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처한 LG디스플레이, 도화선은 경영진의 안이한 '낙관론'
입력 2019.08.19 07:00|수정 2019.08.21 09:40
    LCD 업황 하락 가속화에 우량 신용도 'AA'도 흔들
    시기상조·무리수 평가했지만…추가 설비 점등식 여는 中
    LCD 포기 결단 미뤄왔던 LGD…조직 생존 논리도 지적
    칼 빼든 LG그룹…대규모 구조조정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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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디스플레이가 경기도 파주 사업장에서 진행한 '2019 목표달성 결의대회'에서 한상범 부회장(우측 네번째)과 임직원들이 함께 대형 김밥을 만들고 있다.

      지난 4월 25일 LG디스플레이의 1분기 실적이 발표된 다음 날.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을 비롯한 임직원 1000여 명은 한데 모여 ‘2019년 전사 목표달성 결의대회’를 열었다. 파주 월롱산 정상까지 산행한 데 이어 55인치 LCD TV를 부수는 퍼포먼스 등을 벌였다. 무엇보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2019년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자'는 의미로 19미터에 달하는 대형 김밥을 만든 이벤트였다. LG디스플레이는 1분기 1300억원 대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LG디스플레이가 "행사 취지와 맞지 않았다"며 배포한 행사 사진을 회수한 '해프닝'도 있었다.

      이 같은 임직원들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2분기에도 LG디스플레이는 3687억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 분쟁으로 IT 기기들의 수요가 부진한 데다, 중국 업체들의 물량 밀어내기가 이어지며 예상보다 업황이 더 악화했다는 평가다. 실적 부진 뿐 아니라 분기 중 8000억원에 달하는 해외 전환사채(CB) 발행 소식까지 겹치며 회사 주가는 고꾸라졌다. 연초까지만 해도 올해 3분기 흑자 전환을 전망했던 애널리스트들은 투자의견을 서둘러 수정했다.

      ◇희망 없는 LCD 업황·늘어나는 부채…신용도 'AA' 상실 가시권 

      LG디스플레이 입장에선 회사가 손쓸 수 없었던 ‘외부 환경’ 영향을 일단 탓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회사에 닥친 위기가 점점 '숫자'로 현실화되고 있다.

      회사는 올해에만 OLED 투자비용으로 8조원을 쏟아야 할 상황이지만 영업 적자가 큰 폭으로 쌓이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매출액 대비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12% 미만일 경우 ▲EBITDA 대비 순차입금 2.5배 초과가 지속할 경우 신용등급(AA-, 안정적) 하향압력이 커질 것으로 제시했다. 2분기 실적 부진으로 이미 제시한 하향 기준은 넘어섰다.

      회사가 우량 신용도(AA-)를 상실할 경우 향후 자금 조달을 둔 고민은 더 깊어질 수 있다. 일부 신용평가사는 회사가 올해와 내년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겠다 예고한 기간인 점을 고려해 등급조정에 여유를 둔 분위기지만, 일부 평가사는 올해 3분기부터 실적 추이를 신용등급에 반영할 예정이다.

      그나마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해온 OLED TV가 존재감을 보이며 수익에 기여해왔지만, 어디까지나 의사결정 주도권은 모회사 LG전자에 있는 점도 변수다. LG전자 TV사업을 이끄는 권봉석 사장은 OLED TV의 대중화를 내비치면서 큰 폭의 가격 인하를 시사하기도 했다. TV가격에 가장 큰 비중이 패널가격인 점을 고려하면, 그나마 수익을 내기 시작한 LG디스플레이의 OLED 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시장 관계자들은 내년도 흑자 전환에 회사의 명운이 걸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미 증권가에선 “상장이후 최악의 위기”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 '中 과소평가·LCD 낙관' 내부집단 의사결정 한계 평가도

      업계에선 위기 신호에 둔감했던 경영진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하나 둘 나오고 있다.

      이미 중국의 국가 차원 지원을 통한 LCD 디스플레이 '굴기'는 지난 2015년부터 우려해온 사실이지만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보다 '낙관론'에 빠졌던 것 아니냐는 평가다. ▲중국 업체들의 기술력을 고려할 때 10.5세대 설비 가동은 단기간 내 어려울 것이란 전망 ▲10.5세대 설비를 통해 양산될 65인치 이상 대형 TV의 대중화는 시기상조라는 분석 등이 위기를 야기한 낙관론의 사례로 꼽힌다.

      중국업체가 보유한 10.5세대 유리기판을 사용하면 하나의 판에서 65인치 패널 8개 또는 75인치 패널 6개를 생산할 수 있다. LG디스플레이의 8.5세대 라인은 유리기판 하나에서 65인치 패널 3개를 생산하는 점을 고려하면 대형 패널 생산량에선 확연한 격차를 보인다. 회사의 낙관과 달리 중국 CSOT는 10.5세대 설비를 무리없이 가동해 대형 패널을 쏟아내고 있고, 중국 BOE도 연말 두 번째 10.5세대 설비 점등식을 앞두고 있다. 이로 인해 65, 75인치 패널 가격도 급격히 하락하며 대형 TV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다.

      관련업계에선 LG디스플레이가 중국의 변화를 진지하게 지켜봤다면 좀 더 빠른 LCD 포기와 OLED로의 전환 결정을 내렸어야한다고 지적한다. 파주 내 8.5세대 LCD 설비를 조기에 OLED로 전환하고, 국내 10.5세대 OLED 투자 결정을 적어도 1년은 더 일찍 내렸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간 회사 수익 대부분을 맡아온 LCD 사업부서 임원들의 이해관계를 생각할 때 객관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았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내부에서도 "LCD 디스플레이는 사이클 산업이다보니 언젠간 가격이 회복할 것"이란 낙관 탓에 의사결정이 미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예를 들어 경쟁사 삼성디스플레이가 대형 LCD 설비를 폐쇄하면서 찾아온 잠깐의 가격 반등 시기를 '회복 국면'으로 내세워 부서 생존에 활용했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애널리스트 등 외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내부에서 "8세대로 승리하자"는 건배사가 통용될 정도로 '집단사고'가 팽배했지만, 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자성이다.

      한 디스플레이 담당 애널리스트는 “회사가 10.5세대는 시기상조고 8.5세대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 때 일부 애널리스트들도 회사 논리에 맞춰 자료를 제시하며 입맛에 맞춰준 점이 있다”라며 “LG디스플레이가 애널리스트들을 불러서 진지한 토론보단 O·X 퀴즈를하며 상품을 나눠주는 등 위기에 둔감했던 모습을 보이다 보니 회사 입장과 다른 쓴소리를 할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LG디스플레이 내부에서도 올해 들어서야 파주 내 일부 라인의 가동 중단을 검토하는 등 단계적인 LCD 출구전략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적기를 놓친 탓에 치러야 할 비용은 더 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생산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해 약 3000여명의 인력을 줄였지만, 1년여만에 또다시 대규모 구조조정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선 임원 30% 축소설 등 대규모 구조조정설도 언급되고 있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구조조정이 아닌 순수한 희망퇴직을 단행했고, 경영이 어렵다보니 조직슬림화와 비용절감 등 경영효율화 방안은 다각도로 하지만 구조조정이 정해진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디스플레이 애널리스트는 "LCD 설비를 폐쇄해 매출과 자산은 줄이면서 기존 인력을 유지해 고정비용은 그대로 두면 손익은 오히려 부정적이다"라며 "임원진의 의사결정 실패로 또다시 LCD 부문 수천 명 수준의 구조조정을 앞둔 게 LG디스플레이의 현실"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