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규모 투자 밝혔던 포스코, 1년만에 축소로 선회
입력 2019.09.20 07:00|수정 2019.09.20 11:22
    5년간 45조 투자 계획...올해만 6.1조 목표
    상반기까지 실제 집행된 투자금 불과 18%
    애당초 무리한 투자였다는 평가도
    •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지난해 취임하면서 역대 최대 규모의 고용·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포스코 투자 ‘트라우마’가 있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계획에 한참 못 미치는 투자금이 집행됐다. 포스코가 처음 선언했던 투자 확대 노선과 달리 보수적인 투자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포스코가 내세운 투자 계획은 2023년까지 5년간 45조원을 투자하고 정규직 2만명을 신규채용한다는 목표였다. 당시 포스코는 45조원 중 26조원을 주력 사업인 철강 부문에 사용하고 2차전지 소재에 10조원 투자, 나머지 9조원은 인프라 부문에 투입할 방침을 밝혔다.

      당시 여의도에서는 포스코가 투자 계획을 발표하자 환영의 목소리보다는 무모한 투자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가 컸다. 해외 투자자들도 포스코 IR팀에 수차례 문의를 했다고 전해진다.

      정준양 전 회장 시절 포스코는 4년간 35조4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으나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최고 신용등급 지위도 내려놔야 했다. 당시 대규모 M&A에 투자금이 집행됐고 포스코의 계열사는 36개에서 71개로 급증했다. 현재 포스코는 부채비율을 60%대까지 떨어뜨렸지만 투자실패로 인해 지난해에만 1조5376억원의 손상차손을 기록했다. 이에 정 전 회장 때보다 10조원가량이 늘어난 투자 계획에 투자자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세계적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도 우려를 표시했다. 골드만삭스는 “포스코가 장기적으로 설비투자(CAPEX)를 계속해서 늘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라면서 “포스코가 설비 투자를 대폭 늘렸을 당시 몇 년간 자산손상차손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이어 포스코의 최근 비철강 투자 집중으로 역사가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포스코가 구체적으로 설명한 투자계획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포스코는 26조원으로 ▲광양제철소 3고로 스마트화 ▲기가스틸 전용 생산설비 증설 ▲제철소 에너지 효율성 극대화를 위한 부생가스 발전설비 신설 계획을 설명했다. 그러나 금융업계 관계자들은 포스코가 발표한 계획을 모두 실행하더라도 26조원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고 계산했다. 26조원이면 고로를 무려 3개나 늘릴 수 있을 정도로 큰 금액이라는 설명이다.

      포스코를 담당하는 애널리스트는 “신사업 투자는 모르겠지만 철강업은 이미 공급과잉인 상태이기 때문에 설비를 늘리는 투자는 오히려 상황을 심화시킨다”라며 “철강이 반도체만큼 첨단 기술을 요구하는 산업이 아니기 때문에 천문학적 비용을 기술개발에 들일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의 반발이 이어지자 포스코 관계자는 애널리스트들에게 추가적인 설명을 이어갔다. 45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 중 일부가 수정되기도 했고 고용과 투자를 늘리라는 정부 입김도 작용했던 점을 전달했다고 알려졌다.

      또한 이사회에서 투자 검토를 꼼꼼히 진행해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할 것이란 설명도 있었다. 포스코 사외이사들도 보수적인 입장이라는 평가다. 안철수, 박원순 등 유력 정치인들이 청문회 때 과거 정준양 전 회장 시절 무리한 M&A에 동의했는지 공격받은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규모 투자 결정을 쉽게 내리기 어려워졌다는 설명이다.

    • 실제로 최 회장 취임 이후 투자비는 처음 목표했던 것과 비교하면 집행된 비중이 낮았다. 첫 해인 지난해 포스코 투자액은 2조7000억원이었다. 이전 회장들의 투자 확대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로 구조조정에 집중했던 권오준 전 회장 시절보다 소폭 증가한 수치였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크게 늘어난, 6조1000억원 규모의 투자금이 집행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상반기까지 집행된 투자금은 1조1000억원에 그쳤다. 올해 계획된 투자금의 18%만이 실제로 집행됐다. 투자금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7500억원은 철강 부문에 들어갔다. 포항제철소 1·2 열연·냉연공장과 광양제철소 4열연·냉연공장 등 설비가 노후화됐기 때문이다.

      포스코가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2차전지 부문에는 1140억원이 들어갔다. 투자금은 주로 양극재, 음극재 설비를 증설하는 데 사용됐다. 실질적으로 남은 기간 동안 계획된 투자금을 크게 늘리기 어려워 투자 규모는 예상치보다 크게 밑돌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는 2분기 실적 설명회에서 “상반기 투자금 집행이 저조했던 이유는 리스크 관리가 엄격해졌기 때문이다”라며 “하반기에 3조원 규모의 투자금을 풀 것이다”라고 밝혔다.

      투자자들은 일단 안도하고 있다. 철강업계의 업황이 꺾이면서 포스코가 계획대로 투자를 했으면 현금흐름이 크게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제대로 실행하지도 않은 채, 축소 기조로 돌아가는 오락가락하는 모습에는 불만이 이어진다.

      애당초 계획의 진정성이 없었던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포스코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경영 전략을 급선회해왔다. 이번에는 투자와 고용을 늘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기조에 맞춰 일단 크게 목표를 내세웠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집행이 될 수도, 안 될수도 있는 예비비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다른 철강 담당 애널리스트는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 정도 남은 상태로 포스코의 경영 전략이 금방 달라질 수 있다”라며 “장기 전망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