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부터 어긋난 코스닥활성화...'전시 행정보다 수급 육성해야'
입력 2019.08.13 07:00|수정 2019.08.16 09:17
    표면적 성과에 집착...실제로는 '비활성화'로 전진
    주요 3대 정책 모두 금융권서 성토...중장기 육성 필요
    • 최근 5년치의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고 500선으로 되돌아간 코스닥 시장을 다시 살릴 순 없을까. 전문가들은 정부의 정책 설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수급 기반을 마련하는 대신,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처방에만 집중했다는 것이다.

      '코스닥 활성화'를 전면에 내건 정부임에도 불구, 큰 정책의 방향은 '코스닥 비활성화'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는 게 증권가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대주주 요건 완화, 배당소득 분리과세, 주식형 펀드 활성화 등 좀 더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 정부의 코스닥 정책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코스닥을 통합한 새 대표지수(KRX300) 산출 및 연기금의 코스닥 투자 독려 ▲기술특례 상장 활성화를 통한 벤처기업 자금 융통 ▲코스닥벤처펀드 등 수요 기반 마련이 첫 손에 꼽힌다.

      KRX300은 대표적인 전시 행정의 결과물이라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지수를 내놓은 지 1년6개월이 지나도록 활성화는 요원하다는 평가다. 지난해 말 1조원 정도로 알려졌던 KRX300 추종자금 규모는 올해 초 8000억원, 최근엔 7000억원 이하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국내 기관은 물론이고 외국인 투자자들도 KRX300은 사실상 없는 지수 취급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몇몇 펀드에서 벤치마크 지수로 도입을 검토했지만 실효성이 없어 코스피200 등 기존 지수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을 필두로 주요 연기금들이 내부 규정에서 코스닥 투자 제한을 풀며 수급 사정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됐지만, 결과적으로는 효과가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당장 이달 들어 시장이 급락하는 가운데 연기금은 코스피 시장에서 1조4645억여원을 순매수했지만, 코스닥에서는 불과 360억여원을 순매수하는 데 그쳤다.

      한 연기금 주식운용 담당자는 "그래도 투자제한 규정 등이 해제되며 코스닥에 대한 투자가 늘어난 건 사실"이라면서도 "최근 정부의 관심이 뜸해진데다 바이오 거품 붕괴로 투자할만한 회사를 찾기 어려워 앞으로는 어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술특례 상장 활성화는 결국 '신라젠 사태'를 촉발했다는 평가다. 신라젠 주가는 2011년 11월 장중 최고점 대비 91% 폭락한 상태다. '기술특례 대장주' 신라젠의 소액 주주 수는 14만7000여명에 달한다.

      정부에서 혁신·벤처기업 육성을 강조하며 기술특례 활성화 방침을 밝혔을 때 일각에서는 '전문 투자자들이 져야 하는 고(高) 리스크를 일반투자자들에게 떠넘기는 셈'이라는 우려를 내놨다. 주가가 오르며 모두가 흥청망청할 때엔 큰 문제가 없겠지만, 거품이 붕괴하고 변동성이 커지면 결국 일반투자자들만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우려는 결국 현실화했다. 신라젠의 실패는 대외 변수보다는 핵심 사업인 항암신약 임상 과정에서의 실패라는 점에서 더욱 질이 나쁘다는 지적이다. 항암 신약은 시가총액 수백조원의 글로벌 빅파마들도 실패하는 일이 허다하고, 주로 전문 투자 펀드가 분산 투자를 통해 리스크를 관리하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일반투자자들이 쉽게 접근하는 것이 옳은 일이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기술특례 상장 활성화는 전문가들이 감내해야 하는 투자 리스크를 대중에게 무제한으로 전가한다는 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한 정책"이라며 "정부가 벤치마크한 미국 등 선진증시에는 기업공개(IPO)시 일반투자자에게 주식의 20%를 의무 배정하는 제도가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코스닥벤처펀드는 과도한 메자닌 쏠림으로 시장을 왜곡시킨데다, 펀드 자체의 수익률도 최대 30% 수준까지 떨어졌다는 점에서 역시 실패한 정책으로 손꼽힌다. 코스닥벤처펀드가 보유한 대규모 메자닌 물량은 이미 하반기 코스닥에 물량부담을 주기 시작했다.

      게다가 코스닥 급락으로 거의 모든 펀드가 원금 손실 구간에 접어들며 세금공제 혜택보다 원금 손실이 더 부담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짭짤한 운용 보수를 챙긴 일부 운용사를 제외하면 모두가 손해를 본 상품이라는 말까지 회자된다.

      다른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코스닥벤처펀드는 코스닥 '비활성화' 정책이라는 시장의 지적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눈에 보이는 성과 만들기식 정책이 시장을 왜곡시켰다"고 말했다.

      정부가 정말로 코스닥 시장을 활성화하고 싶다면 투자 저변을 확대해 수급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중장기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세수 확보를 위해 지속적으로 주식 투자자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다는 게 금융권의 지적이다.

      대표적인 정책이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을 1000만원으로 내리기로 한 소득세법 개정안이다. 주식·펀드로부터 받는 배당 수익은 물론 변액보험 차액까지 이 한도 내에 포함된다. 대주주요건도 2013년 이후 급격히 강화되고 있다. 2021년부터는 가족 포함 3억원 이상을 보유하면 대주주로 인식해 매각시 양도소득세를 부과받는다.

      전문가들은 증시에 적대적인 일련의 정책들이 주식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게 만들고, 결국 국내 자금이 부동산이나 리스크가 더 큰 해외 대체투자로 쏠리게 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배당소득은 분리과세하고 주식형 펀드에 대해 세제혜택을 늘려 중장기적으로 증시 수급기반을 키우는 편이 향후 세수 확보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국내 주식형펀드 설정원본 규모는 62조원으로 5년간 22조원이나 줄었고 이것이 국내 기관 수급을 악화시키는 주된 요인이 됐다"며 "운용업계의 각성도 필요하지만, 증시를 건전한 자산증식의 장으로 인정하고 육성하려는 정부의 중장기 노력도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