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RS16 급한 불 끈 해운사, 향후 장기운송계약 먹거리 줄까 걱정
입력 2019.04.24 07:00|수정 2019.04.25 10:01
    IFRS16 도입에 CVC계약 리스처리 쟁점으로
    화주가 실질통제권…’리스 성격 있다’ 주장 비등
    옛 계약까지 리스 회계처리 하자니 부담 커져
    금융위 ‘신규 계약부터 리스 판단’ 절충점 찾아
    급한 불 끈 해운사, 향후 CVC계약은 어려워질 수
    • 금융위원회가 올해 이후 체결한 장기운송계약(CVC, Consecutive Voyage Charter)에 대해서만 계약별로 리스 회계처리 하도록 방침을 정했다. 과거 CVC계약까지 새 리스 회계제도(IFRS 16 Leases) 상 리스로 처리할 경우 해운사의 매출 감소 등 타격이 크다는 점을 감안해 절충안을 도출했다는 평가다.

      해운사 입장에선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부담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회계법인들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상황이라 신규 CVC계약은 대부분 리스로 처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매출 감소, 부채비율 상승 등 영향이 불가피하다. 선사와 똑같은 부담을 안는 화주들 역시 CVC계약을 새로 맺는 데 부담스러워질 수 있다.

      ◇IFRS16 도입, 부채 계상 외에 CVC계약 판단도 쟁점

      23일 금융위원회는 신 리스기준서 시행 전후의 CVC계약 회계처리 관련 감독지침을 발표했다. 작년까지 체결된 CVC계약에 판단 오류가 없다면 리스로 처리하지 않되, 올해부터 체결된 계약에 대해선 ‘계약별로’ 판단해 회계처리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IFRS16은 2017년 5월 제정됐고 올해부터 적용 중이다. 도입 전부터 해운업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이미 재무제표에 자산과 부채를 계상하고 있는 ‘금융리스’ 외에 ‘운용리스’도 똑같은 방식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박 운용리스 비중이 큰 해운사, 특히 컨테이너선사를 중심으로 자산과 부채를 반영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요구가 많았다.

    • 해운사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부 입장에선 회계 처리의 투명성은 물론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항공업계 등과의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큰 문제는 CVC계약을 리스로 회계 처리하느냐였다. 운용리스 회계 처리는 명확히 바뀐 기준에 맞춰서 한다 치지만, CVC계약은 과거와 새 기준 중 어떤 것을 적용할 지 해석의 문제가 있었다.

      ◇CVC계약에 리스 성격 포함…화주가 실질 사용통제권 보유

      옛 리스 기준에선 특정 자산을 사용하고, 이용자에 자산 사용통제권이 이전될 경우 리스로 판단했다. 단 사용통제권 이전 기준 등을 명확히 기술하지 않다 보니 CVC계약을 운송계약으로 회계처리 하는 경우가 많았다. 선사가 화주로부터 받는 대가가 매출로 인식됐다. 주요 해운사의 2018년 사업보고서도 감사인 이견 없이 적정의견을 받았다. IFRS를 채택한 대만에서도 이전 기준으로는 CVC계약이 리스요소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봤다.

      새 리스기준은 계약이 식별되는 자산(특정되고 공급자의 실질 자산 대체권 없음)의 사용 통제권(고객이 경제적 효익의 대부분을 향유하고 고객이 자산 사용지시권 보유)을 일정 기간 이전하게 한다면 리스이거나 리스를 포함한다고 규정한다.

      해운선사와 화주가 맺는 CVC계약은 ▲선박을 사용하게 해주는 계약과 ▲운항비·인건비·연료비 등을 부담하는 용역 계약으로 나뉜다. 이 중 선박을 사용하게 해주는 계약을 리스로 보아야 하느냐가 핵심 쟁점이었다.

      CVC계약을 맺은 선사는 화주들의 요청대로 원하는 화물을 실어 날라주게 된다. 특정 선박이 선사 소유라고 하더라고 화주들의 의사에 의해서만 움직일 수 있다. 운송의 정시성을 담보하기 위해 일이 있건 없건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선박이 계약을 맺은 화주의 요구에 최적화돼 있기 때문에 다른 화주의 일을 맡기도 쉽지 않다.

