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1년 앞둔 정부 정책…'노선'과 '현실' 사이 갈팡질팡
입력 2019.06.20 07:00|수정 2019.06.21 09:31
    집권 3년차에 2%대 경제성장률
    신성장 사업 등 지원 약속했지만
    수사·규제·공개 비난…'엇박자'

    경제 정책을 정치적 논리로 접근
    표 의식하면서 정책 일관성 잃어
    • 집권 3년차를 맞이한 문재인 정부의 최대 과제는 2%대로 추락한 경제성장률 개선이 꼽힌다. 타개책의 일환으로 정부는 바이오, 핀테크, 인공지능(AI)을 비롯한 벤처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대통령이 직접 '시스템 반도체·바이오헬스·미래자동차'를 3대 중점 육성 산업으로 손꼽으며 부흥을 약속하기도 했다. 4차 산업혁명 시장 선점을 위한 정책지원·자금투자도 제시했고,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 육성방안도 빠지지 않았다.

      '선언'이 '현실'로 이어지려면 실행가능한 정책과 민간투자를 유도 할 자본유입 방안이 필수다.

      하지만 '혁신'과 '이념'이 충돌하면서 이제 각 분야의 정책들이 모두 갈지자(之)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정부 부처와 금융당국 사이에서는 조율되지 않은 목소리가 난무하고 이 과정에서 예측 못한 '부작용'까지 발생하기도 한다. 이유는? 정책이 추진목표보다 '1년도 남지 않은 총선'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총론에서는 '지원·육성', 각론에서는 '수사·규제·공개비난' 

      바이오헬스 산업은 집권 3년차가 시작되는 5월에 맞춰 새로운 '기간산업'으로 대대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사업자들을 불러모아 '바이오헬스 국가비전' 선포식을 열었고 대통령은 짧은 기간에 성공 신화를 이뤄낸 셀트리온과 서정진 회장을 추켜세웠다. '수년 내 블록버스터급 신약 개발과 10년 내 세계시장 점유율 6%'라는 비현실적인 약속이 나오기까지 했다. 여기에 바이오헬스 정부 연구개발비를 매년 4조원 이상으로 늘리고, 국가 바이오데이터를 구축하겠다는 정책도 발표됐다.

      하지만 산업 일선 차원에서 보면 지금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에는 '잿빛'이 드리워져 있다. '삼성'이란 글로벌 브랜드를 달고 출범한 삼성바이오는 회계분식 의혹이 끝나는가 싶다가 본격적인 검찰 수사를 맞이했다. 그룹 컨트롤타워의 구속과 이재용 부회장을 겨냥한 수사로 바이오시밀러 생산기지 혹은 신약개발처로서 삼성바이오의 성장동력은 크게 줄어들었다. 셀트리온은 해묵은 셀트리온헬스케어 일감몰아주기 이슈가 언제든 다시 주목받을 여지가 있고, 여기에 해외 기관투자가의 저가 지분 처분으로 주가 추락까지 겪었다. 신약의 '미래'로 평가받던 인보사는 품목허가 취소를 당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허가를 내줬던 식약처는 '공범' 취급을 받으며 검찰 압수수색을 당하는데 이 와중에 특허청은 바이오산업 육성책이라며 '신약' 특허 심사시간을 단축시키겠다고 나섰다.

      정부는 금융 혁신성장을 위해 인터넷전문은행 추가출점을 진행했다. 하지만 부처간 갈등, 그리고 정부·여당간 조율 부재가 첨예하다는 현실만 드러냈다. 대통령은 "인터넷전문은행 규제 혁신이야말로 고여 있는 저수지의 물꼬를 트는 일"이라며 규제완화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정작 토스뱅크·키움뱅크 모두 예비인가를 불허받았다. 금융위원장이 외부평가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심사 결과를 듣고 "당혹스러웠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자 금융권에서는 정부 출범 때부터 이어진 금융위원회과 금융감독원의 갈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금융위와 은산분리 완화가 금융발전을 위한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금감원의 입장 차이가 전혀 조율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여당이 나서 인터넷전문은행 대주주 자격요건 완화방안을 거론하다가 지지기반층인 시민단체와 노동계의 거센 비난을 맞이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증권사 덩치를 키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게 하겠다며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을 내세웠지만 금융당국은 '단기금융업'(발행어음) 인가를 쉽사리 허락하지 않고 정부는 칼자루를 쥐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그리고 최근 KB증권 단 세 곳만 겨우 인가를 받았다. 초미의 관심사인 1위 미래에셋대우가 발행어음 인가를 받을 것인지를 확인하려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어떤 결론을 내리느냐부터 지켜봐야 한다.

      벤처기업과 4차산업에 대한 전격적인 지원을 약속했지만 정작 갈등이 표면화하면 금융당국 수장이 민간사업자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일까지 불거졌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타다' 서비스를 둘러싸고 이재용 쏘카 대표를 비판한 일은 벤처업계에 정부가 큰 실망을 안겨준 사례로 꼽힌다. 이 대표는 혁신기술사업 도입이 느려진 원인을 따져물었다는 이유로 주무부처 장관도 아닌 고위 공직자의 날 선 비판을 한몸에 받았다. 금융당국 수장은 본업에서 약속했던 혁신의 결과가 아닌, 국회의원 출마 가능성을 주목받았다.

