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철수’ 여부 놓였는데…'국익' 호소하는 SK이노베이션
입력 2019.06.11 07:00|수정 2019.06.13 08:30
    맞소송으로 양측 대립 격화…본질은 영업기밀 침해 여부
    SK "해외 제소는 국익훼손" 주장하지만…일상화된 美 ITC
    '국익·로펌 국적·처우격차' 전선 넓혀가지만, 모두 ITC와 무관
    여론전이 자칫하면 재판에서는 '독'이 될수도 평가
    •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전쟁’이 여론전으로 격화되고 있다. 소송전은 LG화학이 먼저 시작했고, 본격적인 조단위 투자를 결정한 SK이노베이션으로선 엄청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양측이 소송을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LG화학이 ‘향후 법정 판단에 맡길 것’이란 입장을 펴는 반면, SK이노베이션은 소송 과정에서 해외로 핵심 기술이 유출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을 펴며 '국익훼손'으로 전선을 넓혀고 있다.

      다만 법조계에선 '영업비밀 침해'라는 본질에서 벗어나 '국익'으로 확대된 논란이 오히려 SK이노베이션에 '독'이 될 것을 우려한다. 이러다보니 SK이노베이션이 정부나 유관기관이 개입해 교통정리 해주기를 바라는 것 아니냐는 관전평도 나온다.

      ◇맞소송전으로 비화…국내 기업에도 일상화 된 ITC 제소

      재계에 따르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29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증거개시(Discovery) 절차 결정에 맞춰 자료 제출을 준비 중이다. 해당 규정에 따라 양사가 자료 제출을 마치면 ITC는 예비판정과 최종판정을 내리게 된다. 이르면 내년도 하반기에 결과가 드러날 예정이다.

      이번 소송은 지난 4월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이 자사의 특정 리튬이온 배터리ㆍ배터리셀ㆍ배터리모듈ㆍ배터리팩ㆍ배터리부품 및 이를 만들기 위한 제조공정에서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LG화학은 지난 2년 여간 SK이노베이션이 자사에서 76명의 핵심인력을 빼가는 과정에서 핵심 기술 유출을 유도했다고 주장한다. SK이노베이션은 이에 반발해 역으로 LG화학에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 영업비밀 침해가 전혀 없었다는 내용의 채무부존재 확인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했다.

      양측 입장은 첨예하게 대립된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제기한 소송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이 영업침해라는 내용이 전혀 특정되어 있지 않다 ▲2011년 분리막 소송 당시와 마찬가지로 LG화학이 소송으로 시간을 끌면서 경쟁사에 타격을 주기 위한 전략이다 ▲LG화학은 소송에서 지더라도 잃을 것이 없다 ▲경력공채로 뽑은 직원들이고 영업비밀을 자사에서 사용하지 않겠다는 서약서까지 작성했으며 기술침해 내역은 전혀 없다라고 반박한다. 반면 LG화학은 ▲ITC가 영업침해 여부에 본안 심리의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조사개시' 결정을 내렸다 ▲구체적인 침해내용을 지금 모두 적시화하는 것은 전략을 드러내는 일이고, 향후 법원 판정 과정에서 전부 공개한다 ▲이직한 직원들을 통해 어떤 비밀을 침해했는지 세부내역과 증거자료를 갖추고 있고 모두 법원을 통해 공개될 것이란 입장이다.

      소송 여파는 SK이노베이션에 더 크게 미칠 것으로 보인다. LG화학 주장이 입증되면 SK이노베이션이 생산한 배터리의 미국 반입 및 판매가 원천적으로 차단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완성차업체 폴크스바겐의 대규모 미국 지역 물량을 수주한 이후 조지아 공장 등에 1조원 가량 투자를 앞두고 있는데 자칫 첫 삽을 뜨기도 전에 백지화 될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LG화학은 미국 소송의 결과가 나온 이후, 폴란드 등 유럽에도 순차적으로 SK이노베이션을 제소할 계획이다.

      거꾸로 SK이노베이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LG화학은 거센 비난 여론과 함께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대대적인 역소송의 여파를 겪어야 한다. SK이노는 추가적으로 더 강도가 큰 맞소송을 준비 중으로 알려진다.

      다만 SK이노베이션의 '대응 전략'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제기되고 있다. '여론전'을 신경쓰느라 독이 될 자충수를 두고 있다는 평가다. "국내 이슈를 외국(ITC와 미국 지방법원)에서 제기함에 따른 국익 훼손이 우려된다"고 발표한 점이 대표적이다.

      국내 기업이 ITC에 제소되거나 ITC를 통해 상대방을 제소하는 사례는 일상적일 뿐더러 최근 꾸준히 늘고 있다. SK그룹에서는 SK하이닉스가 미국 반도체사 넷리스트에 제소돼 곤욕을 겪고 있다. 상대적으로 국내기업끼리의 분쟁이 ITC에 제소된 점은 이례적이기는 하지만 올 초 메디톡스가 '보톡스 균주'를 둔 분쟁 과정에서 대웅제약을 ITC에 제소한 사례도 있다.

