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 채운 LG그룹에 '사용처' 묻는 시장…시급해진 청사진 제시
차준호 기자 | chacha@chosun.com | 2019.03.21 07:00
Edited by 현상경 부장 | hs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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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휴자산 매각 등 재원 마련 순항
시장에선 자금 활용처 주목
"그룹의 비전 보여줘야 할 때"

LG그룹을 두고 ‘재산은 모으는 것보다 잘 쓰는 게 더 어렵다’는 격언이 다시금 회자하고 있다. LG그룹은 연초부터 자금 조달·비주력 사업 정리에 순항을 보이며 곳간을 채웠다. 특히 업황 둔화를 고스란히 맞은 계열사도 목표한 자금 조달에 성공할 정도로 자본시장의 신뢰를 다시금 확인했다.

문제는 재원을 '어디에 쓸지'에 대한 방향성 문제다. 주력 계열사들은 본업에서 경쟁 강도 심화 및 업황 악화가 예고된 상황에서 새 먹거리를 보여달라는 주주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시장과의 접점을 늘리고 지주사의 역할을 강화하는 등 변화된 모습을 내비친 점은 긍정적이지만, 결국 그룹이 뚜렷한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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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은 회사채시장에서 빅 이슈어의 면모를 여지없이 드러내며 올해를 시작했다. 채 1분기가 끝나지 않았지만 LG유플러스(5000억원)에 이어 LG디스플레이·LG전자가 각각 최대 4000억원, 500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LG화학이 1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조달에 성공해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우량 신용등급을 유지 중인 계열사는 물론, 실적 부진으로 신용도가 하락한 LG디스플레이(AA-)에도 투자금이 몰리기도 했다.

한 크레딧업계 관계자는 "국내 회사채시장이 활발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나마 물량을 지탱해주는 LG그룹이 조달에 실패할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며 "다만 지난해 말 이후 '충성 고객'들이 점차 빠져나가는 모습은 관찰되고 있고, 그룹 자금팀에서도 인지하는 것으로 알고있다"고 설명했다.

자금 사용처도 그간 기존 차입금 차환·시설자금 투자 등에서 보다 다변화될 예정이다. LG유플러스는 회사채 발행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CJ헬로 인수에 활용할 계획이다. LG화학, LG전자 주도 국내·외 M&A에 보유 자금을 활용할 가능성도 커졌다. LG화학은 글로벌 화학사 바스프(BASF) 내 솔베이 EP사업부 인수를 진행 중이고, OLED소재 등 일부 사업 강화를 위한 인수도 검토하고 있다. LG전자도 해외 기업 위주로 매물을 발굴 중이다.

이처럼 외견상 계열사들이 예고한 자금확보엔 순항을 보였지만, 투자자들은 이제 자금 활용처에 주목하고 있다. 안정적·우량 기업으로 평가받아온 계열사까지도 이제 '대안'을 준비해야하는 시점에 직면했다는 설명이다.

LG화학이 대표적이다. 이번 자금 조달로 회사의 차입금(2018년 말 기준)은 2016년 대비 2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까진 석유화학 호황을 바탕으로 기초소재사업이 실적을 끌어올려 차입 부담을 해소해왔지만, 지난해 4분기 해당 사업부가 '어닝 쇼크'를 기록하는 등 올해 들어 다운사이클에 진입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회사는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글로벌 선두권 도약을 목표로 투자를 집행하고 있지만, 수익성으로 되돌아올지는 미지수다. 배터리 특성상 설비 가동까지 비교적 단기간(1~2년) 시간이 소요되는 사업인 만큼 ‘진입장벽’을 얼마나 유지할지도 논란거리다. 상대적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도 그룹 차원 투자 결정을 내린 이후 빠른 속도로 추격 중이다. 지난 2017년 LG화학과 LG생명과학간 합병에서 신사업 주축으로 강조했던 바이오 부문은 어느새 투자자 관심에서 멀어졌다.

한 기관투자가는 “회사 내에선 앞으로 늘어날 배터리 수요를 현 공급업체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시장이 커진다고 내다보지만 정교한 사업계획을 세웠기보다 외부 컨설팅사들의 전망치를 토대로 자금을 집행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온다”며 “이미 LG가 중국과 경합한 산업(LCD)에서 쓴 맛을 본 상황에서 중국 CATL 등이 이끄는 배터리에선 어떻게 다르게 접근할 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한 축인 LG전자는 조성진 부회장의 주도 아래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해 수익성 위주의 체질 개선까진 성공했다. 다만 스마트폰의 대규모 적자가 이를 무색하게 했다. 조 부회장은 “50개가 넘는 기술기업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며 변화를 선언했지만, 문제는 뚜렷하지 못한 방향이다. LG전자가 로봇·인공지능(AI) 등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분야도 이미 글로벌 IT기업들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폴더블' 스마트폰 사태가 드러냈 듯 삼성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탑티어(Top-tier) 업체들과의 기술격차 해소도 숙제다.

LG그룹도 변화의 불씨를 드러내고 있다. 구광모 회장이 부임한 이후 권영수 부회장이 지주사 ㈜LG를 이끌며 그룹 계열사들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강화해 사업 재편에 속도를 내겠다는 포석이다.

"시장과 접점이 있는 인물이 안보인다"는 투자자들의 불만에도 대응하고 있다. ㈜LG는 M&A와 신사업을 총괄할 경영전략팀 수장으로 홍범식 사장을 영입해 IB업계 및 시장 관계자들과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LG그룹 내부에선 향후 1년에 두 차례 기관투자가 및 금융투자업계 인사를 초청해 그룹의 방향성을 설명하는 자리를 여는 방향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업계에선 LG그룹이 ‘투자전문회사’ 모델을 내세운 SK식의 극단적 변화는 아니더라도 CJ그룹과 롯데그룹의 지주사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한 지주사 담당 애널리스트는 "구체적인 방법과 성과에 대한 평가가 갈릴 순 있어도 지주사에서 '그레이트CJ'를 내걸고 계열사들에 꾸준히 해외 확장을 독려한 점은 주주들의 공감을 얻었다"라며 "롯데지주도 신동빈 회장이 IT 강화를 내걸어 계열사들에 '미션'을 줬고, 황각규 부회장이 1년에 두 번씩 투자자와 기관을 만나 성과를 설명하고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를 통해 스킨십을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삼성그룹은 성패 여부 및 승계 시점과 맞물린 점 등을 논외로 하더라도 이재용 부회장이 바이오를 신사업으로 점찍어 자기 비전으로 공식화했고, 의사결정이 느리다 비판받아온 현대차그룹도 정의선 체제가 공식화되자 시장이 놀랄 정도로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며 “LG도 유독 보수적인 그룹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직접 주주와 이해관계자들에게 비전을 내보일 필요는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3월 18일 07:0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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