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KT 회장, ‘레임덕’ 감수할테니 ‘명예로운 퇴진’ 열어달라?
차준호·최예빈 기자 | chacha@chosun.com | 2019.05.13 07:00
Edited by 이도현 차장 | dohyun.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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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사내 회장 후보군 선임 절차 돌입
정관 변경 통해 사내 경영진 육성 절차 강화 천명
후보 대부분, 황 회장 재임기간 핵심 임원
'경영 연속성 확보 vs. 황창규 시즌2' 평가는 엇갈려

황창규 회장의 임기 마지막 해를 맞은 KT가 예년보다 일찍 새 회장 맞이에 분주하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올해 첫 주주총회를 통해 향후 펼칠 전략과 방향을 제시하는 데 공을 들이는 반면, KT는 새 경영진 선임을 한 해 주요 경영 계획으로 내세우는 이례적인 행보를 보였다.

일각에선 황 회장이 '명예로운 퇴진'을 하기 위해 조기에 새로운 경영진 구축, 스스로 레임덕을 유도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찌감치 차기 후계구도를 굳혀 KT의 고질적 문제인 '낙하산 인사'를 전면 차단할 것이란 기대와 회사의 역량이 지배구조 개편에만 쏠려 경영 관련 주요 의사결정에 지장을 줄 것이란 우려가 함께 나온다.

KT 신임회장 선출 절차

KT는 황창규 회장 임기가 내년인 2020년 주총 이전까지지만 이미 올 4월부터 차기 회장 선임을 위한 절차가 시작됐음을 공식화했다. 이에 따라 지배구조위원회는 사내 후보군을 구성해 심사대상을 추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KT 또는 그룹사 재직 2년 이상이면서 회사(KT) 직급 기준으로 부사장 이상인 자가 대상이다. 내부 절차를 거쳐 선정된 사내 후보들은 추후 사외 후보들과 경합을 거쳐 최종적으로 회장직에 오를 예정이다.

통상적으로 기존 회장의 임기 만료 3~4달 이전에서야 차기 회장을 공모해오던 이전과 다른 모습이다. KT가 이미 지난해 3월 지배구조 투명화를 내걸고 정관을 바꿔 회장 선임 절차를 손봤기 때문이다. 내부 임원진에서 차기 회장 후보군을 추린 후 보다 긴 시간 검증과정을 거쳐 정치권 등 외부 '낙하산'을 차단하겠다는 포석이다.

KT는 이를 위해 기존 CEO추천위원회에 속했던 회장 후보 추천 및 임명 권한을 이사회와 지배구조위원회(사외이사 4명, 사내이사 1명)로 이관했다. CEO추천위원회는 회장후보심사위원회로 이름을 바꿔 후보자 심사 기능만 갖고, 이사회에 심사 결과를 보고하도록 해 권한을 제한했다. 사실상 이사회의 권한이 막강해 진 구조다. 이에 맞춰 KT는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을 사외이사로 구성해 정부와 코드를 맞추는 데도 공을 들였다.

통신업계에선 황창규 회장이 '절묘한 수'를 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간 KT는 신임 회장의 부임 이후 전임 회장 색채 지우기가 사실상 관행이었다. 민영화 이후 회장을 거친 대부분 인사들이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황 회장 입장에선 자신과 그간 경영 성과를 공유해 온 내부 인사의 승진을 유도하면서 '명예로운 퇴진'을 꾀했다는 평가다.

사내에선 이미 오랜 기간 회사에서 성과를 쌓은데다 검증까지 거친 내부 인사가 회장 후보에 오를 경우 경쟁력과 명분 차원에서 외부 경쟁자들이 두각을 드러내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미 주요 이사진들이 새 정부와 코드가 맞는 인물들인만큼 정치권이 개입할 명분도 줄어든 상황이다.

현재 이동면 미래플랫폼사업부문장(사장), 오성목 네트워크 부문장(사장) 등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일각에선 올해 새로 사내이사로 편입된 이동면 사장이 보다 우위에 섰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모두 황 회장 임기 중 내부승진을 통해 성과를 쌓은 인물들이다. 기존 유력 후보로 꼽힌 김인회 경영기획부문장(사장)은 스스로 회장 후보직 불출마를 선언했다. 황 회장과 삼성에서 함께 이동한 데다, 비서실장을 지낸 측근인 점이 부담이었을 것이란 평가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차기 회장 후보별로 온도 차는 있겠지만 어찌됐건 내부 출신 후보들은 황창규 회장이 5년여간 회사를 이끌동안 함께 했던 임원들”이라며 “운명공동체인 상황에서 전 회장을 공격하긴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를 지켜보는 시장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그간 KT의 고질적 한계로 꼽힌 낙하산 인사를 일부 차단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란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통신업과 무관한 인사가 부임해 기업가치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전 회장의 치부를 드러내기에 급급했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 것이란 시각이다. 반면 황 회장이 밝힌 대로 '5G 원년이자 임기의 마지막해'인 올해를 사실상 경영진 교체로 낭비할 것이란 우려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이미 정치권의 채용비리 논란 등 KT를 둔 잡음이 쏟아지며 경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들어 경쟁사인 LG유플러스와 SK텔레콤은 케이블사 인수에 성공해 미디어 역량 강화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하지만 KT는 이미 점찍어 둔 딜라이브 인수마저도 국회 눈치에 전면 중단된 상황이다. 케이뱅크의 최대주주에 오르려는 계획도 대주주 적격심사가 차일피일 미뤄지며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최근엔 KT가 앞장서 5G '무제한 요금제'를 발표하며 논란에 서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무제한 요금제는 어느 정도 망 가입자가 확보되고 성장률 둔화가 뚜렷할 때 추가적인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통신사들이 활용해왔다. 사실상 요금 범위를 설정하는 데 한도(Cap)를 씌운 것과 마찬가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KT가 5G 서비스 시작과 동시에 무제한 요금제를 내놓으면서, 경쟁사들도 이에 맞춰 요금제 수정에 나서야 했다. 일각에선 ‘요금 현실화’ 등 당국에 거스르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상황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한 통신담당 애널리스트는 “비단 KT 뿐 아니라 통신업 생태계 장기적인 수익성 측면에서 황 회장이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라며 "임기가 곧 끝날 황 회장은 정부와 각을 세우기도 어려웠을테고 당장의 실적이 필요했겠지만, 이번 결정이 두고두고 회사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5월 09일 07:0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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