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믿을 금감원 대형IB 기업신용공여 통계...결국 "벤처에 돈 대라" 종용
입력 2019.07.18 07:00|수정 2019.07.22 07:18
    대형IB 기업신용공여 통계 '대기업에 70% 제공' 비판 나와
    증권사들 "대부분 SPC 형식...대기업-중소기업 구분 어려워"
    정책 목적 달성 위한 정치적 압박에...증권사 건전성 우려
    • "한 순간에 대형 IB(종합금융투자사업자)들이 중소기업은 등한시하고 대기업 상대로 돈 놀이나 하는 '나쁜놈들'이 됐습니다. '증권사는 중소·벤처기업에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게 어느 순간 도그마가 된 느낌입니다." (한 대형증권사 관계자)

      대형 증권사들이 금융당국의 압박에 갑갑함을 호소하고 있다. 발행어음에 이어 기업신용공여 현황까지 공개하며 증권사에 중소·벤처기업 투자를 늘릴 것을 종용하고 있는 까닭이다.

      최근 감독당국이 공개한 대형IB의 기업신용공여 현황은 집계 방식의 한계로 인해 통계로써 활용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럼에도 불구, 공개된 자료는 '증권사들이 혁신기업에 대한 모험투자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의 주요 근거로 인용되고 있다.  정책적 목적 달성을 위한 정치적 압박은 결국 시장을 왜곡하고, 추후 대규모 투자자·주주 손실 등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감독원 자본시장감독국은 지난 9일 '종투사의 기업신용공여 현황'이라는 자료를 내놨다. 2013년 대형IB제도가 도입되고 증권사에 기업신용공여가 허용된 이후 6년만에 처음으로 발행된 자료였다.

      이 자료에는 자기자본 3조원 이상 대형IB의 총 기업신용공여 규모가 10조원이고, 이 중 7조원이 대기업에 제공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어 이 자료의 결론은 '종투사가 스타트업·벤처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 등 모험자본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할 수 있도록 다양한 유인방안을 협의해 나가겠다'였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결국 지난달 말 이슈가 됐던 '발행어음 벤처투자 제로'와 같은 맥락"이라며 "6년 전이긴 하지만 '신용공여'까지 허용해줬으니 증권사는 '혁신기업'에 더 투자하라는 말"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통계 자체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대형IB의 신용공여 10조원 중 정말로 70%가 대기업에 지원됐느냐는 것이다.

    • 금감원이 내놓은 통계를 분석하면 기업신용공여 10조원 중 절반에 가까운 4조7000억원이 특수목적회사(SPC)에 제공됐다. 금감원이 직접 밝혔듯 SPC에 대한 신용공여는 구조화금융 활성화에 따른 것이다.

      문제는 SPC의 성격이다. 금감원과 증권업계의 의견을 종합하면, 이 통계에서는 SPC가 중소기업으로 분류되면 중소기업 신용공여로, 그렇지 않으면 대기업 신용공여로 분류했다. 중소기업기본법상 SPC 역시 자산총계 5000억원 미만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중소기업으로 분류된다.

      SPC는 말 그대로 특수목적회사다. SPC에 대한 신용공여로 인해 최종적으로 어떤 기업이 수혜를 보는 지는 건별로 일일히 모두 따져봐야 한다. 이런 절차를 생략하고 SPC가 중소기업으로 지정됐느냐, 안됐느냐에 따라 구분했다는 이야기다.

      한 증권사 실무자는 "SPC는 대부분 복합적인 투자를 집행하기 때문에 대기업·중소기업으로 무 자르듯 구분하기 어렵다"며 "증권사들 대부분 추후 문제의 소지를 피하기 위해 중소기업법상 자산총액 규모를 따르거나, 신용평가사에서 중소기업으로 인증된 SPC만 중소기업으로 분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소기업에 신용공여가 된 액수가 얼마인지 이번 통계로는 알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번 통계에 따르면 기업신용공여 10조원 중 부동산금융과 관련된 자금이 3조8000억원으로 나타났다. SPC에 대한 신용공여 중 비부동산 관련 자금 규모는 3조2000억원이었다. 10조원 중 7조원이 부동산금융 및 구조화금융에 제공된 셈이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부동산금융·구조화금융에 대한 신용공여를 일반적인 상식 수준의 대기업 및 중소기업으로 구분짓는 건 무의미하다"며 "금감원이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공여가 미흡하다'가 아니라 '부동산·구조화금융에 주로 신용공여가 이뤄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주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선 애초에 신용공여로 '모험자본 공급 기여도'를 측정하려 한 시도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증권사는 기본적으로 조달금리가 높은데다, 중소기업 부도율이 치솟고 있는 상황에서 신용공여 금리가 은행 대비 높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중소기업 부도율은 2017년 5.1%에서 지난해 9.4%로 급증했다.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은행 이용이 가능한 중소기업은 금리 문제로 증권사를 선호하지 않고, 은행 이용이 어려운 중소기업은 우리도 리스크 감당이 쉽지 않다"며 "혁신기업에 대한 모험자본 공급은 신용공여가 아니라 고유자본이나 신기술조합 투자 등 기여로 따지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잇딴 압박이 증권사의 자산건전성을 훼손시켜 중장기적으로 더 큰 리스크를 만들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 대형증권사 고위 임원은 "벤처투자 하라고 신용공여를 허용해준 게 아니고 모험자본 투자하라고 발행어음 허용해준 게 아닌데 이제와서는 '모두 혁신기업 지원하라고 허용한 것'이라고 말을 바꾼다"며 "증권사 자본금도, 발행어음 자금도 모두 은행과 같은 국민의 자산인데 증권사에만 위험투자 부담을 씌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증권업계의 비판에 대해 금감원은 '단순한 통계'라는 입장이다. 정확한 기준을 가지고 분류하기 어려운 사실은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SPC와 부동산 관련 통계도 별도로 공개했다는 것이다.

      증권업계의 비난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중소기업은 법적으로 명확한 정의가 있고 SPC도 중소기업으로 분류하는걸 배제하지 않으니 수집한 통계를 분류해 공개한 것에 불과하다"며 "업계에서 제기하는 문제점도 알고 있기 때문에 SPC 등 항목별 신용공여 현황도 모두 공개했다"고 말했다.

      이어 "종투사 신용공여가 2013년부터 시행됐는데 평가나 향후 방향에 대해 현재 상황이 어떤지 리서치를 해둬야 하니 자료를 낸 것"이라며 "어떤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자료를 낸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