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내부고발자에 떠는 기업들...”PPT도 손으로 그려라”
양선우 기자 | thesun@chosun.com | 2019.06.13 07:00
Edited by 이도현 차장 | dohyun.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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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사건 내부고발자 등장으로 새 국면
삼성그룹, 압수수색에서 나온 자료로 핵심인사 구속
LG그룹 등 사장 보고 녹취 및 메모금지
국내 자문사 기피 현상도

압수수색

#지난 4월 SK케미칼의 박철 부사장이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박 부사장이 가습기 살균제 관련 유해성 연구자료를 보관하고 있으면서 이를 은폐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구속까지 이어진 결정적인 계기는 법무팀 관계자와 박 부사장이 나눈 대화 녹취가 나오면서다.

#삼성전자 이모 재경팀 부사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를 지시한 혐의로 이달 구속되기도 했다. 이 부사장은 지난해 5월5일 ‘어린이날 대책회의’를 열고 검찰 수사를 방해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방위 압수수색 결과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 바닥에 숨겨놓았던 자료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

기업들이 압수수색·내부고발자에 떨고 있다. 지지부지하던 유해 가습기 살균제 수사에 속도가 붙은 것도 내부고발자였다. 박 부사장은 검찰 출신으로 계열사의 윤리경영을 담당했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법무팀 관계자와 박 부사장이 나눈 대화내용 모두를 녹취한 파일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압수수색에 대한 두려움도 커졌다. 비단 기업뿐 아니라 정부기관, 대형로펌, 외국계 IB에 이르기까지 검찰의 압수수색 대상이 됐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나온 휴대폰이 사건의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대비하기 위한 기업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LG그룹의 계열사에선 사장과의 대화 시 녹취를 비롯해 메모를 금지하고 있다. 사장에게 보고하는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비롯해 중요한 보고서는 손으로 작성하기도 한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하드디스크를 복사해 가기 때문에 자료를 남기지 않기 위함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직원들이 손으로 PPT 자료를 만드는 80년대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기관, 로펌과 IB들도 기업 못지 않게 압수수색과 내부고발자에 대한 단속에 나섰다. 공직사회에선 상관의 지시사항 녹취 및 문서화가 일반화하고 있다. 자연스레 민감한 사항에 대해선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는 경향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자문사들은 카카오톡 대화를 금지하고 있다. 해외에 서버를 둔 보안성 높은 메신저로 갈아타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 외국계 IB 관계자는 “카카오톡 사용 금지가 일반화하고 있다”라며 “외국계 IB들도 압수수색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보안에 대한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기업들이 국내 자문사를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기준에 따라 사안에 접근하는 해외 자문사가 문제의 소지도 적고, 보안부분에서도 우수하다는 생각에서다. 국내 자문사들도 돈이 된다고 무작정 자문업무에 뛰어드는 일을 꺼리고 있다.

한 국내 회계법인 관계자는 “벨류에이션 등 판단이 들어가는 중요한 자문을 기업들이 맥킨지 등 해외 컨설팅에 의뢰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다”라며 “기업 해외 이전뿐만 아니라 최고 의사결정에서도 해외 자문사의 역할이 점점 커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6월 10일 07:0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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