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버블 붕괴의 시작…임상실험 맹신 ‘경계령’
한지웅·정낙영 기자 | hanjw@chosun.com | 2019.08.22 07:00
Edited by 이도현 차장 | dohyun.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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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케어 지수 낙폭 최대
극소수 전문가 믿고 성행한 ‘바이오 묻지마 투자’
정량적 밸류에이션 방식 부재도 ‘버블’의 원인
임상에 따라 기업가치 움직이는 美바이오 기업들
“기대감 보단 ‘현실’에 방점 둔 투자 늘어야”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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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바이오 기업들에 대한 버블이 붕괴할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신약 개발업체들의 임상 중단 또는 실패 소식이 연이어 전해졌고, 해당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하며 바이오산업 전반에 걸친 위기론이 확산했다.

최근 들어 투자자들 사이에선 바이오 기업의 기술력에 대한 재점검 움직임과, 대박을 노리고 투자했던 관행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신약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 ‘임상’이란 단어에 기업가치가 고무줄처럼 늘어나던 과거의 모습에 변모하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전 세계 어는 국가와 비교해도 바이오 기업에 대해 가장 높은 수준의 밸류에이션(기업가치 평가)을 매기는 국가 중 하나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던 2016년 말부터 국내 증시가 우상향 곡선을 그렸던 지난해 말까지, 한국 바이오 기업들의 주가 상승률은 다른 국가 유사한 규모의 기업들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영업적자를 지속하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수조원대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을 기록하던 나스닥의 리제네론(Regeneron Pharmaceuticals, Inc.), 도쿄 증권거래소의 아스텔라스제약(Astellas Pharma Inc.)보다 시가총액이 훨씬 높았다. 지난해 초, 셀트리온그룹의 상장사 시가총액의 합계는 KB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의 모든 주식을 통째로 사들이고, 하나금융지주의 지분 절반 이상을 추가로 매입할 수 있는 규모까지 커졌다. 한 때 나스닥 상장을 고민하던 SK바이오팜이 국내 증시 상장으로 선회한 것도 이같이 높은 밸류에이션 때문이기도 했다.

대형 위탁생산 전문업체(CMO)는 물론이고, 바이오시밀러(복제약)과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텍(Biotech)도 마찬가지였다. 한때 코스닥 대장주로 여겨지던 신라젠은 2016년 말 상장 후 시가총액이 10조원을 넘겼다. 에이치엘비 또한 지난해 초 주가가 10배 이상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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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승승장구하던 바이오 기업들은 올해 ▲한미약품의 1조원 규모의 기술수출(Licence out) 계약 취소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의 품목허가 취소 ▲미국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DMC)의 신라젠 펙사벡(Pexa-Vec) 임상중단 권고 ▲에이치엘비 경구용 항암신약 ‘리보세라닙’의 임상 목표치 도달 실패 소식이 들리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던 바이오 기업들에 잇따른 악재는 해당 기업들의 주가 하락은 물론이고, 전반적인 바이오 기업들의 기업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때는 국내 주요지수의 상승률을 크게 웃돌았던 ‘KRX300 헬스케어 지수’는 현재 국내 증시의 하락폭보다 훨씬 큰 낙폭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일부 회사는 주요 임원들이 주식을 팔아 수천억원 대 현금을 챙긴 것으로 나타나면서, 막대한 손실을 기록 중인 바이오 기업 투자자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국내 금융기관 바이오·제약 한 연구원은 “국내 바이오 기업의 주가는 기존과 달리 이벤트에 후행하고, 가치평가도 더 냉정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국내 바이오 기업들에 대한 가치평가 과정에선 FDA의 임상 평균 성공률에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추가로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과거 바이오 기업에 자본이 몰릴 수 있었던 것은 개인과 기관 할 것 없이 시장에 넘치는 유동성 때문이었다. 기간산업과 제조업의 성장성은 정체했고, 저금리가 지속하면서 고수익 투자를 노리는 자금은 갈 곳을 잃었다. 바이오 기업이 상장만 하면 ‘대박’을 기록한 몇몇 사례가 생겨나면서 자금 쏠림 현상은 극에 달했다.

바이오 업종의 정보 비대칭성은 어느 산업보다 심하다. 기업가치를 정량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전문가들도 극히 드물다. 대기자금은 넘쳐나고, 정보는 부족하다 보니 업계 전문가로 꼽히는 1~2곳의 기관이 소위 ‘깃발’을 꽂으면 투자자들이 몰려드는 기현상도 발생했다. 바이오 투자를 고려하는 기관투자가들 사이에선 ‘H 운용사의 H 전무’, ‘D 자산운용의 J 회장’의 투자가 마치 바이블처럼 여겨지는 관행이 생겨났다.

