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진에 자식따라 미국行…자산가 유혹하는 '90만불 투자이민'
입력 2019.08.13 07:00|수정 2019.08.14 09:59
    미국 투자이민 프로그램 EB-5 변경안 최종 고시
    4달간 유예기간 시작…'마지막 티켓' 노리는 자산가들
    최대 투자금 180만 달러…수익 보다는 영주권 목표로
    원금 리스크 상승, 프로젝트 '옥석 가리기' 철저해야
    • 최근 '투자이민'의 문을 두드리는 자산가들이 늘고 있다. 주식 시장 하락, 부동산 규제로 국내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데다 경기 침체로 유학자녀의 '취업 걱정'까지 떠안은 이들이 투자이민을 계속 염두에 둔 상황이다. 여기에 조만간 미국 투자이민에 필요한 금액이 두배 높아지는 변경안 시행이 예정되어 있는 점이 변수로 자리잡고 있다.

      美 시민권 및 이민국(USCIS)은 연방관보(Federal Register)를 통해 투자이민 프로그램인 EB-5의 변경안을 지난달 24일 최종 고시했다. 해당 내용에 따르면 기존까지 간접 투자금액 50만 달러(약 6억원), 직접 투자금액 100만 달러(약 12억원) 중에서 선택해 이주가 가능했던 가격이, 4개월 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11월 21부터 각각 90만 달러(약 11억원)와 180만 달러(약 22억원)로 상향될 예정이다.

      현장에서는 규정 변경 전 투자이민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이번 금액 인상은 이미 6차례 연기를 거듭한 내용으로, 이미 지난해부터 업계서는 "내년 상반기 중에는 오른다"는 예측이 있어왔다. 결국 인상안이 확정되며 고민을 거듭했던 자산가들이 결국 상담 창구에 몰리는 모양새다. 유예기간이 시작된 지금이 가장 싸게 갈 수 있다는, ‘마지막 티켓’ 심리가 작용되는 셈이다.

      한 이민전문법인 관계자는 "지난해 대비 올 상반기만 3배에 가까운 인원이 늘었다"고 전했다. 다른 이민 컨설팅 업체는 "고시일인 24일 전후에는 관련 문의가 1.5배 늘었다"고 귀뜸했다.

      투자이민은 당초 전문 기술 경력자, 교수나 연구가 등의 소수 인원만이 가능한 취업이민이나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종교이민과는 달리 별다른 조건이 없어 각광 받아왔다. 이들은 미국이 지정한 고용촉진구역(TEA) 내 호텔, 오피스 등의 개발사업에 간접 투자하거나, 사업체 등에 직접 자금을 투자하고 10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해야 하는 조건을 부여 받는다. 해당 프로그램을 통하면 2년간의 한시적 영주권을 부여 받을 수 있으며, 향후 고용 달성률 평가 등을 거쳐 정식 영주권을 부여 받는다. 미국 내 거주지역 선택은 자유다.

      간접투자는 ‘리저널 센터’(Regional Center)를 통한다. 리저널 센터는 미 이민국이 EB-5프로그램을 위해 지정한 단체나 기구로, 일종의 투자대행기구 역할을 한다. 이들이 진행하는 원리금 회수의 기본적인 구조는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유사한 개념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일종의 조달 역할을 부여받고 부동산 개발사업 등에 자금을 투여하며, 완공 시 발생하는 운영수익이나 자산가치서 원금과 수익률을 회수받는다. 투자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업무들을 모두 리저널 센터가 대신 진행하기 때문에 ‘간접’이라 불리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용 창출에 대한 평가는 별도로 진행된다.

      직접투자는 이와 별개로 사업체 등에 직접 자금을 투자해 지분을 얻거나 경영에 관여하게 된다. 간접투자 대비 더 많은 자금이 요구된다. 미 이민국은 직접투자의 최저금액을 간접투자 대비 통상 2배 정도 수치로 잡아왔다.

      다만 국내 투자자들의 상황을 뜯어보면 현실적으로 기업체 운영 여하에 따라 천차만별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직접투자 방식보다는 간접투자를 통한 원금 회수를 목표로 진입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미국 현지의 사업체 운영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피하고, 원금 보장이 되지 않는 프로그램 특성상 큰 돈을 투자하기가 부담스럽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실제로 간접투자에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듣는 프로젝트도 수익성이 채 2%에 못 미치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현장 관계자들은 전한다. 사실상 ‘영주권’이 목표가 되는 셈이다.

    • 미국은 이러한 방식을 앞세워 투자이민 국가 중에서 가장 '가성비'가 좋은 곳으로 꼽혀왔다. 지난 93년 투자이민 관련 세부규정이 자리한 이래 특별한 세부 조항 및 가격변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캐나다나 호주가 각각 최소금액만 120만 CAD(한화 약 11억원), 150만 AUD(한화 약 12억원)를 받으며 수년간 가격을 올려온 것과는 대조적인 형태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자국민 보호 기조 속에서 지정된 이번 인상안은 향후 물가 상승분을 반영해 5년마다 금액 재조정까지 예고되는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 이민 장벽이 높아짐에 따라 자녀를 유학시킨 자산가들의 마음도 조급해 지고 있다.

      또 다른 투자이민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최근 미국 투자이민의 경우, 50% 이상의 상담 신청자가 자녀를 미리 유학 보낸 부모거나 이를 고려하고 있는 가정이다"라며 "영주권을 취득할 경우, 자녀의 교육과정 학비가 절반 이하까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겸사겸사 수요가 몰리는 편"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미국의 경기 호황 역시 현지투자를 노리는 여력 있는 자산가들의 심리를 부추긴다는 분석이다. 특히 미국 부동산 투자시장의 경우, 실거주 목적을 1원칙으로 짜여진 국내 정책과는 달리 투자에 대한 허용 범위가 넓다는 평가다.

      美정부가 원금 미보장 원칙과 함께 TEA 규정을 더 엄격히 세우고 있는 점은 걸림돌이다. 당초 투자이민 프로그램은 TEA구역 산정 권한이 주(州) 단위에 주어져, 프로젝트가 주에 유리한 대도시 개발사업에만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을 내놓으며 미국 국토안보부는 "대도시 집중되는 TEA의 프로젝트를 투자이민 취지대로 공평히 판정하겠다"는 입장과 함께 산정 권한을 가져갔다.

      한 이민 관련  컨설턴트는 "중소규모 도시의, EB-5 의존도가 높은 개발 프로젝트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며 "기존 대도시 개발 프로젝트의 경우 원금 보장확률이 당연히 높아 투자자들 입장에서 나쁠 게 없었지만, 앞으로는 원금 리스크가 불안정한 프로젝트들도 상당수 등장하게 될 것이라 신중해져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