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 판 걷는 한국 주식시장
입력 2019.07.29 07:00|수정 2019.07.30 08:20
    코스피 2000선까지 털썩, 코스닥 연중 최저점 갱신
    펀더멘털보다 이벤트 의존 경향 커진 주식시장
    대외 악재 속 기업 실적도 암울
    국내 주식 비중 줄이는 기관투자가들
    • 한국 주식시장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미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의 무역 갈등 등 대외 악재가 산적했고 국내 기업들의 실적 전망도 밝지 못한 탓에 기관투자자들은 국내 주식투자에 보수적 기조로 돌아섰다. 주식시장을 지탱해 줄 큰 손들이 사라지면서 수급은 불안정 해졌고, 개별 종목들은 사소한 이벤트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출렁이고 있다.

      연초만 해도 2200선을 넘나들던 코스피는 반년 만에 2000선까지 주저앉았다. 이번 주 코스닥 지수 650선이 붕괴되며 연 저점을 갱신했다. 증시 흐름이 불안정하다보니 개별 종목들은 기업의 펀더멘털보다 이벤트에 의존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경영권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23일 전일 대비 2% 상승세를 보이던 주가가 장중 한때 10% 넘게 급락했다. 국내 한 증권사 창구에서 매도 물량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주가는 급락했고, 변동성완화(VI) 장치가 발동했다. 이후 주가는 10분이 채 되지 않아 원래 주가를 회복했는데 인수 주체는 대부분 개인투자자들이었다.

      주식거래의 95% 이상이 정보 접근이 제한적인 개인투자자인 탓에 ‘소문’과 ‘이벤트’에 주가가 출렁이는 모양새가 연일 연출되고 있다. 인수 후보가 거론될 때마다 또는 산업은행을 비롯한 매각 측의 발표가 있을 때마다 주가는 출렁였다. 매각 공고가 난 25일 이후 아시아나항공과 계열사 주가는 이틀 새 10% 넘게 빠졌다.

      같은 날 SK머티리얼즈 주가도 장중 10% 가까이 급등했다. 오전까지만 해도 전일대비 마이너스(-) 흐름을 보였던 주가는 국내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메신저 내용이 확산되면서 주가가 급등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SK머티리얼즈가 ▲반도체용 고순도 에칭가스(HF가스) 공급을 위해 준비 중 ▲연말에 양산 샘플을 공급할 계획 ▲내년부터 공급 시작 가능할 것 이란 세줄짜리 메신저에 시가총액이 1000억~1500억원 이상 출렁였다.

      정부의 반도체 소재 국산화 발표 이후, 관련 기업들의 주가도 큰 폭으로 올랐다. 아직까지 확실한 지원 및 육성 방안이 마련되진 않았으나, 반도체 소재·장비주들은 기대감에 큰 폭의 상승세를 보이였다. 일본의 규제 방침이 알려지기 직전과 대비해 후성(76%), 솔브레인(46%), 동진쎄미켐(67%) 등의 주가가 급등했고, 불화수소 관련 업체로 알려진 램테크놀러지는 거래량이 1000배 이상 급증했다.

      일명 ‘애국 테마주’로 불렸던 후성의 경우 주가 급등 이후 대표이사는 보유 지분의 절반을 매각했다. 모나미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회사는 주가 급등 이후 자사주를 매각을 공시했다. 후성의 대표이사와 모나미 자사주의 매도 주식 규모가 전체 주식 수에 비해 크지 않았고, 사업의 근본적인 변화도 없었지만 투자자들이 한순간에 돌아서며 주가가 급락세를 보였다.

    •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주식 투자는 크게 줄었다. 주식시장을 그나마 탄탄하게 받쳐줄 기관들이 사라지면서 수급은 불안정해 졌다. 결국 전반적인 주식시장의 흐름도 개인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동향에 따라 좌우되는 형국이 연출되고 있다.

      최근 한 달 사이 기관투자가들은 코스피 시장에서 약 6500억원, 코스닥 시장에 4200억원가량을 순매도했다. 한국과 일본의 무역갈등으로 인한 우려가 확산했고, 국내 주요 기업들의 실적도 불안한 점이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되지 못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국제 신용평가사와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앞다퉈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다.

      국내 한 기관투자가는 “국내 기관투자자들도 기업공개(IPO) 또는 블록딜과 같은 이벤트들을 수익률을 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로 여기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최근 증시 악화로 이 같은 이벤트가 사라지면서 주식부문 투자가 상당히 위축된 것도 사실이다”고 했다.

      실제로 시장 수익률을 초과하기 위해 적극적인 운용전략을 펴는 국내 ‘액티브 펀드’의 수익률도 주가지표의 변동과 동일한 투자성과를 목표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인덱스 펀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수익률을 내야만하는 국내 금융기관들 사이에선 주식시장에 대한 자기자본(PI) 투자를 크게 줄이고 대체제를 찾는 모습이 두드러지고 있다.

      국내 자산운용사 주식운용 담당자는 “수익률 1~2위를 타투는 액티브펀드들도 최근엔 인덱스펀드 이상의 수익을 내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대부분의 국내 금융기관들이 프랍트레이딩(proprietary trading)부의 국내 주식투자를 자제하고, 대신에 메자닌 투자 또는 비상장 기업에 대한 투자로 방향성을 바꾸는 추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