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G선박 로열티 수천억 새는데...소송·상용화 지연에 잠자는 국내 기술
입력 2019.08.20 07:00|수정 2019.08.21 09:41
    LNG船 독주 한국, 외국에 연 수천억 로열티
    첫 적용 기술, 결함에 소송까지 겹치며 암울
    독자 기술, 안전성 입증·고객 신뢰까진 먼 길
    • 우리 조선사들이 LNG선박 저장창고 기술료로 막대한 금액을 지불하고 있지만 정작 10년 이상 공들인 우리 기술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조선사들이 합심해 개발한 기술은 결함 문제로 소송 절차가 진행 중이고, 조선사들이 각자 개발한 기술은 아직 상용화까진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올해 국내 조선업계는 LNG선 수주 호황에 힘입어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한국 조선사는 지난해 전 세계 LNG선 발주량의 85%가량을 차지했고, 올해도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 LNG선 수주 호황의 덕을 보는 곳은 따로 있다. LNG선은 초저온의 LNG를 담을 수 있는 저장창고(화물찰) 기술이 가장 중요한데 프랑스 GTT(Gaztransport & Technigaz)사가 이 분야 원천기술을 거의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GTT의 기술을 활용하면 LNG선 한 척을 건조할 때마다 약 5%의 기술료(로열티)가 나간다. 17만㎥급 대형 LNG선 한 척의 가격이 2000억원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배를 지을 때마다 100억원의 지출이 발생한다. 국내 조선업계가 매년 LNG선 60척 정도를 수주한다면 로열티만 6000억원이 나가게 된다.

    • 정부는 일찌감치 LNG선 화물창 국산화에 나섰다. 과거 GTT가 한국에 회사를 인수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는데,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겠다며 제안을 거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가스공사 주도, 조선 3사 참여로 2004년 이후 기술 개발이 진행됐고, 2014년 한국형 화물창 핵심 설계기술(KC-1) 개발이 완료됐다. KC-1은 2016년 설립된 KLT(케이씨엘엔지테크)에 이전됐다.

      기술은 개발됐으나 상용화 단계에서 제동이 걸렸다.

      한국가스공사는 2014년 미국 사빈패스 셰일가스 도입용 LNG선을 발주하면서 2척에 KC-1을 적용했다. 두 배(SK세레니티, SK스피카)는 인도됐으나 가스 누출, 결빙 현상 등 중대한 결함이 발견됐다. 운항선사인 SK해운은 건조를 맡은 삼성중공업을 대상으로 법적 공방에 들어갔고, 삼성중공업 또한 이에 맞대응하면서 갈등이 심화했다.

      이대로라면 어느 쪽이 이기든 기술이 빛을 보긴 어렵다. 기술이 불완전할 수 있다는 인식을 준 것 자체가 타격이다. 화주와 국내 조선소가 머리를 맞대 개발한 기술인데도 적용 과정에서 발생한 잡음을 조율하지 못했다. 사실상 실패한 기술이란 지적까지 나왔다.

      한 증권사 조선 담당 연구원은 “KC-1은 기술 결함이 있는 데다 조선사가 고객에게 맞고소까지 건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해외 어느 고객이 추가로 일을 맡길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대형 조선사들은 KC-1과 병행해 독자 화물창 기술 개발도 진행했다. 삼성중공업은 2011년 국내에서 가장 먼저 화물창 기술(KCS)을 갖췄고, 대우조선해양도 2017년에 기술(솔리더스)을 개발했다. 솔리더스는 LNG가 운송 과정에서 기화돼 손실되는 비율(기화율)이 세계 최저 수준이고, 국내외 선급 기관으로부터 설계 인증을 받기도 했다.

      실제 쓸 수 있는 기술로 인정받기까진 갈 길이 멀다. 적도나 북극 항로 등 험로에서의 시험 운행을 통해 안전성을 검증해야 하는데, 아직 적용 사례도 없다. 운항 데이터를 쌓고 고객의 신뢰까지 얻으려면 앞으로도 몇 년이 더 걸릴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KCS나 솔리더스는 실제 적용된 사례가 없다보니 기술적 안전성도 입증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독자 개발 기술이 조선 3사가 모두 참여해 10여년간 개발한 KC-1보다 낫다고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상용화 단계에 가장 가까이 가 있는 KC-1가 사장되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각 당사자들의 피해와 손실을 투자 비용으로 삼아 기술 완성도를 높이면 향후 더 큰 이득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GTT의 독점 구도를 견제하지 못하면 향후 로열티 부담이 더 커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한 선박금융 업계 관계자는 “KC-1를 둘러싼 법적 다툼이 끝까지 가면 우리나라는 영원히 LNG 화물창 원천기술을 갖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며 “당사자들이 협의해 기존에 만든 선박을 1~2년간 테스트하고 기술을 완성한다면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