      장기운송 시 선박을 여러 항만에 보내 물건을 실어오는 경우가 많다. 한 항만만 고수해서는 원활한 선적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화주가 자유롭게 배를 활용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면, 선박은 화주의 자산으로 볼 수 여지가 있다는 의견이 회계법인들을 중심으로 나왔다. 금융감독원과 회계기준원도 리스 성격이 있다고 봤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적 꺾이는 선사도, 수정 어려운 감사법인도 난처

      선사들은 난색을 표했다. 계약이 아니라 리스로 회계 처리한다면 회사의 실질은 그대로인데 매출이 줄어들고 실적이 악화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CVC계약을 용역의 제공이 아니라 리스로 해석한다면 화주로부터 받던 운임을 매출로 인식할 수 없고 리스 채권의 회수로 반영해야 할 것”이라며 “이익률이 박한 업계 상황상 선사들은 매출 중 일부 운임으로 영업이익을 내왔는데 IFRS16 도입으로 흑자 기업이 적자 기업으로 바뀌는 경우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매출 감소는 이익 감소, 신용도 감소, 금융 비용 증가 등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많았다. 일부 기관에선 한국해운연합(KSP) 소속 14개 선사의 매출 감소 효과가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계약을 다시 감사하고 새로운 기준대로 수정하는 일도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과거 어느 시점의 보고서까지 손을 댈 것인지도 고심거리였다.

      회계법인은 회계법인대로 난처했다. 새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자니 과거의 CVC계약 모두를 리스로 바꿔야 할 가능성이 컸다. 이미 2018년 사업보고서에 적정 의견을 내놓고 바꾸자니 자기 부정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회계 투명성 강화 움직임에 역행할 가능성이 컸다. 무엇보다 부실 감사 문제가 불거졌을 경우 책임 소재가 부담스러웠다. 빅4 회계법인은 글로벌 정책도 신경써야 했다.

      특히 장기운송계약 비중이 높은 해운사, 혹은 화주의 감사법인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CVC계약은 선사는 물론 화주도 당사자기 때문에 IFRS16의 영향을 같이 받는다. 포스코와 한국전력 등 미국에 상장된 화주들의 감사인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눈치까지 봐야 한다.

      대형 회계법인 파트너는 “해외 상장된 화주의 감사인은 국내용과 해외용 사업보고서를 달리 제출해야 할 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IFRS16 적용 지침 문제는 쉬이 결론이 나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당초 11일 내부 회의를 통해 결론 짓고, 17일께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일정이 미뤄졌다.

      ◇금융위, ‘신규 계약부터 리스 판단’ 절충점 찾아

      금융위원회는 새 리스기준서의 경과규정에 주목했다. 옛 리스기준에 따라 계약에 리스가 포함되지 않았다고 판단했고, 판단에 오류가 없다면 리스로 회계처리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봤다.

      작년까지 체결한 CVC계약을 운송계약을 판단한 데 오류가 없다면 계약 종료 시까지 운송계약으로 회계처리 가능하도록 했다. 올해부터 체결한 CVC계약은 계약 별로 리스 회계처리 여부를 판단하도록 했다.

      과거 보고서 수정 부담과 해운사의 실적 악화 부담을 최소화 하면서도, 새로운 계약은 새 기준을 충실히 따를 수 있도록 했다. 해운업계와 감사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담은 절충안이란 평가가 나왔다. 우오현 SM그룹 회장 등이 정부에 고충을 토로해 온 점도 반영됐을 것이란 시선도 있다.

      금융위원회는 회계법인에도 운신의 여지를 줬다. 감사법인이 옛 리스기준을 적용한 기업의 판단을 존중하되, 그 판단 과정에 미흡한 부분이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게 했다. 아울러 기존 계약에 리스가 포함된 것으로 판단해 수정한 경우에도 위반이 중하지 않다면 가벼운 계도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해운사 급한 불은 껐지만…향후 먹거리 감소는 불가피

      해운사로선 최악의 사태는 막았지만 앞날까지 맑은 것은 아니다.

      회계법인들은 한국만의 IFRS(K-IFRS) 사례가 늘어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 과거 계약에 대해선 크게 손대지 않겠지만 앞으로는 신규 CVC계약은 리스에 해당하는 지를 꼼꼼하게 살필 가능성이 크다. CVC계약을 맺더라도 과거만큼의 매출 상승 효과, 재무제표 개선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상황이 악화하는 것으로 보이는 기업에 대한 투자 심리도 꺾일 수 있다. 상장에 나서려는 해운사도 CVC계약에서 성장성을 찾아내긴 어려울 전망이다.

      물론 회계 문제를 제외하면 CVC계약의 실질적 효과가 동일하다고 볼 수는 있다. 보여지는 숫자는 달라질지언정 계약을 많이 따내서 나쁠 것은 없는 셈이다. 그러나 CVC계약 건수가 줄어든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한 해운사 관계자는 “CVC계약은 화주의 재무제표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화주 입장에선 CVC계약보다 단발성 계약으로 전환하려 할 수도 있다”며 “수익성을 떠나 CVC계약은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들어낸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는데 화주들이 외면한다면 어찌할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