      곳곳에서 '말 다르고, 행동 다른' 양상이 이어지다보니 국내 시장을 바라보는 글로벌 투자회사와 민간자본의 시선은 차가워졌다.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하고 그 자리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는 동시에, 대법원 판결을 앞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수사 강도가 세지는 것을 보면서 정부가 신성장동력 육성과 재벌개혁 중 어디에 방점을 찍고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며 "총선이 있을 앞으로 1년 동안 정책 불확실성이 더 커질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노선'과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엉뚱한 부작용까지 야기

      각 분야의 갈지(之) 자 행보의 근본원인은 '경제 정책'을 두고 '정치적 논리'로 접근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을 동력이자 목표로 탄생했고, 노조·시민단체 등 확고부동한 지지기반 세력의 지원을 받아왔다. 집권여당의 이념적 목표와 노선이라는 정체성을 포기하기 어렵다. 그러나 여당 중심으로 출발한 '소득주도성장'의 성적표는 최악의 점수를 받았고 불안감은 부정적인 지표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나마 내세웠던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책을 위해 내건 남북관계 개선책조차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고, 되레 외교정책 부재 비판을 받았다. 여기에 유례 없는 미·중 무역분쟁의 여파까지 맞이했다. 민심이 흔들릴만한 상황에서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을 맞이했다. 여기서 지지율이 하락해 정국 주도권을 잃게 되면 조기 레임덕이 시작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

      결국 취할 수 있는 방편은 '경제살리기'로 귀결된다. 하지만 정부가 신성장동력으로 내세운 시스템반도체·바이오헬스·미래자동차 등은 모두 자본 축약적 사업들이고 대규모 자금을 투입할 주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포용하고 유도해야 할 주체들은 모두 대기업이다. '공정경제'와 '중소기업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로서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는 셈이다. 심지어 이들 산업은 노동집약적 산업도 아니다. 대규모 고용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양질의 일자리는 제한적이다.

      이때부터 총선 승리와 정권 재창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노선'과 '현실'사이에서 갈등이 벌어진다. 노선을 따르자니 먹거리 창출이 어렵고, 현실적인 방안을 추진하자니 노선과 이념을 배반하는 것으로 낙인, 지지기반 표를 잃을 것이 걱정된다.

      산업구조 개선과 발전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구조조정을 직접 유도해내야 한다. 하지만 지역민심을 감안하고 표를 의식하면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조선, 자동차 부품사들에 대대적 자금 지원을 정부가 약속한다.

      금융혁신과 4차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은행원 일자리 감소를 감내해야 하지만 감독당국이 거꾸로 행보를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 금융당국이 6월까지 은행 관련자료를 제출 받아, 7월 일자리 창출효과 측정을 거쳐, 8월 은행권 전반의 총괄적 일자리 창출 기여도를 발표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은행권은 모바일 시대에 맞춰 비대면 영업을 강화, 영업점과 직원 수를 수년째 줄이고 있는데 금융당국은 '고용을 늘리라'고 압박하는 식이다. 금융 당국이 민간 금융회사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측정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정부가 강조하는 핀테크 금융이 확대되면 금융권은 전문화된 정규 인력 위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고 이는 고용 효과가 크지 않다는 얘기이기도 하다”며 “금융당국도 이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정부의 일자리 창출이 최우선 과제이다보니 시장의 흐름에 역행하는 자충수를 던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표면적으로는 '4차산업 육성', '핀테크 기업 지원'을 입버릇처럼 내세운다. '제2의 벤처붐'을 일으키겠다고 하면서도 지지기반인 택시노동자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다. 금융위원장이 일개 민간 사업자를 공개비난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주무부처 장관인 국토교통부 장관은 총선에 대비해 지역구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재정건전화를 위한 세제혁신을 주장했지만 "서민들이 마시는 소주값을 올리느냐"는 비판을 두려워해 이도 저도 아닌 주세개편안을, 경쟁력 있는 기업의 가업상속을 도와주겠다고 나서면서도 '대기업 지원', '부의 세습' 이란 비난을 우려해 실효세율과 공제한도에 손대지 못한 무늬만 '개편'인 방안을 내놓는다.

      정부정책이 포퓰리즘으로 치닫는 사이 시장에서는 엉뚱한 부작용들만 생겨나고 있다. 코스닥과 바이오를 활성화시키겠다고 내세운 정책은 기술력이 검증되지 않은 초기 임상 회사에 '투기성 자금'이 몰리는 판을 야기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신사업 진출과 비핵심사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매번 정부 노선을 거스르는 일이 없는지를 먼저 따져보고 있다. 조선·해운·철강 등 구조조정이 필수인 전통 기간산업은 친정부 기업으로 분류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신사업을 이전받는 특혜를 누리거나, 아니면 조업을 중단해야하는 황당한 규제를 받는 상황에 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