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에 가려진 삼성전자 주총…유보금 100조·사외이사로 재점화
입력 2019.03.18 07:00|수정 2019.03.19 10:12
    사외이사 '독립성' 여부 도마위
    국내 의결권 자문사 일제히 '반대'
    하만 이후 자취 감춘 대형 M&A
    "100조 넘는 유보금 어디에 쓰나?" 의구심도 증폭
    • 현대차와 더불어 삼성전자의 주주총회도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곳간에 현금은 쌓여가는데 명확한 투자 방향성이 보이지 않는 탓에 삼성전자의 투자 방향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구심이 더 커졌다. 최근엔 이사회가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들의 '독립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주총을 앞둔 삼성전자의 긴장감도 높아진 모양새다.

      국내 주요 의결권 자문사 대다수는 삼성전자가 추천한 일부 사외이사 후보에 대해 '반대'하는 내용의 권고안을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주총을 통해 총 3명의 사외이사를 선임할 계획인데, 이중 2명의 후보가 대상이다.

    • 현재 삼성전자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는 박재완 후보(전 기획재정부장관)는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번 주총을 통해 연임을 노린다. 의결권 자문사들(좋은지배구조연구소·서스틴베스트·대신지배구조연구소)은 성균관대학교가 삼성그룹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는 특수관계에 있다고 판단하고, 박재완 후보의 '독립성' 여부에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로 성균관대학교 이사진 7명 중 3명은 삼성그룹 대표이사(삼성라이온즈·에스원)와 임원(삼성전자)으로 구성돼 있다. 국내 의결권 자문사의 권고안은 국내 주요 기관투자가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치열한 표 대결도 예상된다.

      최근에는 삼성전자 주요주주인 캐나다연기금투자위원회(CPPIB)와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투자공사(BCI)가 박재완 후보의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 선임에 반대할 것으로 전해지면서 외국계 투자자들의 표심의 향방도 예측하기 어렵게 됐다.

      박재완 후보와 더불어 안규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신장내과 교수의 사외이사 선임도 논란이 일고 있다. 안규리 후보는 사단법인 라파엘인터내셔널 이사장을 맡아 사회공언 활동을 해 온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삼성그룹 계열 호암재단으로부터 호암상을 수상했다. 당시 상금 약 3억원과 순금 50돈의 메달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서스틴베스트는 "삼성전자의 특수관계법인(호암재단)으로부터 보수 이외의 대가를 받아 독립성이 우려된다"며 "라파엘클리닉의 2017년 수입이 16억원 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상금 3억원은 해당 법인엔 적은 액수가 아니다"고 했다.

      국민연금은 일단 삼성전자가 제시한 모든 안건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 표 대결을 펼칠 안건이 상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주총에선 유보 현금 사용에 대한 주주들의 질의 또는 요구도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말 기준 사내 유보금은 104조2100억원이다. 2017년 말(89조6000억원)과 비교해 약 14조6000억원 늘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D램, 낸드플래쉬) 분야 전세계 1위 기업이다. 비메모리 분야에선 아직 경쟁사가 많다. 이재용 부회장이 올해 초 2030년까지 '글로벌 비메모리 분야 1위 달성' 목표를 발표하며 ▲차량용 반도체 ▲모바일AP, 이미지 센서 ▲파운드리 업체 추격 등의 전략을 내세웠다.

      유보금이 늘면서 자금 여력이 뒷받침 됐고, 이 부회장이 앞장서 시장 개척에 대한 의지를 밝힌만큼 삼성전자 대규모 M&A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감도 커졌다. 하지만 기존 설비투자 증설을 제외한 나머지 대규모 투자는 잠잠하고, 지난 2016년 하만(Harman) 인수를 끝으로 삼성 발(發) 대형 M&A는 자취를 감춘 상태다.

      최근에는 글로벌 수위권의 반도체 기업 인수를 통해 비교적 취약한 사업 부문에서 선두권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다만 시장의 기대가 집중됐던 글로벌 반도체 기업 인수에 관해 회사는 공식적으로 부인했고, 이를 통해 삼성전자가 투자자들로부터 명확한 성장 전략을 요구 받을 개연성은 더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기관투자가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주력 사업부문 업황을 고려할 때 새로운 사업에 대한 투자도 병행해야 하는 시점으로 보인다"며 "정부의 압박에 못 이겨 내놓는 투자 계획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인 투자 전략을 밝힘으로써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고 했다.

      실제로 반도체 업황의 침체로 삼성전자를 바라보는 투자금융업계의 눈높이도 낮아지고 있다. 1분기 영업이익 시장 추정치(컨센서스)는 1월부터 현재까지 매달 줄어드는 추세다. 이 같은 추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유보금 수준을 유지하면서, 명확한 투자계획을 밝히지 못할 경우 삼성전자를 향한 투자자들의 목소리는 더 커질 수 있다. 현대차만 보더라도 외국인투자자들로부터 끊임없는 배당요구를 받고 있고, 사외이사 자리도 위협받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또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아, 불과 2년 전만해도 엘리엇으로부터 지주회사 분사 및 특별배당 등의 요구를 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