작에 매각했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지적해 왔다. 이번 유상증자도 큰 의미가 없을 것으로 내다보며 ‘밑 빠진 독’이라고 지칭하며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재계 그룹에서 건설사가 지닌 사업적 파급력은 분명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두산건설은 그 역할조차 기대하기 어렵다. 두산그룹은 왜 시장의 주문대로 폭탄이 돼버린 두산건설을 매각하지 못하는 걸까.

      ◇ '형제의 난' 이후 사촌경영 시대 시작…책임경영 하기 어려운 구조

      두산그룹의 복잡한 가족 경영 시스템이 근원적 배경으로 꼽힌다. 여기서 두산그룹의 승계 구도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두산그룹은 박두병 초대회장의 유지에 따라 형제들이 번갈아 그룹 회장을 맡는 ‘형제경영’을 해 왔다. 박용곤 회장 이후 전문경영인 체제 대신 가족 경영을 다시 시작했고 박용오 전 회장과 박용성 회장, 박용만 회장이 뒤를 이어 그룹 회장에 올랐다. 하지만 칭송 받던 형제경영 신화는 이른바 2005년 박용오오 회장이 일으킨 ‘형제의 난’으로 깨졌다. 그리고 박용성-박용만 회장으로 3세 구도가 이어졌다.

      이후 재계의 관심은 4세 경영에 접어든 두산그룹의 후계 구도에 쏠렸다.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이 ㈜두산 회장이 됐다. 두산건설의 경영실적이 추락하면서 박정원 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두산그룹은 4세들이 경영권을 돌려 맡는 ‘사촌경영’ 시대가 시작됐다.

      박정원 회장 이후 두산그룹 4세들의 공동경영이 잡음 없이 이뤄질지 주목 받을 수밖에 없다. 계열사에서 직책을 맡고 있는 두산그룹 오너 4세로는 박용성 전 회장의 장남 박진원 두산메카텍 부회장과 차남 박석원 두산 정보통신BU 부사장, 박용현 이사장의 장남 박태원 두산건설 부회장과 차남 박형원 두산밥캣 부사장, 삼남 박인원 두산중공업 부사장, 박용만 회장의 장남 박서원 두산 전무, 박재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 등이 있다.

      두산그룹의 3세들이 공동경영을 하면서 경영권을 놓고 벌어진 ‘형제의 난’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이것이 책임경영을 가로막고 있는 '아킬레스건'이라는 지적들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장자 중심의 그룹의 승계 과정과 지배구조가 모두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대응하고 책임지는 데는 유리한 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두산그룹의 지속적인 유동성 위기는 관계자가 너무 많은 복잡한 승계 가능성, 그에 따른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두산인프라코어와 재무적투자자(FI) 간의 DICC 소송전도 같은 맥락으로 박용만 당시 두산 회장의 재가로 최종 결정된 사안이었지만 박정원 현 회장이 그 과오를 책임지는 것이 맞느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며 “언젠가 본인에게 그룹 경영의 기회가 올 수 있는 오너가 입장에선 가족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며 틈을 만드는 것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전했다.

      ◇ 우군 없는 두산그룹 건설 폭탄 돌리기…시장 "불확실성 상존"

      예를 들면 4대 그룹은 오너의 결단에 의해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다면 가족경영, 사촌경영을 하는 두산그룹은 누군가가 나서 책임을 지고 결단을 내리기 어려운 구조다.

      두산건설은 몇 번에 걸쳐 대대적인 그룹 차원의 자금 지원이 있었지만 회생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오히려 그룹의 부담을 한층 가중시켰다. 두산건설 회장을 겸직하고 있는 박정원 회장, 박태원 두산건설 부회장에 부실 경영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두산그룹 내에서 그런 분위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다시 말해 두산건설이라는 폭탄을 제거하지 못하고 계속 돌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현재 두산그룹 신용도로는 외부 차입에 한계가 분명하다. FI와 소송전까지 진행하고 있어 위기의 순간에 두산그룹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우군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결국 그룹 계열사간 유상증자, 자산 매각과 인수로 위기의 순간 순간을 버텨내고 있다는 냉정한 시각에 직면해 있다.

      GS그룹과 LS그룹도 사촌경영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분리될 것이라는 전제가 시장에 깔려 있는 상황이다. 두산그룹이 지금의 가족경영을 유지한 채로 이 지겨운 유동성 위기 딱지를 떼내려면 과거 사업 구조를 바꿨던 수준의 탈바꿈이 필요하다.

      투자금융업계 관계자는 "그러기 위해선 그룹 경영 기회가 열려있는 오너 4세들간의 합의가 필요하다"며 "하지만 두산건설의 부실, 그룹의 지속적인 지원에 대해서 오너 경영인들의 입장을 듣기도 어려운데 그룹 차원의 혁신과 관련해 박정원 회장을 포함, 누가 그런 책임을 감수하려고 할 지는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두산그룹의 가족경영이 현 시대에도 칭송받을 수 있는 적합한 모델인지, 그리고 이 경영 체제가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을지는 체크해야 할 또 다른 이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