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떠나는 스타트업...인재 찾아 '스누밸리'로
입력 2019.06.03 07:00|수정 2019.06.05 09:16
    판교 높은 임대료에 스타트업 엑시트
    산학협력 가능하고 임대료 싼 서울대 인근으로 모여
    VC들이 나서서 창업공간 마련해주기도
    서울시-관악구-서울대 간의 협력된 스타트업 공간 조성은 숙제
    • 스타트업들이 하나 둘씩 판교를 떠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교통, 주거 뿐 아니라 산학협력 등의 제약이 주 원인이다. 이를 대체할 공간으로 대학가 주변이 뜨는 가운데 낙성대에서 서울대입구역에 이르는 일명 ‘스누(SNU)밸리’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판교에 둥지를 튼 스타트업의 꿈은 판교 탈출이 됐다. 강남, 광화문, 여의도 등 주요 투자자가 몰려 있는 곳까지 거리가 멀고, 임대료도 비싸기 때문이다. 판교의 일부 오피스 평당 가격은 강남을 넘어서기도 했다. 스타트업들 사이에서 판교는 성공한 IT기업들(네이버,카카오)의 성지이지 스타트업의 요람은 아니란 평가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대지를 받아 건물을 지어서 들어가는 업체가 아니고서야 판교 일대의 임대료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라며 “무엇보다 주거비용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젊은 인재를 유치하기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판교에 대표적인 스타트업밸리인 판교테크노밸리는 미국의 실리콘벨리와 달리 정부 주도로 설립됐다. 수도권 신도시 사업의 일환이다. 경쟁력 있는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좋은 입지의 부지를 원가 수준으로 제공했다. 강남 테헤란밸리의 절반 가격으로 설정된 부지 가격에 IT기업 등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계점이 명확해 지고 있다.

      자생적으로 성장한 실리콘밸리와 달리 인근에 경쟁력을 갖춘 대학이 없어 기업들 입장에선 산학 연계 프로그램의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또한 판교의 높은 집값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거주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다. 자금이 부족한 스타트업이 대지를 분양받아 들어갈 수 없다 보니 이들 대부분은 정부 지원을 받아 임대 형태로 판교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런 혜택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자연스레 강남 수준의 임대료를 지불할 바에야 서울로 오겠다는 스타트업이 늘 수 밖에 없다.

      대안으로 스타트업들은 상대적으로 주거비용이 작고, 산학연계 등이 가능한 대학가 주변으로 몰리고 있다. 대표적인 지역이 ‘스누밸리’다. 스누밸리에 입주한 스타트업 업체들 숫자만 어림잡아 70여곳이 넘는다. 분야도 바이오부터 시작해서 블록체인 업체까지 다양하다. 상당수가 서울대 출신 젊은 CEO들이 창업한 회사다. 네이버 계열의 벤처캐피탈인 스프링캠프는 스타트업체들과 협업을 위한 창업공간을 아예 제공해 주고 있다

    • 최인규 스프링캠프 대표는 “과거 신림동 고시촌처럼 자생적으로 서울대 근처에 스타트업이 들어서고 있다”라며 “서울 내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거비, 서울대학교와의 인접성 등 국내에서 이만한 스타트업 밸리를 찾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밀레니얼 세대들의 달라진 인식도 한 몫한다. 이전 같았으면 고위직 공무원, 교수를 꿈꿨을 젊은 세대들이 스타트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들이 생각하는 스타트업의 정의도 분명하다. 과거 스타트업이 아이디어만을 가지고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중계하는 방식이 대세였다면 이제는 기술창업이 아니고서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이를 위해선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투자자와의 네트워크는 필수적이다. 소위 말하는 ‘엘리트 창업’의 시대다.

      한 서울대 출신 창업가는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에서 뛰어난 학생들이 스타트업 전선으로 뛰어들고 있다”라며 “기술력에서 구글, 페이스북과 겨뤄보자는 생각으로 창업하는 이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 서울대와 관악구에서도 이런 움직임에 발맞추려 하고 있다. 서울대 관계자는 “AI위원회를 만들고 AI벨리 구축에 나서고 있다”라며 “아직까지 구체적인 계획이 나온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관악구청도 창업센터를 만들고 스타트업체 모시기에 나섰다.

      다만 아직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 자생적으로 스타트업이 들어서면서 ‘스누밸리’ 인근에 정비사업이 제대로 돼지 않았다. 그나마 서울대 입구역 주변으로 ‘샤로수길’이라 불리는 트랜디한 공간이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주변으로 모텔 등 상업시설이 즐비하다. 관악구나 서울시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단 주장이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이미 자생적으로 벨리가 들어서고 있지만, 서울시, 관악구, 서울대가 협력하는 지원이 필요하다”라며 “정부에서 3기 신도시에 스타트업 밸리를 조성한다는데, 그 비용과 노력을 서울대 인근에 들이는 게 스타트업 생태계에는 훨씬 긍정적인일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