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M&A 힘 쏟았던 대기업들, 환율 급등에 비상
입력 2019.08.06 07:00|수정 2019.08.07 10:25
    아웃바운드 거래시 대규모 달러 차입 일으켜
    한·일 무역분쟁 여파로 원달러 환율도 급등
    비싸진 달러에 차입금, 이자에 증자까지 부담
    • 해외 M&A에 심혈을 기울였던 대기업들이 환율 급등에 비상등이 켜졌다. 환율 고공 행진이 장기화하면 향후 더 많은 비용을 들여 외화 자금을 마련하고 돌려줘야 한다. 해외 기업에 추가로 지원하는 경우엔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

      대기업들은 작년부터 아웃바운드(해외 기업 경영권 인수) 거래에 집중했다. 국내 성장성이 꺾이고 규제도 강화하면서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됐다.

    • KCC는 올해 SJL파트너스와 함께 조단위 차입금을 일으켜 모멘티브를 인수했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쉬완스를 인수하며 인수금융을 활용하는 한편 베인캐피탈도 재무적투자자(FI)로 초빙했다. 한화에어로의 EDAC 인수, LG생활건강의 뉴에이본 인수, CJ대한통운의 DSC로지스틱스 인수 등이 이어졌다. SK그룹은 지난해 베트남 마산그룹 소수 지분을 인수했다.

      우리 기업의 눈에 뜨이는 성과가 많았지만 최근 환율이 급등하며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앞서 거래는 모두 달러화가 기본이 된 거래다. 1년 전만해도 1100 초반을 오가던 원달러 환율은 2일 1200선을 돌파했고, 5일엔 1215원까지 올랐다. 일본과의 무역분쟁이 강대강 국면으로 흐르면서 환율 변동성도 커지고 있다.

      해외 M&A 특성상 거래 대금은 달러화 등 외화로 지급되는 경우가 많은데 원화가 약세를 보이면 잠재적으로 갚아야 할 차입금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다. 환율이 오른 만큼 더 많은 원화를 들여야 같은 금액의 달러를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원달러 환율이 1000원일 때 달러 차입금을 조달했는데, 환율이 1100원으로 오르면 차입금 규모가 10% 늘어나게 된다. 인수금융 자체에 대해서는 환율 변동에 대비해 환헷지를 걸어두는 경우도 드물다.

    • 잠재적인 빚이 늘기 때문에 기업의 재무구조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모멘티브를 인수한 KCC와 같이 신용평가사들이 향후 영향을 예의주시하는 경우는 부담이 더 커지게 된다.

      해외 M&A는 자연적인 헷지 효과를 내기 위해 현지에 특수목적회사(SPC)를 세우고, 그 인수 대상의 배당으로 이자를 상쇄하는 구조를 짜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고 국내 회사가 직접 차입금을 일으킨 경우엔 외화 차입금에 부수하는 이자 부담도 덩달아 커지게 된다.

      이런 부담은 차입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재무적투자자(FI)나 기관투자가로부터 외화 지분 투자, 메자닌 투자를 유치한 경우에도 약정된 수익률을 돌려주려면 더 많은 원화가 필요해진다.

      인수한 해외 기업의 실적이 좋을 때는 그래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적이 꺾이고 우리 기업의 추가적인 수혈이 필요해지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해외 기업의 숨통을 틔우기 위한 자금 역시 달러도 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쉬완스도 M&A를 전후해 자체적으로 5억달러의 차입금을 일으켰는데, 실적이 악화한다면 궁극적으론 CJ제일제당의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한 M&A 자문사 관계자는 “인수 기업의 부채 상환 능력이 악화한다면 본사의 지급보증 의무가 현실화하고 달러 조달 부담도 커지게 된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우려는 인수금융 만기나 FI의 회수 시점이 돌아올 때 현실화 할 수 있는 위험이다. 당장 급박한 부담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이 단기간에 종료되거나, 환율이 투자 시점으로 돌아올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한 증권사 임원은 “일본의 공세가 지속되면 주요 기업들의 타격이 불가피하고 그런 걱정이 환율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라며 “향후 전망이 점점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