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냐 '금호그룹'이냐, 선택의 기로에 놓인 박삼구 회장
입력 2019.04.12 07:00|수정 2019.04.11 18:24
    産銀 "박삼구 회장 책임 있는 자세 필요"
    금융위 "박 회장 다시 돌아오지 말라"
    아시아나 살리려면 추가적인 조치 불가피
    선택지 얼마 없는 박삼구 회장
    그룹 포기 vs 아시아나항공 매각 선택 기로
    • 아시아나항공 위기에 대한 금융당국의 칼 끝은 박삼구 회장을 향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오너일가가 아시아나항공의 위기를 재무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하는 박삼구 회장은 결국 '아시아나항공을 살리느냐' 아니면 '아시아나항공 없는 금호그룹을 살리느냐'의 기로에 서게 됐다.

      금융위원회와 산업은행이 박삼구 회장을 바라보는 시각은 냉정하다. 두 기관 모두 박 회장의 경영 퇴진만으론 아시아나항공을 지원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아시아나항공은 박삼구 회장이 금호고속 지분을 모두 내놓고, 최악의 경우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할 수 있다는 내용의 자구안을 제출했지만 채권단의 반응은 극히 회의적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채권단이 손실을 보는 지원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재무구조개선 약정(MOU)의 연장도 "박삼구 회장이 사재출연을 비롯한 충분한 책임을 다한 후에 가능하다"는 뜻을 나타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물러설 뜻이 없어 보인다. 최 위원장은 "아시아나항공의 위기는 지배구조에 있다"며 "박삼구 회장이 과거에 경영에 복귀한 적이 있는데 또 반복하면 시장의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박삼구 회장에게 다시 돌아오지 말라는 경고를 날린 셈이다. 11일엔 "아시아나항공에 이미 30년의 시간이 주어졌었는데, 또다시 3년을 달라고 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채권단이 판단할 것"이라며 아시아나항공의 자구안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결국 산은도 금융위도 박 회장과 아시아나가 낸 자구안에 'NO'라고 선언한 상황이다.

      과거 산업은행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구원투수로 수 차례 나선 이력이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호그룹이 갖고 있던 금호타이어·대우건설·KDB생명(舊 금호생명)을 떠안았고, 몇몇은 여전히 산업은행의 골칫거리로 남아 있다. 금호타이어가 더블스타에 매각될 당시에도 산업은행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전에 참여한 박삼구 회장과 갈등을 빚었다.

      이동걸 회장은 사실상 아시아나항공 위기를 박삼구 회장의 '경영 능력 부족'으로 귀결시켰고, 오너일가에 '과감한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투자금융업계 관계자는 "과거 금호그룹의 부실을 산업은행이 고스란히 떠안았는데도 박삼구 회장은 번번이 산업은행과 대립각을 세워왔다"며 "산업은행이 또 다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지원해 줄 유인이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산업은행 지원 없이 아시아나항공이 자체적으로 재무위기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는 문제가 남아 있다.

      당장 신용등급 하락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최악의 경우엔 1조7000억원에 달하는 차입금을 한번에 갚아야 한다. 아시아나항공은 자산매각(CJ대한통운 지분·금호아시아나 사옥), 자회사 기업공개(아시아나IDT·에어부산), 자본성 부채 조달(영구채 발행) 등 가용한 재무구조 개선 카드를 모두 사용했다. 주가가 액면가(5000원) 이하로 떨어진 상황에서 주주들에게 증자를 요구하기도 어렵다.

      오너일가가 아시아나항공에 재무적으로 보탬을 주는 데도 한계가 있다. 박삼구 회장과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은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금호고속이 전부다. 부자의 지분가치를 모두 합쳐 현금화 해도 아시아나항공의 차입금을 줄이는데 유의미한 효과를 보기 어렵고, 이마저도 상당 부분 담보로 제공돼 있다.

      따져보면 박삼구 회장 입장에서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한 금호고속의 지배를 통해 아시아나항공은 물론 그룹 전반에 걸친 실질적인 영향력 행사가 여전히 가능하다.

      박삼구 회장이 금호고속 지분을 매각하는 것은 그룹 경영을 원천 봉쇄하는 가장 강력한 방안 중 하나다. 하지만 현실화하기 어려운 점은 분명하다. 금호고속 매각은 곧 금호아시아나그룹 포기와 맞닿아 있다. 그에게 있어 아시아나항공은 그룹의 유일한 캐시카우(Cash Cow)이자 가장 상징적인 회사다. 아시아나항공은 박삼구 회장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계열사 지원에 앞장서 온 그룹의 핵심이다.

      이 상황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한다면 한 때 재계 7위까지 올랐던 그룹은 지방 건설사와 운수업체를 가진 중소그룹으로 쪼그라드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대신 아시아나항공은 유동성이 충분한 새로운 대주주를 맞이해야 금융지원을 통해 지금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

      말 그대로 이제는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아시아나그룹 모두를 취할 수는 없다는 얘기로 점철된다.

      박삼구 회장은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대우건설, 대한통운, 금호렌터카, 금호생명, 금호타이어, 금호석유화학 등 수많은 회사를 떠나 보낸 박삼구 회장이지만 아시아나항공 매각에는 어떤 선택을 내릴지가 이제 남은 이슈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4월 11일 15:00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