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깨진 딜만 수십조원 …한숨소리 커지는 M&A 시장
입력 2019.09.25 07:00|수정 2019.09.24 17:37
    연초부터 홈플러스리츠 상장, 넥슨·코웨이 매각 무산
    하반기 M&A 시장 냉각
    대기업 사라지고 사모펀드 몸 사려
    불확실성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전망도 부정적
    • 올해 M&A 시장에선 성사가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던 딜들이 줄줄이 무산 되거나 성사되더라도 다시금 시장에 나오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대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 M&A 시장의 중요한 축으로 성장한 사모펀드 영향으로 매물이 나오는 족족 팔리던 분위기는 사그라 들고 있다. M&A 시장에서 대기업은 자취를 감췄고, 사모펀드마저 몸을 사리고 있다.

      연초부터 1조5000억원 규모의 홈플러스 리츠 상장이 무산됐다. 이로써 지난 2015년 MBK파트너스가 7조6000억원에 인수한 홈플러스의 엑시트(exit) 플랜이 꼬이게 됐다. 대형마트 산업 성장성에 대한 불신과 해외투자자의 부정적인 반응, 그리고 대주주가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이다 보니 결국 회사를 팔아야 한다는 점 등이 원인으로 거론됐다.

      매각대금만 10조원에 이를 것이라 예상됐던 넥슨 매각은 지난 6월 무산됐다. 성사됐다면 국내 최대 규모의 M&A였지만 김정주 넥슨 회장은 매각 절차를 보류하기로 결심했다. 김정주 회장의 '목표금액'과 후보들이 제시한 금액의 간극이 컸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같은 달 시장에는 인수 3객월만에 2조원 규모의 웅진코웨이가 다시금 매물로 출회했다. 인수과정에서 웅진그룹과 한국투자증권이 무리해서 인수한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이렇게 빠른 시간내에 매물로 나올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M&A업계에선 재매각 보다는 사실상 매각 실패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다.

      게다가 지금 진행되는 매각 역시 성사여부에 대한 의구심이 상당히 커졌다. 결국 OK저축은행으로 그룹 전체가 넘어갈 우려까지 제기된다.

      이외에도 수면아래서 진행되다가 깨진 거래도 적지 않다. 복합적인 이유들이 있지만 매도자와 인수자간의 가격에 대한 인식차가 커지고 있다.

      현재 상황은 더욱 안 좋다.

      하반기 들어서 나온 대형 딜이라곤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유일하다. IB, 회계법인, 법무법인들 사이에선 ‘손가락을 빤다’라는 한숨이 커지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자문사를 뽑고 있는 대형 딜은 현재로선 아시아나항공 매각 정도다”라며 “M&A만 해서는 버티기 힘든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이미 상당히 프로세스가 진행된 딜도 클로징을 장담하기 힘들다. LG그룹이 진행하는 LG CNS, LG 유플러스 PG사업부, MBK파트너스의 두산공작기계, 웅진 그룹의 코웨이 매각 등 힘들게 딜이 진해되고 있다. 인수 후보들 명단만 보더라도 글로벌 사모펀드 몇 곳을 빼면 사실상 인수후보로 거론할 만한 곳이 없는 게 현재 상황이다.

      매각주관을 맡고 있는 IB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인수후보가 많아야 두 곳인 상황에서 이들을 어떻게 끝까지 붙잡아 놓느냐가 관건이다. 이전 같았으면 바이어(buyer)들에게 더 높은 가격을 쓰라고 종용하겠지만, 지금 분위기는 오히려 셀러(seller)에게 가격을 더 낮출 의향이 없는지를 물어봐야 하는 현실이다.

      또한 인수후보들 대다수가 사모펀드들이다 보니 섣불리 가격 흥정에 나서기도 쉽지 않다. 사고 파는게 일인 사모펀드들에게 어줍잖은 투자설명서를 들이밀며 높은 가격을 요구하다 오히려 불신만 키우기 쉽상이다.

      한 외국계 IB 관계자는 “M&A 시장의 분위기는 차가워졌지만 여전히 셀러의 콧대가 높다”라며 “확실한 전략적투자자(SI)가 있다면 모를까 사모펀드간 인수 경쟁에선 가격을 올리기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작년과 달리 증권사의 투자확약서(LOC) 받기가 힘들어진 점도 딜에 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웅진그룹의 코웨이 인수 당시 한국투자증권은 매각대금인 2조원의 80%에 달하는 1조6000억원의 LOC를 끊어준 바 있다. 하지만 결국 투자자를 모으지 못하면서 이를 한국투자증권이 떠안았다. 사실상 인수금융팀이 실사(언더라이팅)에 실패한 탓이 크다. 현재 이들은 사직서를 내놓고 웅진코웨이 매각주관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남의 회사도 팔아본 경험이 없는 팀이 본인 회사가 휘청거릴 수 있는 딜을 맡고 있는 셈이다.

      한 사모펀드 관계자는 “매각대금이 올라간 이유 중 하나가 증권사들이 과감하게 LOC를 끊어준 탓도 있다”라며 “미국만 하더라도 금융기관이 지분인수에 있어서 LOC를 끊어주는 일은 매우 드문 정도로 리스크가 큰 업무다”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대외환경의 불확실성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갈등, 대일문제, 브렉시트 등 대외적인 변수에 52시간 적용 등 국내 변수 등이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M&A업계에선 시장이 안정되고 다시금 대기업들이 M&A 시장에 모습을 나타나길 바란다. 하만 인수 이후 조용한 삼성그룹이 내년에는 다시금 M&A시장에 나타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도 크다. 하지만 현재의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M&A 시장은 사모펀드들끼리 서로 사고파는 세컨더리 마켓 중심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다른 외국계 IB 관계자는 “지금 같이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 M&A 하기 제일 어렵다”라며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인수에 나서야만 그제서야 M&A 시장의 활력이 살아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