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의 '즉흥적 투자결정'에 뿔난 기관들
입력 2019.08.02 07:00|수정 2019.08.05 09:20
    조원태 회장의 통큰 항공기 구매에 불편한 시선
    허술한 의사결정 체계 및 불확실성에 기관들 실망
    '전략적 투자'로 보는 시각도…'피로감 크다'는 지적
    • 대한항공의 신규 항공기 구매 결정에 시장에서는 냉랭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일부 기관투자가 사이에선 ‘뒤통수 맞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올해 항공기 구매 계획을 밝히지 않았던 대한항공이 반년도 안 돼 수조원대 투자를  집행하겠다고 나선 게 이유다.

      신규 항공기 구매는 항공사 입장에서 불가피한 투자이지만, 기관투자가 사이에선 대한항공의 의사결정 체계 및 소통 결여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대되는 분위기다.

      최근 대한항공의 주가는 올해 최저 수준(2만5000원대)이다. 기관투자가의 매도세가 주가를 끌어내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매도세는 대한항공의 지배구조 개선 기대감이 약화된 점과 항공업 성장 잠재력이 감소한 영향이 있다. 하지만 증권업계에선 그간 대한항공의 여객 부문을 포함한 ‘본업’에 대해 높이 평가해온 기관투자가의 반응이 냉소적으로 변한 것은 대한항공의 ‘예측 불가능성’이 부각된 게 크다는 지적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대항항공은 지난 2월 중장기 비전 발표와 이후 기업설명회(NDR) 등에서 항공기 구매 계획과 관련해 “대형기 위주의 항공기 투자가 완료됐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난 6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파리에어쇼에서 7조원이 넘는 항공기 구매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기관투자가와 애널리스트 등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한항공 측에선 B787이 대형기가 아닌 중형기라는 점에서 해석의 차이가 있다고 해명했지만, ‘차세대 중대형 여객기 도입을 통한 중장거리 노선 경쟁력 강화’라는 투자 목적을 고려하면 기관투자가의 불만도 일리가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 이들의 불만은 대한항공 주가에 여실히 드러났다. 대한항공이 보잉과 항공기 구매 MOU를 체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 기관투자가들은 21만1111주를 순매도했다. 이날 거래량이 39만8777주였던 것을 감안하면 기관투자가의 매도 움직임이 컸다.

      한 기관투자가는 “대한항공의 IR 및 자재부에서도 항공기 구매와 관련해 사전에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면서 “항공기 구매는 항공사의 큰 투자 계획 중 하나로 비밀리에 진행할 사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장 소통은 물론이고 사내 의사결정 체계 역시 허술해 신뢰감을 떨어뜨린 사례”라고 지적했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이번 대한항공의 항공기 구매는 조원태 회장이 파리에어쇼에서 항공기 구매를 결정하고, 이후 이사회를 거쳐 구매를 확정했다. 그렇다 보니 조 회장의 ‘즉흥적 투자’에 기관투자가들은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의 지난해 부채비율은 743.72%로 전년(557.10%) 대비 186.62%포인트 급증했다. 증권업계에선 올해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이 81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7조4000억원을 들여 B787 30대를 신규 도입(20대 구매, 10대 리스)하겠다는 대한항공의 결정은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시장 참여자들에게 불편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항공기 구매는 설비투자(CAPEX) 증가로 이어져 잉여현금흐름 감소가 불가피해진다. 차입금 감소 여력의 축소는 투자자 입장에선 ‘악재’일 수밖에 없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의 매출이 수년간 늘고 있지만 이익은 줄어든다는 것은 부채비율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방증하는 부분”이라며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후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결정이 신뢰를 더 잃게 만들었다는 말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고사(枯死) 위기에 처한 보잉을 상대로 조원태 회장이 전략적인 판단을 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에어쇼에서 항공기 구매 결정이 다수 이뤄지는 것을 감안했을 때, 이번 항공기 구매가 조 회장과 대한항공 모두에 마이너스 요인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다만 수조원을 집행하는 투자를 불과 몇 달 전에 열린 중장기 비전 발표에서조차 설명하지 않은 점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신규 항공기 구매는 중장기적으로 이뤄지는 부분이라 재무적인 타격이 예상보다 크지 않다는 것은 기관투자가들도 인지하고 있다”며 “KCGI의 등장과 조양호 회장의 사망 등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연속되는 가운데, 본업과 관련된 투자까지 시장 플레이어들이 예상한 것과 다르게 흘러가는 점에 피로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 같다”고 의견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