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지속에 퇴직연금 수익률 ‘바닥’…개인도 기업도 모두 운다
입력 2019.06.18 07:00|수정 2019.06.20 09:26
    퇴직연금 수익률 마이너스 시대
    DC형, 가입자가 수익률에 관심 가져야
    전문가들 "중수익·낮은 수수료 상품 추천"
    DB형, 낮은 수익률 벗어나려면 CEO 보신주의 벗어나야
    •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퇴직연금 수익률이 ‘바닥’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이 주로 가입된 ‘확정기여형(DC형)’의 경우 수수료를 빼면 사실상 마이너스 수익률이다. 대기업 직장인들이 가입된 ‘확정급여형(DB형)’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다만 DB형은 회사가 약속한 퇴직금을 보장해줘야 해 그 부담을 회사가 진다는 점이 차이일 뿐이다.

    • ◇DC형, 안정적인 중수익·낮은 수수료 상품 선택

      지난해 주요 은행의 DC형 퇴직연금 수익률이 채 1%도 안됐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IBK기업은행이 1.25%로 가장 높았고 나머지 은행들의 DC형 퇴직연금 수익률은 채 1%도 되지 않았다. DC형은 회사가 매년 일정 금액을 적립하면 가입자가 직접 운용하는 퇴직연금으로, 가입자의 90% 이상이 운용지시를 하지 않았다. 즉 가입자 대부분의 자산이 예금 등 저금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상품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뜻이다.

      적극적으로 운용지시를 한 가입자들의 수익률도 형편이 없었다. DC형 중에서 원리금 비보장 상품으로 운용한 개인들의 수익률은 지난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6대 은행의 DC형 원리금 비보장형 상품의 수익률은 -3.76~6.36%로 지난해 하반기 증시가 급락하고 시장금리 하락폭이 커지면서 예금만도 못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수수료 및 물가 인상률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DC형 가입자의 수익률은 마이너스라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문제는 정치권에서도 화두로 떠올랐다. 여당을 중심으로 퇴직연금 제도 개선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대표적인 제도 개선안이 ‘디폴트 옵션’이다. 디폴트 옵션은 가입자(근로자)가 퇴직연금 운용상품방법 등을 직접 선택하지 않았을 때 노사 합의에 따라 미리 정해진 방법으로 자동투자가 이뤄지는 제도다.

      자본시장특위 위원장인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퇴직연금 제도 개선은 국민들의 안정적인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라고 말했다.

      자산운용사들은 발빠르게 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가장 치열한 접전지가 타깃데이트펀드(TDF) 시장이다. TDF는 생애주기에 맞춰 자산을 자동으로 분배해 투자하는 상품이다. 20~30대에는 주식이나 신흥국 자산 등 수익극대화에 50~60대는 채권과 선진국 자산 등 안정적인 수익에 집중하는 식이다.

      운용사들은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디폴트옵션이 도입되면 타깃데이트펀드(TDF) 시장이 급격하게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 디폴트옵션은 금융회사가 가입자 성향에 맞게 운용자금을 굴려줄 수 있도록 한 제도로, 디폴트옵션이 도입 된 미국에선 TDF가 디포틀옵션 적격상품으로 지정되면서 이 시장이 급격하게 커졌다. 국내에선 미래에셋자산운용이 공격적인 영업을 통해 삼성자산운용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저금리에 대응해 해외자산을 편입하는 상품들도 속속 출시하고 있다. 신영자산운용이 출시한 베테랑 펀드 등은 해외자산을 편입해 노후자금을 관리해 준다. 국내 자산으로만으론 낮은 수익률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자산운용전문가들은 아무리 좋은 상품이 나오더라도 가입자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금융회사들이 앞다퉈 홍보하는 TDF 상품도 자산배분을 해줄 뿐이지 수익률을 책임져주지는 않는다. 은퇴자금이란 점에서 3~5% 수준의 안정적인 중수익에 낮은 수수료 상품을 선택하는 것을 권한다.

      한 은행 PB는 “만약 20년간 연 수익률을 2%에서 4%로 올릴수 있다면 누적금액을 27%나 올릴수 있다”라며 “연금 운용기관도 직원의 전문성 제고와 가입자에 대한 적극적인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DB형, 회사차원의 목표 수익률 설정해야

      DB형의 낮은 수익률은 회사 입장에서 고민이다. 기존 퇴직금 제도와 유사한 DB형은 회사가 운용해서 퇴직 시 약속한 금액을 가입자에 돌려줘야 한다. 줘야 할 퇴직금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수익률이 낮으면 회사가 적립해야 하는 퇴직금이 늘어나게 된다. 그만큼 저금리에 따른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기업이 운용하는 DB형 퇴직여금의 수익률도 DC형처럼 저조하긴 매 한가지다. 지난해 DB형을 가입한 회사가 은행에 맡겨 놓은 퇴직연금 수익률은 신한은행이 1.43%로 가장 높았고, 나머지 은행들은 대부분 1% 초반 수준에 머물렀다. 이유는 93%의 DB형 퇴직연금이 예금 등 원리금상품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저금리로 예금 금리가 낮아지면서 물가 수준을 감안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수익률이 나는 것이다. 낮은 수익률은 곧 회사의 재무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럼에도 DB형을 운용하는 기업들은 적극적인 운용에 소극적이다. 행여 운용에 나섰다가 손실이 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CEO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임기가 정해진 CEO들 입장에선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퇴직연금을 운용할 이유가 없다. 대안으로 CEO 임기와 무관하게 회사차원의 퇴직연금 수익률 목표를 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한 퇴직연금 전문가는 “DC형은 개인의 무관심, DB형은 CEO의 보신주의가 저조한 수익률의 가장 큰 이유다”라며 “노후자산이란 점에서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상품보단 3~4%의 수익률이더라도 수수료가 낮은 상품을 선택하는 게 소비자 입장에선 가장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