국내 사모펀드(PEF) 업계 한 관계자는 “바이오 기업에 투자하는 상당수의 기관들이 기업의 실체를 명확하게 알고 투자하기보단, 극소수의 전문가들만을 믿고 따라서 투자하는 관행이 상당히 만연하다”며 “비상장사의 경우엔 기술력은 물론이고 내부의 회계 처리 문제, 경영의 합리성 등을 충분히 따져 봐야 하지만 묻지마 자금이 몰리면서 본질적인 기업가치에 비해 버블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신약 개발업체들이 성장하기 위해선 끊임없는 자금이 유입돼야 하는것은 사실이다. 연구개발(R&D) 비용은 물론이고 추후 임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엔젤투자 형식의 초기 투자부터 상장전투자유치(Pre-IPO) 단계까지 1~2년 단위로 투자자를 모집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바이오 버블이 생기기 시작한 이후부턴 투자자 유치가 한 단계씩 높아질 때마다 기업가치가 2~3배씩 커지는 경우도 생겼다. 투자를 유치하는 바이오 기업들의 상당수는 ‘신약 개발에 성공할 지’ 또는 ‘신약 개발에 성공해 상용화할 지’ 아직은 미지수인 경우가 많다.

국내 한 금융기관 자기자본(PI) 투자 담당자는 “불과 1년 반 전에 기업가치가 1000억원이던 회사가 올해엔 3000억원 이상의 기업가치로 투자자를 모집했다”며 “기술력은 기대해 볼만했으나, 1년 전에 비해 3배 이상 기업가치가 높아질 정도로 가시화한 성과를 낸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국 투자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국내 증권사 제약 담당 한 연구원은 “신약이 출시돼 판매되기 위해선 기존 치료제를 뛰어넘을 수 있는 확실한 강점이 필요하다”며 “그렇지 못하면 판매 허가를 획득할 수는 있어도 상업적 성공은 불투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 분야에선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미국의 경우엔 상황이 다르다.

국내 일부 신약 개발사들이 ‘개발 중’인 1~2건의 신약만으로 수조원, 많게는 10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평가받는다면 미국 바이오사들의 경우 5~6건의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도 시총이 1조원이 채 되지 않는 곳이 많다.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임상’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보다는 ▲기술수출을 통해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향후 신약의 상품성에 주안점을 둔 투자 관행 때문이기도 하다.

창업주의 지분이 5%가 채 되지 않는 미국 바이오 기업들도 상당수다. 수년간 길게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꾸준히 투자자를 유치하면서 희석된 지분 때문이다. 확실한 경영권을 갖고, 상장 전후로 막대한 자금을 현금화하는 국내 바이오기업 일부 오너들과는 대조적이다. 1~2건의 신약에 기대기보단 중간 단계에서 기술을 수출해 현금을 만들어 내고 그 자금으로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구축해, 보다 영속적인 기업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지향해야하는 모습으로 꼽히기도 한다.

국내 바이오 기업들의 기술수출 또는 투자자 유치 과정에서 보다 합리적인 밸류에이션 기법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차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 바이오 기업들은 제약·바이오 전문 컨설팅업체에 의뢰해 신약 가치에 기반한 기업가치를 평가받는 게 일반적이다. 전문 업체가 각 국가 의료진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 ▲ A사의 신약이 기존 제품보다 얼마나 효용가치가 있는지 ▲예상 시판 가격이 적정한지 ▲실제로 얼마나 사용될지 등을 조사해 빅데이터를 형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국내 바이오 기업들 가운데 임상 발표를 앞둔 기업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올 하반기에만 메지온, 헬릭스미스, 에이치엘비 등의 임상 결과가 발표될 전망이다. 국내 바이오 기업들의 버블이 점차 꺼지기 시작하면서 기존과는 다른 투자자들의 접근 방식이 보편화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내 증권사 제약·바이오 한 전문가는 “국내 바이오 회사에 대한 투자전략이 보수적이고 현실적으로 바뀔 것이다”며 “R&D 비용을 과도하게 집행하는 제약사들에 대해선 디스카운트가 적용될 것이고, 바이오시밀러·의료기기 등 가격경쟁력을 기반으로 수출을 통해 이익 성장을 꾀하는 일부 업체들에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8월 18일 07:0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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