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 매각, '하이닉스'와 닮은 꼴...신·구주 매각가 논란 '예고'
입력 2019.05.21 07:00|수정 2019.05.23 09:29
    신주+구주 매각 구조, 2011년 하이닉스와 유사
    '실패한 경영자'가 구주 쥔 구도는 반대
    '스텝업' 부담스러운 영구채...상환 순위 우선
    • 이번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신주·구주의 비율과 금액을 두고 금호그룹과 원매자, 그리고 한국산업은행의 수 싸움이 치열하게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1년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 매각과 비슷한 구도다.

      산업은행이 지원한 5000억원 규모 영구채는 일종의 '신주 발행 가이드라인'이 될 전망이다. 최소 투입금액이 정해진 상황에서, 원매자가 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 가치를 얼마로 보느냐가 금호그룹측 구주 매입에 쓸 수 있는 한도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 스텝 업 영구채, 사실상 '매각시 증자해 상환하라'

      아시아나항공은 지난달 29일 산업은행을 대상으로 4000억원 규모의 하이브리드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30년 단위로 무제한 연장되는 영구채 성격으로 자본에 반영된다. 조만간 1000억원 규모의 영구채 발행이 추가로 이뤄지게 된다.

      이 CB는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자금 지원임과 동시에, 경영권 매각을 담보하는 족쇄로 분석된다.

      산업은행은 발행 1년 후인 2020년 4월말부터 이 CB를 주식으로 바꿀 수 있다. 산업은행은 이에 대해 '유사시 전환권을 행사한다'는 단서를 달았는데, 금융권에서는 '금호그룹이 주관하는 아시아나항공 경영권 매각이 실패했을 때'라고 해석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CB전환으로 아시아나항공 지분 18%를 확보할 수 있다. 가격재조정(Re-fixing) 조항을 통해 증자·감자 등 자본변동이 있더라도 확보 가능한 지분율은 18%로 고정된다. 산업은행이 이 지분을 기반으로 금호그룹 보유 지분에 드래그얼롱(동반매도요구권)을 행사하면, 희석 후 기준 아시아나항공 지분 45.2%를 산업은행 주도로 매각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는 '플랜B'다. 원매자가 나타나 금호그룹측 구주를 인수하고, 증자를 통해 아시아나항공에 현금을 보강한 뒤 산업은행이 지원해준 영구채를 상환하는 것이 현재 진행 중인 매각의 큰 방향으로 예상되고 있다.

      산업은행은 CB에 공격적인 스텝업(step-up;금리 조정) 조항을 달았다. 첫 2년간은 금리가 연 7.2%다. 2021년 5월부터는 기본 금리가 9.5%로 오르고, 2022년 4월26일의 국고채 3년 수익률과 2년 수익률 사이의 스프레드(차이)가 조정금리로 추가된다. 2024년 5월부터는 매년 0.5%씩 금리가 가산된다.

      아시아나항공은 2년 뒤인 2021년 4월 혹은 '최대주주가 변경되는 경우' 이후 매 3개월마다 100억원 단위로 이 CB를 조기 상환할 수 있다. 고금리인데다 산업은행이 전환권을 보유한 이 CB를 남겨두는 건 새 아시아나항공의 주인이 될 기업 입장에서는 껄끄러운 일이다. 증자를 통해 아시아나항공에 자금을 보충한 후, 이 CB를 우선 상환할 가능성이 크다.

      ◆ 신구주 둘러싼 이해관계 충돌 불가피...'2011년 하이닉스' 살펴보니

    • 결국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금호그룹측이 보유한 구주 33.5% 인수와 산업은행이 지원한 영구채 5000억원 상환을 위한 신주발행이라는 투 트랙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구주와 신주의 가격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구주의 경우 금호그룹측에서 경영권 프리미엄을 극대화해 받으려 할 가능성이 크지만, 신주의 경우 증권 발행에 관한 규정에 따라 주가에 연동돼 발행가액이 결정된다.

      2011년 하이닉스반도체 매각 때에도 이 같은 투 트랙 구조가 이슈가 됐다. 정책금융공사(현 한국산업은행)를 비롯한 하이닉스채권단은 당시 보유한 경영권 지분 15%를 내놓으며 신주 발행을 병행하는 매각 구조를 짰다.

