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못 넘은 방송통신위원회, 입맛만 다신 통신사들
입력 2019.09.10 07:00|수정 2019.09.09 18:08
    페이스북 접속경로 변경에 방통위 시정명령
    페이스북은 반발해 소 제기했고 최근 승소
    “애초에 기준 없어 방통위 승소 어려워” 평가도
    추가 비용 청구 기대했던 통신사들은 아쉬움
    • 방송통신위원회와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 및 제재에 대한 힘겨루기는 페이스북의 승리로 끝났다. 접속경로 변경이 부당하다는 결론이 났다면 페이스북 서비스 관련 망이용료를 추가로 얻고, 다른 글로벌 콘텐츠 제공사업자(CP)에도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던 통신사들은 입맛만 다신 꼴이 됐다.

      페이스북의 국내 서비스는 주로 자사 캐시서버가 있는 KT의 인터넷 데이터 센터(IDC)의 망을 통해 이뤄져 왔다. 이 외에 SK브로드밴드(SKB)의 국제망도 활용됐다. 페이스북은 2015년 SKB에 KT와 동일한 방식으로 IDC에 자사 서버를 설치하겠다고 제안했다. 네트워크를 무료로 이용하고 싶어했지만 SKB가 응하지 않으면서 협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페이스북은 2016년 12월 KT를 통해 SK텔레콤 이용자에 전달하던 트래픽을 SKB 국제망을 통해 트래픽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라우팅(데이터를 목적지별로 분류)을 변경했다. 이듬해는 LG유플러스 무선가입자에 대해서도 라우팅을 바꿨다. 데이터 병목 현상으로 국내 페이스북 서비스의 질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 방통위는 2017년 조사에 들어갔고 페이스북의 라우팅 변경이 ‘정당한 사유 없이 전기통신서비스의 이용을 제한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작년 3월 페이스북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3억9600만원을 부과하기로 의결했다. 페이스북은 불복해 행정처분 취소 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22일 판결을 통해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줬다.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 행위가 서비스 이용을 지연하거나 불편을 초래했지만 ‘이용의 제한’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봤다. 인터넷접속서비스 품질은 CP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며, 품질 제한에 따른 ‘현저한 피해’를 따질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는 이에 대해 지난달 30일 정책현안보고서를 내고 법원이 ‘이용 제한’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국내 인터넷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해외의 낮은 기준을 적용해 접속지연 피해가 현저하지 않다고 판결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방통위의 역량 부족을 꼬집는 의견도 있다. 불편과 피해에 대한 증명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애초에 그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으니 증명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란 지적이다. ‘소송 전문’ 공정거래위원회와 달리 경험이 많지 않다보니 소송 전략을 짜기 쉽지 않았을 것이란 시선도 있었다.

      아쉬운 쪽은 통신사들이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접속경로 변경과 고객 피해에 대한 판단이지만 비용과 이익의 문제와도 연계되는 부분이 있었다.

      과거엔 한 통신사 가입자가 다른 통신사 망을 이용해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해도 두 통신사간의 비용 정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2016년부터 시행된 전기통신설비의 상호접속기준에 따라 발신 통신사 쪽에서 일정한 사용료를 내게 됐다.

      기존 페이스북 서비스 체계에 적용해보면 LG유플러스 등에 데이터를 발신하는 위치에 있는 KT가 접속료를 추가로 내야 한다. LG유플러스 등은 추가로 접속료를 받고, KT는 이 비용을 페이스북에 청구하면 된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KT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접속료 계약을 맺지 않은 통신사의 라우팅을 바꿨다.

      만일 방통위가 승소했다면 페이스북 접속경로 변경의 당위성은 옅어진다. 통신사들이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을 페이스북, 나아가 유튜브 등 다른 글로벌 CP에까지 지불하라고 압박할 근거가 될 수도 있었다. 방통위의 위세 때문에 큰 목소리를 내진 않지만 '방통위 덕에 떡 얻어먹을 일은 사라졌다'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분위기가 있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고객 불편에 대한 기준이 없다보니 방통위가 이기기 어려웠고, 나중에 기준이 마련되더라도 다음 심급에서의 결과 역시 비슷하지 않겠느냐”며 “앞으로 CP들이 이용료를 조정해줄 수 없다고 버티는 사례가 많아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