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의 지향 조직문화와 창업철학 '한숲정신'의 간극
입력 2019.04.15 07:00|수정 2019.04.15 14:02
    • 요즘 대림그룹 팀장급 이상 임직원들 책상에는 책 한 권이 놓여 있다. 제목은 ‘도요타의 원가’.

      회사에서 직접 임직원들에게 나눠줬다고 알려졌다. 대림산업은 최근 작성한 조직문화 활성화 문건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문화’로 군대조직문화와 도요타를 꼽았다. 이에 대한 실천 차원에서 도요타 경영방식에 관한 책을 나눠줬다는 설명이다.

      대림그룹 직원들은 “이 책 다음으로는 군대생활백서를 나눠주는 것 아니냐”고 쓴웃음을 지었다.

      대림산업 측은 외부로 유출된 ‘조직문화 활성화 문건’에 대해 이해욱 회장에게 보고되기 전 임원들이 사전에 보고 의견을 나누기 위한 용도였다고 해명했다. 표현이나 키워드 등은 순화될 예정이었다고 덧붙였다.

      내부 직원들의 반응은 회사측의 해명과 다소 차이가 있다. 배워야 할 문화로 굳이 군대조직문화를 택하고 복종심, 희생심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이미 회사가 그런 분위기이고 이를 더 강화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회장의 요구가 없었음에도 임원들이 알아서 군대식 조직문화 만들자고 나선 것은 일종의 '충성 보고'라고 꼬집는다.

      임원들의 과잉 충성이 이해욱 회장의 제왕적 경영을 부추긴다는 평가가 내부 직원들에서 나오는데 정작 그룹 수장은 고통을 분담하고 있지 않다. 지난해 플랜트사업본부는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직원들에게 무급휴가를 보내고 진급 제한, 임금 동결 방침을 발표하는 등 회사의 고통을 분담시켰다. 같은 해 이 회장은 대림코퍼레이션에서만 연봉 103억원을 받았다.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 60곳 중, 단일 계열사에서 보수로만 100억원 넘게 받은 사람은 이 회장이 유일했다.

      대림산업 내부관계자는 “조선시대 왕도 가뭄이 들면 식사를 단출하게 하고, 초가집에서 생활하며 백성들과 고통을 함께 했다”며 “본인은 누릴 것 다 누리면서 밑에 직원들에게 무조건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암군이다”고 말했다.

      애초에 대림그룹 직원들은 근로계약으로 맺어진 고용주일 뿐인 회장에게 왜 복종하고 희생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 회장을 중심으로 한 측근 임원들의 전근대적인 모습이 21세기 대한민국과 동떨어져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지어 이해욱 회장은 경영권 기반이 탄탄하지 못한 상황이다. 지주사인 대림코퍼레이션을 통해 보유한 핵심계열사 대림산업에 대한 지분율은 23.12%에 불과하다. 짠물배당, 갑질논란 등으로 주주들의 의사에 반하는 오너 일가 행보는 적대적 M&A 가능성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기성세대들은 이런저런 논란에도 이 회장을 알아서 잘 모시지만 밀레니얼 세대 직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전근대적인 조직문화를 참지 않는다. SNS 등을 능숙하게 사용하며 부당하다고 느끼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 민주화, 세계화 이후 태어난 이들 눈에는 회장과 임원들의 군대식 조직문화가 우스꽝스러워 보인다고 한다.

      대림그룹 직원들은 SNS와 커뮤니티를 통해 대림그룹의 내부 사정을 외부로 지속적으로 유출하고 있다. 이에 대림그룹은 회사의 불만을 가진 직원들을 '블레이머(Blamer·불만분자)'로 부르며 관리하는 방안에 대한 문건을 작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직원들은 앞으로 이런 조치를 취하게 된다면 오히려 외부에 더 많이, 빨리 알려질 것이라고 말한다. 전근대적인 모습에 놀란 사람들이 문건의 캡쳐본을 퍼 나르며 밈(meme; 인터넷상 유머)처럼 소비하기 때문이다. 한진그룹 오너 일가를 위기에 빠뜨린 ‘땅콩 리턴’도 익명 어플리케이션에서 시작했다.

      대림그룹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한숲정신'을 창업철학으로 소개한다. 한숲은 대림(大林)의 순우리말 표기다. 한숲은 격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도 수많은 생명체가 어우러져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는 풍요의 숲, 성장의 숲이라고 한다. 모든 구성원들이 배우고 성장하면서 동시에 서로 조화를 이루며 번영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한숲'이라는 창업철학에 담았다고 한다. 대림그룹 임원들이 지향하겠다고 하는 문화가 창업철학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