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디벨로퍼 꿈꾸는 대림산업, 임직원에겐 "군대조직문화 배워라"
입력 2019.04.11 07:00|수정 2019.04.10 22:59
    대림산업, 임직원들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에 대한 문건 작성
    군대·도요타 조직문화를 배워야할 문화로 꼽아
    "불만분자 나가라"…경직된 조직문화로 인력이탈 가중 우려
    • 대림산업은 이해욱 회장 시대 개막과 더불어 글로벌 디벨로퍼로의 도약 가속화를 내세웠다. 하지만 정작 조직 문화는 '글로벌'이 아닌 군대를 지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에 대해 불만을 가진 직원들을 분류해 퇴출을 유도하는 등 후진적인 기업문화를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 인베스트조선이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대림산업은 최근 '조직문화 활성화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의 전체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고 작성 주체는 경영지원본부로 추정된다.

      '임직원들에 필요한 마인드셋(Mind-set)' 챕터에선 임직원들의 정신 상태를 지적했다.

      "유화의 도움이 없었으면 우리는 이미 망한 회사임에도, 스스로 잘해서 생존한 걸로 착각하고 있다"며 "모든 위기상황마다 우리 힘으로 위기를 극복한 적이 없다"고 자조적인 목소리를 냈다.

      "위기 상황마다 변화를 강조해왔으나, 여전히 과거 관행에 얽매여 동일한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며 "(임직원들은)회사의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성과급 등 개인적 이익만 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서에는 에쓰오일 RUC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문제를 드러내어 해결하기 보다 감추기에 급급하여 문제해결의 골든 타임을 놓쳤다"고 밝혔다.

      대림산업은 에쓰오일과 RUC프로젝트 정산 방식으로 코스트앤피(cost and fee) 계약을 맺었다. 코스트앤피는 플랜트 발주자가 모든 비용을 지불하는 동시에 수행비를 별도로 계산해서 더하는 방식이다. 공사도중 늘어나는 물량에 대해서는 서로 협의하게 되어 있다.

      대림산업 측은 “RUC 프로젝트 시공 중에 설계가 변경되고 물량이 늘어났을 때 에쓰오일측과 협의를 미리 체크하지 않았고 구두로 넘어가다 보니 나중에 정산 금액에 혼선이 왔다”며 “에쓰오일 측에서는 서류를 증명하라고 요구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밖에 플랜트 부문은 매너리즘과, 책임회피, 패배주의로 물들어있다고 지적했다.

      문건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문화'로 군대조직문화와 도요타를 들었다. 군대조직문화는 군가방위, 가족보호를 위해 혹독한 훈련도 참아내고 때로는 희생도 감수한다며 희생, 명예, 복종, 임무완수, 전우애 등을 키워드로 꼽았다. 도요타에 대해선 '회사가 곧 나'라며 "일에 대한 보람을 갖고 공동체를 위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일하는 자세'라고 칭송했다.

      임직원들에게 심어줘야 할 '마인드'는 책임의식, 자신감, 복종심, 결속력, 운명공동체의식이라며 "본부장부터 말단사원까지 인식 및 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뀌도록 경영지원본부가 책임지고 이끌겠다"고 덧붙였다.

      이해욱 대림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대림산업은 그동안 건설업에서 쌓인 노하우를 바탕으로 글로벌 디벨로퍼(부동산 개발업체·developer)로 도약할 것을 선언했다. 사내에선 회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아비판까지는 이해하지만 군대식 문화를 지향하는 것이 '글로벌' 기업과는 거리가 먼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선 가뜩이나 강압적인 군대조직문화가 사내에 깔려있는데 이처럼 경영지원본부가 나서 이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대림산업의 인력이탈이 가중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건설업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는 “대림산업이 목표하는 글로벌 디벨로퍼로 거듭나기 위해선 보다 유연한 조직 문화가 필요할 수 있다”며 “세계 무대에서는 경직된 조직문화가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림산업 측은 “예시로 든 군대조직문화는 마치 웨스트포인트(미 육군사관학교)처럼 효율성을 찾자는 얘기였다”고 해명했다.

    • 대림산업은 저성과자와 회사에 불만을 가진 직원들에게 어려운 임무를 부여하는 등 압박을 가해 자발적으로 퇴직시키자는 내용을 담은 'Blamer 관리 방안'이라는 문건도 작성했다. 불만을 가진 직원들을 '블레이머(Blamer·불만분자)'라고 지칭하며 A, B, C 세 가지 타입으로 분류했다. 이들은 타입에 따라 관리되며 성과에 따라 퇴출이 유도된다. 신입과 경력사원을 채용할 때도 불만분자에 대한 검증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회사측은 "이 (인사관리 방침) 문건은 두달 전 작성된 것으로 현재 채택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림산업은 지난해 말 플랜트사업에서 지난 5년간 1조원 이상 누적적자를 기록하면서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했다. 이에 따라 직원들의 임금을 동결하고 승진을 중단시키며 보직수당도 폐지할 방침을 내세웠다. 플랜트 부문 임원 15명 전원에 대해 사직서도 받아 이중 5명의 사표가 수리됐다. 임헌재 플랜트사업본부장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잔류하게 되는 임원은 임금의 30%를 반납할 계획이었다.

      설계 등 핵심 인력들의 이탈 조짐이 보이자 대림산업은 결정을 번복하게 됐다고 전해진다. 올해 초 현대엔지니어링과 삼성엔지니어링 등 경쟁사들은 경력 채용에 나선 바 있다.

      대림산업 내부 관계자는 “결국 불만이 있으면 회사를 나가게 만드는 방침이다”며 “윗선 결정이 잘못됐더라도 말을 꺼내지 못하는 복종 분위기가 형성되면 회사는 망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