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환율전쟁에 볼모 잡힌 국내 자본시장...추가 하락 우려
이재영 기자 | leejy@chosun.com | 2019.08.22 07:00
Edited by 현상경 부장 | hs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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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협상 결렬이 5일 폭락장으로 이어져
환율 무기화 '위력' 확인한 중국, 추가 절하 우려
양국 '전면전' 가지 않더라도 변동성 당분간 커져
성장성 떨어진 국내 증시, 대외 변수에 실적 저하까지

일러스트 바이라인_1면

7월 말 진행된 미중 무역협상이 큰 성과 없이 결렬됐다.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시진핑 중국 주석이 시간끌기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격노해 9월부터 3000억달러 규모 중국 수입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중국은 5일 달러위안 환율이 1달러당 7위안을 넘어가는 것을(포치;破七) 용인했다. 미국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강대강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자 코스피를 비롯한 글로벌 증시는 일제히 급락했다.

14일에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이날 중국과 미국은 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주 만에 손바닥을 뒤집어 크리스마스까지 중국 소비재에 대한 관세를 유예하겠다고 발표했다. 역외 달러-위안 환율은 소식이 전해진 지 2시간만에 달러당 7.1위안에서 7.01위안으로 수직 하락했다. 미국 주요 지수는 2%에 가까운 급상승세를 보였다. 국내 증시도 이를 따라 회복세를 보였다.

8월 들어 펼쳐지고 있는 자본시장의 전후 사정을 시간 흐름에 따라 배열한 것이다. 국내 증시는 여기에 한일 무역갈등과 모건스탠리인터내셔널지수(MSCI) 리밸런싱 이슈가 더해져 더 큰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금융권 전문가들은 당분간 국내 자본시장 전망에 가장 중요한 변수로 '환율'을 꼽는다. 원-달러, 원-엔이 문제가 아니다. 달러-위안 환율이 국내 증시의 '목숨줄'을 부여잡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증시 수급이 외국인에 쏠린 상황에서 환율에 민감한 외국인들의 투자심리가 달러-위안 환율에 반영되는 까닭이다.

이는 결국 미중 무역분쟁이라는 외생 변수가 당분간 국내 증시를 휘두를 거라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한일 무역분쟁 등은 국내 투자자들의 심리를 위축시킬 추가 악재다. 일각에서 다시 '코스피 1500 바닥설'이 회자되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현재 국내 증시를 좌우하고 있는 건 대외 변동성이라는 데 이견이 있는 시장 관계자는 거의 없다. 8월8일 이후 이어진 증시 반등, 13일의 반락, 14일의 회복세도 결국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지수가 단기 바닥이라고 생각한 개인 매수세가 몰리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는 중국이 위안화채권 발행을 통해 환율을 1달러 당 7~7.1위안 사이에서 안정시킨 게 핵심이었다"며 "중국이 더이상의 위안화 절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내 글로벌 증시를 안심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중국이 언제든 환율을 통해 글로벌 증시를 흔들 수 있다는 뜻이다. 미중 무역분쟁이 전면전으로 치닫는다고 해도, 중국이 환율을 1달러당 7.4위안 수준으로 위안화 가치를 절하하면 현재 부여된 관세의 충격을 대부분 흡수할 수 있다. 나아가 1달러당 7.8위안선까지 용납하면 미국이 중국 수입 전체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중국 수출엔 큰 영향이 없어진다.

시장 일각에서는 중국이 이번 사례처럼 무역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환율을 전략적으로 사용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중국의 '포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애지중지하는 미국 증시 주요지수를 파랗게 물들였다. 미국이 14일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도 협상의 주도권이 서서히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는 증거라고 해석하는 목소리가 많다. 중국이 환율의 '파괴력'을 확인한 이상, 고비 때마다 조커로 활용해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미국과의 관계를 극단적으로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지난 5월 '통화저평가로 인한 보조금도 상계관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방침을 내놨다. 중국이 환율 조작으로 관세를 무력화시킨다면 추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시사한 것이다. 지난 9일(현지시간)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정책국장이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낮추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사태가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더라도, 전문가들은 중국이 위안화 환율 일일변동폭 확대 등을 통해 이를 지렛대삼으려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내다보고 있다. 현재 역내 달러-위안화 환율은 바스켓제로, 하루에 최대 2.0%까지만 상승 또는 하락할 수 있다. 이 폭을 늘리면 그만큼 하루 환율 변화폭이 커지는 것이다.

문제는 최근 원화가 위안화와 연동되고 있다는 것이다. 7월 이후 원화와 위안화는 90% 이상의 동조율로 같은 방향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1면 그래프

KB증권에 따르면 이는 중국이 여전히 한국 전체 무역의 23.6%를 차지하는 핵심 무역국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글로벌 주식시장에서 한국과 중국은 같은 신흥국으로 묶여 있다. 주요 신흥국 지수 내 중국 비중은 31.77%, 한국 비중은 11.90%다. 이런 유사성 때문에 위안화 자산에 투자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원화로 헤지(위험회피)를 하는 경우도 많다.

지금 상태로라면 위안화 환율이 달러 대비 절하된다면(달러-위안 환율 상승) 국내 원화도 절하(달러-원 환율 상승) 된다. 1180원선에서 움직이던 달러원 환율이 '포치'와 함께 1200원선을 뚫고 올라간 게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이 달러-위안 환율을 7.4위안까지 절하한다면 달러원 환율은 1250원을 넘어 1300원에 육박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국내에 들어와있는 외국계 투자자들에 흉보(凶報)와 다름없다. 자산을 다시 달러로 환전할 때 그만큼 손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8월 들어 12일까지 코스피시장에서 1조5000억여원을 순매도했다. 7월 한 달간 기록한 순매수 2조원의 대부분을 단 9거래일만에 털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국내 증시가 이런 환율 리스크를 감안하고서라도 계속 투자를 할 만한 시장이냐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는 게 증권가 관계자들의 우려다.

최근 5년간 국내 증시는 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 10% 이상에, 2015년 2분기 이후 코스피 상장사의 전년동기 대비 영업이익 증가율 평균도 20% 이상이었다. 2017년 2분기엔 40%에 육박하기도 했다. 수익성이 있는 성장 시장이었던 셈이다.

지금은 다르다. 지난 상반기에 이어 3분기에도 지난해 3분기 대비 두 자릿 수의 상장사 영업이익률 하락이 사실상 확정된 상황이다. 글로벌 주요 투자은행들은 국내 올해 경제성장률을 잇따라 1%대로 하향 조정했다. 여기에 환율 리스크, 장기전이 예고되고 있는 한일 갈등까지 겹치면 투자를 지속할 이유가 사라진다.

시장의 시선은 9월초로 이뤄질 미중 무역협상으로 향한다. 미국과 중국, 양쪽 모두 상대방을 결정적으로 굴복시킬 카드가 없다는 점에서 결국 장기전이 예상된다는 평가다. 변동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관세 추가 부가 및 환율조작국 지정'에서 '관세 연기 및 협상 착수'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주에 불과했다. 추세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불평이 나오는 배경이다. 9월 협상이 또 결렬된다면 8월보다 더 심한 추가 충격이 올 수도 있다는 우려섞인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한 증권사 투자전략 담당 연구원은 "우리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대외 변수로 시장이 충격을 또 다시 받을 우려가 있다는 게 문제"라며 "홍콩 시위 강경진압, 영국의 하드브렉시트 우려, 아르헨티나의 정쟁 불안 등 미중 무역분쟁과 한일 갈등을 제외해도 곳곳에 시장에 불안감을 심어주는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8월 21일 07:0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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