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절없는 코스닥, 연기금 외면ㆍ기대감 증발...장기 침체 '전조'
이재영 기자 | leejy@chosun.com | 2019.08.30 07:00
Edited by 현상경 부장 | hs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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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코스닥 장기 침체 '신호'
상승 기대감 증발...해외 증시로 자금 이동
"혁신적 정책 없으면 혁신기업 자금 공급 어려워"

코스닥 신용융자 잔고 추이

8월 들어 코스닥 지수가 1% 이상 급락한 날은 17거래일 중 5일이나 됐다. 이 중 3일은 3% 이상 폭락했다. 한 달간 코스피 시장에서는 2조원 이상을 순매수한 연기금은 같은 기간 코스닥 시장에선 250억원을 순매수하는 데 그쳤다. 코스닥 신용융자잔고는 코스닥 붐(boom)이 일어나기 직전인 2017년 3분기 수준으로 돌아갔다.

최근 코스닥 시장을 둘러싼 '신호'들이 경고음을 내고 있다. 단순한 단기 수급불균형을 떠나 '거품 붕괴 후 장기 침체'로 접어드는 초입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해외증시 투자가 대중화하며 이제 코스닥은 코스피의 보완재 역할조차 못하게 될 거라는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이는 곧 코스닥을 통한 '혁신기업 자본공급' 정책의 붕괴를 뜻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27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조 단위 자금을 직접 운용하는 한 연기금은 최근 거의 대부분의 코스닥 투자 포지션을 정리했다. 2018년 코스닥 활성화 정책이 나온 이후 내부 투자 규정을 고쳐서까지 적극적으로 투자를 집행했지만, 불과 1년만에 원점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연기금 운용 관계자는 "코스닥은 태생적으로 위험회피(헷지)가 쉽지 않고 유동성이 적어 투자가 쉽지 않은 투자처"라며 "정부의 정책적 부양 의지도 꺾인 것 같은데다, 중소형주의 성장성이 대형주보다 더 크게 훼손되는 상황이 돼 투자 가치가 크게 줄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기금은 하반기 들어 급격히 코스닥 순매수 규모를 줄이고 있다. 연기금의 코스닥 순매수는 6월 1921억원으로 고점을 찍은 뒤 7월 516억원, 8월엔 26일까지 250억원으로 감소했다. 8월 들어 연기금이 코스피 시장에선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2조2000억여원어치를 순매수했음을 감안하면, 코스닥을 바라보는 연기금의 시선이 3분기 들어 크게 바뀐 것으로 풀이된다.

8월 국내 증시 순매수 현황

주로 개인투자자들이 활용하는 신용융자잔고도 급감했다. 지난 23일 기준 코스닥 신용융자잔고는 4조4450억원으로 2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2018년 1월 한때 6조5000억원에 육박했던 것을 감안하면 30% 넘게 줄어든 것이다.

이는 2017년 코스닥 급등 이전 수준으로, 사실상 코스닥의 급상승에 베팅하는 개인 자금이 거의 다 빠져나갔음을 의미한다는 분석이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이제 개인투자자들은 급락장에 집어던질 물량조차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며 "코스닥 시장에서 개인이 중요한 수급 주체였음을 감안하면 코스닥의 수급 불균형은 더욱 심해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성장주가 중추인 코스닥 시장에서 비교적 안전한 자산인 스팩(기업인수목적회사;SPAC)로 돈이 몰리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8월 기업공개(IPO) 청약을 진행한 나노브릭은 일반 청약경쟁률이 2.58대 1, 네오크레마는 1.59대 1에 그쳤다. 비슷한 시기 공모를 진행한 미래에셋대우스팩 3호는 일반 청약경쟁률이 508대 1, 상상인이안스팩2호는 265대 1에 달했다. 게다가 7월 이후 일반 기업은 5곳이나 상장을 철회하고 연기했다.

코스닥 등 국내 증시를 빠져나간 자금은 해외 증시로 향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연초 이후 26일까지 외화증권예탁결제 매수 총액은 139억달러(약 17조원)에 달했다. 2017년의 연간 총액 120억달러를 훌쩍 넘어섰고, 연말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 총액 170억달러 역시 가볍게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중소형주조차 시가총액이 조원 단위고 성장성과 안정성이 국내 중소기업과 비교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며 "이전엔 높은 수수료가 부담이었지만 증권사들이 경쟁적으로 해외 주식 세일즈에 나서며 지금은 진입장벽이 크게 낮아진 상태"라고 말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내 증시, 특히 '2부 시장' 취급을 받는 코스닥 시장에 들어오는 자금을 줄일 것이란 게 증시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선진 증시 등 대체 투자처가 급부상한 가운데, 수익성ㆍ성장성ㆍ안정성은 낮고 변동성만 큰 코스닥 시장에 굳이 자금을 넣을 이유는 없는 까닭이다.

결국 코스닥 시장은 산업 구조가 바뀌고 바이오ㆍ헬스케어 같은 새로운 신성장 주도업종이 등장하기 전까지 또 다시 긴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2007년 말 800선이 무너진 코스닥지수가 다시 800을 상향 돌파하기까진 정확히 10년이 필요했다.

코스닥 장기 침체가 현실화하면 시장을 발판삼아 혁신ㆍ벤처기업 자금 공급을 늘리려던 정부의 계획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미 증권가 일각에서는 증시를 통해 일반 국민들에게 벤처투자 리스크를 전가하는 것이 과연 옳으냐는 논쟁에 불이 붙은 상황이다. 잇딴 신약 임상 실패, 코오롱티슈진 상장폐지 결정 등 악재가 겹치며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까닭이다. 여기에 시장 자체의 투자 매력까지 떨어지며 투자자들이 아예 리스크가 큰 투자는 거들떠도 보지 않게 됐다는 평가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스닥 시장으로 신규 자금이 끊임없이 공급되고 이것이 혁신기업에 돌아가게 하려면 시장 자체에 투자 매력이 있어야 한다"며 "정부가 거래세 면제, 배당소득세 대폭 감면 등의 '혁신적인 정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큰 흐름을 되돌리기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8월 27일 14:15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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