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 매각 무산되면 박삼구 회장 차등감자?…산은과 갈등 고조될 듯
입력 2019.05.20 07:00|수정 2019.05.22 09:32
    연내 매각 안되면 대주주 차등감자도 가능
    금호그룹은 서둘러야 회수 가능성 커져
    힘 빠지는 주가에 감자까지…채권단은 여유
    배임 카드 꺼내면 감자 실행 여부 불투명
    •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시작도 되기 전부터 '흥행 부진'  모습이 보이고 있다. 기대했던 SKㆍ한화ㆍ롯데 등 주요 후보들이 전부 공식 혹은 비공식으로 "사지 않겠다"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 같은 배경에는 항공산업 투자로 누릴 효과에 대한 불확실성, 그리고 각 그룹의 내부상황과 함께 "굳이 이번 매각에 곧바로 참여해 구주 가격까지 비싸게 사줘야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계산까지 더해진 것으로 보인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구주와 신주를 사들여 아시아나항공 간판을 바꾸는 것까진 어렵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한 인수후보 기업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에도 2조~3조원의 추가 자금 소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얼마든지 좋은 새 주인이 나타날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현했던 산업은행과 금융위원회로서는 적잖이 당황할 상황에 처했다.

      이러다보니 투자업계에서는 만약 올해 추진될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예상보다 흥행 저조로 어려움을 겪을 경우. 산업은행이 차등감자 등을 통해 박삼구 회장을 비롯한 기존 대주주 지분 가치를 줄일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산업은행으로서는 '구조조정 매각이면서 기존 대주주 주식을 팔아주는 이상한 거래'라는 비난을 피해갈 방법이 된다. 또 거래 규모도 줄여서 후보들을 더 끌어들일 요인이 되기 때문.

      하지만 이렇게 거래가 진행될 경우 아시아나항공 최대 주주인 박삼구 회장측, 그리고 금호산업 주주들의 반발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박삼구 회장으로서는 채권은행과 정부가 나서 '경영권 매각'을 종용했기 때문에 이에 응답하는 차원에서 매각을 결정했다. 그래놓고 지분을 감자하는 형식을 빌게 되면 회사 경영권을 내주면서 아무런 대가도 손에 쥐기 어려워진다. 마찬가지로 금호산업의 다른 주주들도 엄청난 주식가치 하락을 지켜만 봐야 한다.

      아울러 차등감자는 특정주주에게 임의로 강제하기 어렵고 감자 당하는 당사자의 동의도 필요한 터라 쉽게 단행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산업은행은 지난달 1조6000억원 규모 아시아나항공 지원안을 확정했다. 아시아나항공 M&A도 연내 추진하기로 결정하며 특별 약정을 맺었다. 매각 무산 시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 대주주 지분을 임의의 조건으로 매도한다는 동반매각요구권(Drag-along)과 아시아나항공 상표권 확보 등이다.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이에 더해 매각 무산시 대주주, 즉 박삼구 회장측 지분에 대한 차등감자 방안도 논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아시아나항공은 금호산업이 지분 33.47%를 가진 최대주주다. 금호산업은 금호고속(지분율 45.30%)이, 금호고속은 박삼구 회장 등(56.93%)이 거느리고 있다.

      박삼구 회장 측으로서는 어쨌든 매각을 서둘러 진행해야 보다 많은 기업과 접촉할 수 있고, 거래 성사 가능성과 회수 금액도 키울 수 있다. 행여 매각 진행이 더뎌지고 후보들의 냉랭한 분위기가 확산되면 연내 매각이 될지도 미지수다. 이렇게 되면 슬슬 "구주가 너무 많아 매각이 안된다"라는 논리로 차등감자 필요성이 제기될 수 있다. 박 회장 측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반면 산업은행은 굳이 서두를 이유가 없다. 이미 주요 주식을 담보로 잡고 특별 약정도 맺어 매각 진행의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 제거했다. 인수자의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 이들로서는 가능만하다면 차등감자를 통해 "실패한 경영자에 막대한 자금까지 쥐어준다"는 비판에서도 멀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때 매각 기대감으로 급등했던 아시아나항공 주가는 점차 하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주가가 원래 자리를 찾아갈 가능성이 크다. 1분기 실적도 부진했다. 산업은행으로서는 타이밍을 재고 보는 것이 매각 명분을 확보하는 데 여러가지로 수월하다.

      그리고 연내 매각이 완료되지 않더라도 차등감자 카드를 꺼내면 된다. 채권단이 오너 일가의 경영 부실을 물을 때 종종 쓰는 방식이다. 대주주 입김을 더 확실히 제거할 수 있고, 인수자의 부담도 그만큼 줄어든다.

      자금력을 갖춘 원매자들이 일찌감치 발을 뺀 상황에서 이렇게 감자 형태로 산은이 나서면 인수후보자들도 못이긴 척 나서는 모양새가 연출될 수도 있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이 정상기업이고 대주주가 경영권 포기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처음부터 차등감자를 추진하진 않았지만 1차 매각이 이뤄지지 않을 시 차등감자에 나설 수 있는 선택지도 가지고 있다”며 “이런 부담 때문에 금호그룹 입장에선 빨리 원매자와 접촉해 매각을 완료하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런 차등감자 시나리오가 얼마나 수월하게 진행될 것인지는 미지수다. 강한 반발이 예상되고, 법적 요건도 충분히 갖춰야 하기 때문.

      현행 상법상 자본금 감소는 정관변경의 특별결의 요건(출석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일반적으론 저 조건을 맞추기 어렵지만 결손의 보전을 위한 경우엔 보통결의 요건(출석주주 의결권의 과반수, 발행주식총수의 4분의 1 이상)만 넘으면 된다. 아시아나항공의 실적이 악화해 결손이 많아진다면 감자는 수월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 어느 경우에도 주주총회에 안건을 올리려면 대주주인 박삼구 회장 측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시가가 있는 주식을 그보다 낮게 팔거나 혹은 감자한다면 금호산업엔 손해다. 무엇보다 금호산업 주주들이 보기에는 확실한 '배임'요인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대주주가 ‘자발적으로’ 동의할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면 진흙탕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전환사채(CB)를 모두 주식으로 전환해도 금호산업 지분율엔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아시아나항공 이사회 장악도 쉽지 않다.

      다른 M&A 업계 관계자는 “금호산업이 결정적인 순간에 배임 카드를 꺼내고 문제를 내년 총선 이후까지 끌고 간다면 결말이 어떻게 날 지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