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다툼은 이제부터…대한항공 명운(命運) 가를 앞으로 1년
입력 2019.04.25 07:00|수정 2019.04.29 12:35
    앞으로 주총까지 딱 1년
    국내외 투자자 분쟁 현재 진행형
    고강도 쇄신안, 우군확보가 최우선 과제
    KCGI, 한진그룹 위한 명확한 명분 마련 숙제
    • 한진그룹의 경영권 다툼은 이제부터가 시작이 될 전망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진칼과 대한항공 주주주총회는 막을 내렸고, 고(故) 조양호 회장이 별세하며 그룹을 향한 외풍(外風)은 잠시 잦아들었다.

      한진칼 2대주주의 지분매입이 언제 다시 시작될 지 예측하긴 어렵지만,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간 공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음 주주총회까지 남은 기간은 딱 1년. 오너일가, 즉 조원태 사장은 조 회장의 한진칼 지분을 오롯이 상속받아 경영권을 지켜내는 것이 숙제다. 상속세 재원 마련은 물론이고, 적어도 경영권을 노리는 투자자들 보다 그룹의 비전을 더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한진칼은 올해 주주총회에서 석태수 사장의 연임에 성공했다. 그나마 오너일가의 입김이 미칠 수 있는 석 사장의 연임으로 가까스로 그룹의 경영권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안심하기 이르다.

      애초부터 KCGI가 예상한 '본게임'은 내년부터라는 관측이 제기돼 왔다. 조원태 사장(한진칼·대한항공 사내이사), 이석우 한진칼 사외이사 등 주요 임원들의 임기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주총 특별결의 요건을 갖춰야 하는 '해임' 안건을 꺼내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조원태 사장과 이석우 사외이사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에는, 주총 보통결의 요건만 충족하면 KCGI가 추천한 후보의 이사 선임이 가능하다.

      한진그룹은 이미 그룹에 반대하는 세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올 주총에서 석 사장의 연임에 반대한 투자자들은 의결권 기준 약 35%에 달했다. 2대주주인 KCGI의 지분율은 13.5%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꾸준한 지분매입이 예고돼 있다. 향후 주총에서 회사측 안건에 반대하는 주식수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결국 한진칼은 의결권 주식 65%(주총 보통결의 요건 50% +15%)를 지키는 것이 관건이다. KCGI의 입장에선 주총에서 회사측에 반대했던 의결권 35%를 유지하고, 나머지 15% 이상의 지분을 뺏어올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KCGI에 투자한 기업들의 상당수가 장기투자를 목적으로 출자했기 때문에 한진칼의 추가적인 지분매입 가능성이 충분히 높다"며 "오너일가의 한진칼 지분율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내년 주총의 성패는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한진칼의 경영권 또는 이사진 자리를 빼앗긴다는 것은 자회사인 대한항공의 경영권마저 넘어간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대한항공 투자자들은 이번 주총에서 오너일가의 사내이사 진입을 차단했다. 여기에는 주요 해외 연기금들도 상당수 존재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투자공사(BCI)·캐나다연기금(CPPIB)·플로리다연금(SBA Florida)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엔 대한항공의 외국인 지분율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 15%대까지 떨어졌던 외국인 지분율은 현재 25%까지 상승했다. 오너일가가 직접적인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음과 동시에, 모회사인 한진칼 경영권이 위협받자 지배구조개편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됐다. 이와 더불어 향후 자산가치 재평가, 수익 노선 위주의 사업재편 가능성도 점쳐지면서 재무적·사업적 영역에 초점을 맞춘 외국인 투자가들이 늘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 차원에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외국인 투자자를 우호세력을 분류하긴 어렵다"며 "대한항공의 쇄신을 요구하는 주주들의 목소리가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한진칼과 대한항공, 어느 하나 안심할 수 없는 오너일가와 달리 KCGI를 위시한 투자자들은 비교적 여유가 있는 편이다. 한진칼의 주가 상승이 지속하면 오너일가의 상속세 부담은 그만큼 늘어난다.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주가 상승은 오히려 오너일가에 독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물론 KCGI 측에서도 한진칼의 주가가 상승하면, 추가지분 매입에 대한 자금소요가 늘게 된다. 다만 언젠가는 투자금회수(Exit)에 나서야 하는 펀드이기 때문에, 현재상황에서만 두고 봤을 때 충분한 차익실현이 가능하다는 평가다. 한진칼이 향후 고배당 정책으로 투자자들을 유인한다면, 이마저도 KCGI입장에선 잃을게 없다. KCGI는 이미 ㈜한진 지분을 매입했다. 이로써 오너일가가 ㈜한진 주식을 한진칼 주식으로 맞바꾸는 주식 스왑(Swap) 가능성도 원천 봉쇄했다. 그룹이 친주주 정책을 펼칠수록 KCGI는 이득이 되는 상황이 마련된 셈이다.

      손익계산서만 따졌을 때는 KCGI는 잃을 것이 많지 않다. 한진칼과 대한항공 투자자들 입장에선 경영권 분쟁으로 인한 주가상승, 향후 기업가치 제고, 배당확대 등을 노릴 수 있기 때문에 KCGI 측에 동조하는 투자자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KCGI 측이 처음부터 주장한 바 대로 한진그룹의 기업가치 제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보다 더 확실한 '명분'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평가다.

      올해 주총 시즌엔 단순한 고배당 요구를 미끼로 경영권에 도전하는 외부세력에 투자자들이 동조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장기적인 관점으로 접근해 기업에 도움이 되는 현실적인 안건이 투자자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수년째 실적부진에 시달리고, 부동산에 10조원대 투자를 단행하며 투자자들의 원성을 샀던 현대차그룹마저도 외부세력을 막아냈다. KCGI가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자'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위해선 이 같은 상황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한진그룹 비상경영체제를 맡고 있는 조원태 사장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오너일가 '불화설'을 잠재워야 하고, 투자들의 불안감을 잠재워야 한다. KCGI의 공세에 마지못해 내놨던 쇄신안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하고, 이를 통해 우군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년 주총까지 딱 1년의 시간이 있다. 조원태 사장의 시계는 이보다 더 짧은 시간만이 남아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