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매수청구권 없는 현대중공업 분할, 형평성 '논란'
입력 2019.05.31 07:00|수정 2019.06.03 09:58
    상법상 단순 물적분할은 청구권 부여하지 않아
    '주주 가치에 실질적 변화없다'는 게 이유
    현대重 물적분할은 주주가치에 '매우 큰 영향'
    입법취지와 안건 어긋나...미국은 분할에도 부여
    • "금번 물적분할 및 대우조선 자회사 편입 결정은 실질적인 M&A 사항이며 증자 등으로 인해 주당순자산가치가 희석되는 주요 경영 사안입니다. 하지만 관련 주주총회 부재로 현대중공업 투자자들은 주주권리(주식매수청구권)를 행사할 수 없어 별도의 주주 친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이 현대중공업에 발신한 주주 서한 중)

      31일 열리는 현대중공업 임시 주주총회는 사실상 ▲회사 분할 및 지주회사 전환 ▲대우조선해양 경영권 인수 ▲소수 주주들이 8000억원을 부담해야 하는 총 1조2000억원 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포함하는 대형 이벤트다. 그럼에도 불구, 이에 반대하는 주주들에게는 주식매수청구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법상 이번 주주총회는 형식상 '단순한 물적분할' 여부만 결정한다. 상법 제530조의2와 제530조의12는 단순·물적분할의 경우 반대 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주식매수청구권은 '주주의 이해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또는 회사의 근본적인 변경을 초래하는 경우'에 인정된다. 현행 국내 상법은 합병·분할합병·중요한 자산양수도의 경우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고 있다.

      다만 인적·물적을 막론하고 회사 분할만 진행할 경우 주식매수청구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현행 법은 분할의 경우 종전의 회사 재산과 영업이 물리적·기능적으로 나누어질 뿐 주주의 실질적 권리에 큰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반론이 제기되는 지점이 바로 이 곳이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이 언급했듯이, 현대중공업이 이번 주주총회에서 결정하려 하는 사안은 회사의 지배구조·사업구조·재무·주주가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주식매수청구권의 입법 의도와 표면상의 안건이 어긋나고 있는 것이다.

      한 중견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워낙 큰 사안이다보니 당연히 주식매수청구권이 주어지는 줄 알았는데 살펴보니 없었다"며 "과다한 주식매수청구로 인한 '딜 브레이크' 상황을 애초에 방지했다는 점에서 거래 구조를 교묘하게 잘 짰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국내법은 기업 분할에 주식매수청구권을 주는 것에 인색하다. 현행법상 기업 분할시 주식매수청구권을 주는 건 단 하나의 경우 뿐이다. 인적분할 과정에서 신설되는 회사가 비상장회사일 경우 주주들에게 환금성을 보장해주기 위해 주식매수청구권을 허용한다. 이마저도 지난 2013년에야 상법이 아닌, 자본시장법의 상장회사 관련 규정 개정을 통해 도입됐다.

      주식매수청구권과 관련, 단순분할과 분할합병을 차별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는 견해는 1990년대부터 법조계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됐던 이슈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기업의 경영 활동에 지나친 제약'이라는 비판과 '실질적 주주 가치엔 변화가 없다'는 논리에 밀려 주류로 인정받지 못했다.

      때문에 이번 현대중공업 주주총회를 계기로 다시 논란이 일 수도 있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실질적인 주주가치 변화를 담고 있지만 명목상 단순한 분할일 경우, 이를 다른 분할과 동일한 관점에서 봐도 되겠느냐는 것이다.

      주식매수청구권은 주로 미국법에서 언급되는 개념이다. EU(유럽연합)에서는 독일 등 극히 일부 국가만 허용하고 있다. 국내 상법상 주식매수청구권 역시 주로 미국법을 참고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바탕이 된 미국법의 경우엔 좀 더 광범위하게 주식매수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 모범회사법은 '회사가 주주총회결의를 거쳐 재산을 분배하는 경우' 반대하는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며, 뉴욕주 회사법도 '자산의 전부 또는 실질적인 전부를 처분하는 경우'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주 회사법과 텍사스주 회사법에선 인적분할의 경우 반대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도록 명문화해두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법적 하자가 없는데다 생존을 위해 지주 전환이 필수불가결한만큼 주주들에게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설득하겠다는 입장이다.

      현대중공업은 한국투자신탁운용의 주주 서한에 대한 답신에서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전제조건으로서의 물적분할은 필수 불가결한 절차"라고 밝혔다.

      주주가치 부분에 대해선 "기업결합을 통한 회사의 경쟁력 극대화 및 향후 실적개선으로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며 "흑자전환 후 그룹 차원의 배당정책(배당성향 30% 이상)을 지켜나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 인수 관련 주주총회 절차·주식매수선택권 미부여 등 절차적 이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