      앞서 두 차례 매각 실패를 경험한 상황에서, 하이닉스의 현금흐름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었던 까닭이다. 신주 인수를 통해 잠재인수자가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확보하면서, 하이닉스 내부에 현금도 채워넣는 구조를 선택한 것이다.

      문제는 신주와 구주의 인수 가격을 어떻게 다르게 하느냐였다. 하이닉스는 상장사로, 신주 발행을 위한 유상증자시 기산일로부터 한 달·일주일·전일의 가중산술평균주가 중 낮은 값을 발행가액으로 결정해야 한다. 이는 온전히 시장의 주가 추이에 따른 것으로 인위적인 개입의 여지가 크지 않다.

      만약 입찰을 통해 구주 매각 가격은 확정됐는데, 이후 주가가 급등해 신주의 발행가액이 더 커지면 채권단은 부담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 있었다. 경영권을 프리미엄도 없이 매각한 모양새가 되는 까닭이다.

      반면 신주를 할인발행해 인위적으로 발행가를 낮출 경우, 채권단을 제외한 다른 구주주들은 주식 가치가 더 크게 희석된다. 주주간 형평성에 문제가 생기며 하이닉스 이사회가 배임 이슈에 빠질 수 있었다. 당시 하이닉스는 국민연금이 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매각 구조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채권단은 하이닉스에 '신주 10% 할인발행'을 요구했지만, 하이닉스 이사회는 '할인발행은 없다'고 선언하며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논란 끝에 정해진 매각 구조는 잠재인수자가 시장가격을 고려해 인수희망가를 써내되, 신주와 구주 가격은 이에 연동해 자동조정하는 구조였다. 우선 신주는 인수희망가와 가중산술평균주가 중 높은 가격으로 발행하고, 구주는 신주보다 무조건 5% 이상 높은 가격에 매수하도록 한 것이다.

      인수자가 부담을 더 지는 대신, 거래 성사를 위해 인센티브도 부여했다. 인수자가 제시한 신주 인수희망가보다 신주 발행가가 20% 이상 높아지면 인수자 측에서 인수 포기를 선언할 수 있도록 했다. 인수대금 총액을 유지하는 선에서 인수 주식 수를 줄일 수 있는 옵션도 제공됐다.

      단독입찰에 참여한 SK텔레콤은 이 같은 구조를 따랐다. 신주 가격으로 당시 가중산술평균주가보다 5% 높은 2만3000원을 제시했고, 구주 인수 가격으로는 이보다 6.5% 높은 2만4500원을 써냈다. SK텔레콤은 이 같은 구조로 하이닉스 지분 21%를 인수 완료했다.

      ◆ '구주' 쥔 아시아나...신·구주 매각가 차이 논란 '예고'

      아시아나항공 매각에선 '실패한 경영자'인 금호산업이 구주를 쥐고 있다. 이 때문에 입찰 과정에서 구주에 더 비싼 가격을 써내라고 강제하는 건 산업은행이 내세우고 있는 매각 명분과 어긋난다. 하이닉스 매각과는 반대의 상황이다.

      신주의 발행가액 역시 하이닉스 매각때와 마찬가지로 유동적이지만, 액수는 결국 5000억원 이상이 유력시된다는 점도 다르다. 아시아나항공 주가가 1만원 이상으로 치솟아 원매자의 인수 부담이 지나치게 커질 경우, 산업은행이 보유한 CB를 넘겨 고정된 전환가액(8345원)으로 전환권을 행사, 18%의 신주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해주는 방안 정도는 고려할 수 있다는 평가다.

      구주를 분할매각할 가능성이 적다는 점도 변수다. 하이닉스 매각의 경우 인수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채권단이 구주를 절반만 팔기로 합의했다. 이번 아시아나항공 매각의 맥락상 금호그룹이 지분을 남겨두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결국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원매자가 기업가치를 얼마로 평가하고 있느냐로 귀결된다. 원매자가 생각하는 최대 인수 금액에서 상환을 위한 신주 발행 금액을 제외한 금액이 금호그룹측 구주 인수에 제시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이 되는 까닭이다. 금호그룹은 구주 고가 매각을, 인수자와 산업은행은 신주 발행을 상대적으로 늘리는 방안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마찰은 불가피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결국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입찰 및 계약 시점의 주가가 핵심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며 "조만간 발표될 매각 구조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