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말고 우리 돈 쓰세요"…금호그룹 찾아간 금융회사들
입력 2019.04.25 07:00|수정 2019.04.24 18:31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주관사 문의 빗발
    "5000억 우리가 낼 테니 주관사 지위만 달라"
    대출과 영구채로 상투 쥔 산업은행, 사실상 매각 전권(全權)
    비용은 금호가 주도는 산은이
    "아시아나 매각, 기업 M&A가 아닌 산업 구조조정"평가
    • 아시아나항공 매각에 참여하려는 국내 금융회사들의 물밑 경쟁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 첫 국적항공사 M&A라는 상징적인 딜을 자사의 '트랙레코드'로 활용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부 금융회사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산업은행이 지원할 자금을 대신 낼 테니 주관사 지위를 달라"는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아시아나항공의 매각 주도권을 산업은행에 넘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사실상 결정 권한이 없는 상태라 이를 거절했다.

      정부는 23일 아시아나항공에 총 1조6000억원을 투입하고 연내 매각을 완료하기로 결정했다.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하는 5000억원의 영구채를 매입, 8000억원 규모의 스탠바이론(신용한도)을 지원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아시아나항공이 일단 급한 불을 끌 수 있게 되면서 매각 작업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매각주관사 선정을 위한 공식적인 절차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지만 물밑 작업은 치열하다. 이미 산업은행에서 일부 IB와 회계법인, 법무법인 등 주관사를 선정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만, 이를 차치하고 국내 금융회사들은 주관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산업은행 대신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금호아시아나그룹 측에 하루에도 수 차례씩 주관사 선정과 관련한 문의가 오지만, 모든 제안을 사실상 거절하고 있는 상태로 알고 있다"며 "산업은행이 전권(全權)을 쥐고 매각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전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관리와 아시아나항공의 매각 작업은 김상일 실장이 이끄는 산업은행 기업구조조정 1실에서 주도하고 있다. 산업은행의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대출금은 약 1560억원으로, 총 2580억원의 장기차입금 중 60% 정도를 차지한다.

      1500억원대의 대출채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 매각 전반에 관여할 '명분'이 있느냐에 대한 시장에서 의구심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산업은행은 쥐고 있는 1500억원의 대출, 앞으로 지원하게 될 영구채, 또는 주식으로 전환이 가능한 채권 등을 통해 매각 전반을 관장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는 평가다.

      아시아나항공의 최대 주주는 33.8%를 보유한 금호산업이다. 금호고속과 더불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모체 역할을 한다. 금호산업은 핵심 자회사를 매각하는 처지에 놓였지만, 매각주관사 선정과 향후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권한을 쥐지 못했다. 과연 아시아나항공 지분가치를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구심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각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부담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금호산업 투자자 입장에선 불만을 나타낼 수밖에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사업적 실패를 인정하고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결정했으면, 산업은행에서도 완급 조절을 하면서 매각작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모든 권한을 쥐고 주도하려 한다"며 "대주주 지분을 매각하는 M&A에서 산업은행이 개입할 명분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하다"고 밝혔다.

      금호아시아나그룹에 긴급 자금을 대주겠다는 금융기관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 5000억원의 자금 정도는 시장 유동성이 풍부한 현재로선 국내 대형 금융기관들에 그리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이보다 자금지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매각 주관사 지위, 이를 통해 '국내 첫 국적 항공사 M&A를 성사시켰다'는 상징적인 효과가 더 크게 작용한다는 평가다.

      손익계산서만 따졌을 때 금호아시아나그룹에 크게 손해 볼만한 거래가 아니다. 어차피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을 결정한 상황에서, '입도 뻥긋 할 수 없는' 산업은행을 상대하는 것보다 오히려 기호에 맞는 주관사를 선정해 매각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 더 나을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선 매각 작업을 주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을 대하는 태도는 생각보다 상당히 거칠다"며 "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 매각이 일반적인 기업의 M&A라기 보단, 매각자는 민간기업이지만 사실상 정부가 주도하는 산업 구조조정에 가까워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