      유사한 사례도 있다. 포스코와 일본제철(당시 신일본제철)간 영업비밀 및 인력 유출을 둔 분쟁이 대표적이다. 이때도 미국 ITC제소와 일본 법원 제소가 동시에 진행됐다. 약 3년여간 분쟁 끝에 포스코가 지난 2015년 3000억원을 지불하며 합의됐다.

      국내에서 발생한 인력 유출 문제를 미국 ITC가 다루는 점을 두고 '관할 문제'도 거론되지만 실제 관할권은 ITC 소속이다. 산업자원부 무역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연방항소법원(CAFC)은 이미 지난 2011년 판례를 통해 "영업비밀 부정취득이 해외에서 발생하더라도 미국에 그 물품의 수입이 존재하기 때문에 ITC가 관할권을 갖는다"고 명시한 바 있다. 이어 "단순히 해외에서의 영업비밀 취득행위에 대하여 관할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영업비밀을 침해하여 생산한 물품을 미국으로 수입하는 것에 대하여 관할권을 행사한다"고 설명했다. 해당 보고서는 2011년 해당 판결 이후, ITC에 영업비밀침해사건에 대한 제소가 급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SK이노, 상대편 로펌 비방 '자충수'로 꼽혀'…여론전 목표는 정부개입 유도 평가 나와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 법률자문사의 공정성에 문제제기를 한 점은 더 큰 실수로 꼽힌다. 법조계에서는 결정적인 실책으로 언급하고 있다.

      양사간 공방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을 대리하고 있는 덴톤스(Dentons)라고 하는 로펌은 중국의 다쳉(Dacheng)이라는 로펌과 합병을 하여 변호사수 기준으로 세계 1위이 로펌이 된 만큼 소송과정에서 제출된 자료들이 중국의 손에 넘어 가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음"이라는 내용을 마련하고 이렇게 언론에 설명했다. 공식 보도자료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대응 전략의 한 방편으로 마련됐다. 주요 언론사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내용이 그대로 설명됐다.

      문제는 이런 행위가 미국 사법체계 공정성을 전면 부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기업법무 담당 변호사는 “(이 같은 여론전은) 상대편 로펌과 변호사는 물론, 미국의 소송 절차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로도 비칠 수 있는 사안"이라며 "SK이노베이션이 로펌을 공격한 순간 LG화학 법무팀에선 SK가 자충수를 뒀다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형 로펌 지적재산권(IP) 담당 변호사는 “SK 측이 우려한대로 로펌이나 미국 변호사가 소송 과정에서 취득한 기술을 타사에 유출할 경우, 이는 변호사 자격 박탈 뿐 아니라 미국 법원에서 해당 로펌을 신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할 정도로 강력한 제제가 내려지는 사안"이라며 "글로벌 최대 규모로 손꼽히는 덴톤스가 고객 한 곳을 위해 그런 위험을 질 이유는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SK이노베이션이 국익 프레임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독이 될 방안을 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사 처우 및 복지 차이 등으로 직원들이 자유 의사에 따라 이직을 결정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도 대응전략으로서 유효한지 거론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런 설명이 직원들이 '영업비밀 침해'를 강제당하지 않았으며 이런 점들과는 무관하게 이직했다는 점을 설명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해당 사안은 ITC 판단에서는 전혀 별개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즉 ITC는 ‘SK이노베이션이 직원들에게 기밀제출을 요구했고 이 기밀이 적용됐는지 아닌지"만 따져본다는 것.

      SK이노베이션 임원이 "SK에 안왔으면 해외로 갔을 사람들"이라 설명한 점도 동일선상이다. SK 측으로서는 국내 배터리 관련 인력들이 이직할 수 있는 회사가 한정되어 있으며 SK이노베이션으로 온 인력들의 '자연스러운 이직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밝혔다. 반면 소송을 건 LG화학은 "자사의 인력ㆍ기술력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문제고, 국내 경쟁사로 빠져나가는 것은 문제가 안된다는 주장인가"라고 반박했다. 이후 양측 갈등은 여론전과 감정싸움으로 비화 중이다. 이런 논란 모두 ITC 입장으로서는 '논외 사안'에 불과하다.

      업계 관계자는 “SK측이 지속적으로 ‘국가 경쟁력 침해’ ‘해외 기술 유출’ ‘국익’ 등에 초점을 맞춘 점이 오히려 소송을 앞두고 산업자원부 등 국내 정부 유관기관의 개입 및 중재를 호소하는 목소리로 비춰질 수 있다”며 “여론전을 과도하게 펼 경우 재판에 자신 없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6월 05일 11:15 게재ㆍ6월10일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