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 임기만료 눈앞인데…거기서 거기인 금융지주사 사외이사 풀(POOL)
입력 2019.09.26 07:00|수정 2019.09.27 09:42
    지배구조 개정안 통과 불투명
    10년간 10명 중 4명이 管 출신
    “애초 풀 작아 큰 변화 없을 것”
    인사에 당국과 갈등 재현 우려
    •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 회장들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올 연말, 내년 초에는 차기 회장 선임을 위한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연임이냐, 새바람이냐 벌써부터 예측과 하마평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정부와 금융지주사 간의 갈등이 재현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회장 선출 과정에서 사외이사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그간 금융지주사 사외이사진의 경영진 ‘거수기’ 논란은 거듭돼 왔다. 정부는 사외이사 제도 개선을 적극 추진했지만 국회 마비로 답보 상태다. 금융지주사들은 사외이사 수를 확대하는 자구안을 내놨지만 큰 의미는 없다. 사외이사 풀(Pool) 자체가 작아 정부나 회사가 노력해도 CEO나 경영진 측근이 선임되는 경우를 원척적으로 차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인베스트조선은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신한·KB··하나·우리금융그룹 등 4대 금융지주사와 주요 계열사들의 사외이사진을 분석했다. 그 결과 사외이사 자리 412개 중 162개(39%)가 국책은행, 금융공기업, 정부 및 금융당국, 법률기관 등 공직유관단체(이하 관)를 적어도 1회 이상 재직한 인사들로 채워졌다.

      세부 항목별로 살펴보면 정부부처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을 합산한 '정부 및 금융당국' 경력이 언급된 횟수는 총 101회를 기록했고, 한국은행과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등을 총합한 ‘국책은행’은 29회, 예금보험공사와 기술보증기금 등을 포함한 금융공기업은 27회였다. 법원과 검찰을 포함한 법률 유관기관 출신 빈도는 23회를 기록했다.

      사외이사들이 가장 많이 거친 기관은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었다. 기획재정부는 경제정책을 다뤄본 인사들이 금융이나 재정, 회계 등에서 전문성을 나타낼 수 있다는 점을, 한국은행은 금융사가 수익을 내는 데 필요한 중장기적인 시각을 제시하고 위험요소를 판단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다만 각 부처는 “철저히 개인 역량에 따라, 금융회사들이 필요에 따라 데려가는 것 뿐 부처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긋기는 했다.

    • 개별 지주사 별로 살펴보면 우리금융그룹에 관 출신 사외이사가 가장 많았다. 관을 거친 사외이사 자릿수 비중은 45%였다. KB금융그룹(44%), 하나금융그룹(41%) 신한금융그룹(28%)이 그 뒤를 이었다. 우리금융그룹은 금융공기업 출신 비중이 23%(9회)로 가장 높았고 그 중 예금보험공사 출신은 66%(6회)였다. 신한금융그룹은 국책은행 출신 비중이 25%(8회)로 가장 높았고 그 중 한국은행 출신은 75%(6회)이었다. 상대적으로 내부인사 등용이 두드러졌다.

      관료 출신의 사외이사들은 기업경영의 올바른 감시 역할 보다 재직 당시의 친분도를 활용해 각 기관의 연결다리 역할을 한다는 지적이 상당했다. 오너가 없는 금융지주사의 특성상, 연임을 노리는 회장과 행장들이 자신과 가까운 ‘권력형 사외이사’를 자리에 앉히고, 이들 역시 고액 연봉과 경력을 챙기며 연임을 도왔다는 비판이었다.

      2015년 하나금융지주 회장 선출이 대표적 사례다. 회장추천위원회(이하 회추위) 위원 6명 가운데 3명이 지주 계열사에서 과거 사외이사를 역임했다. 이들 3명은 회추위에 포함돼 김정태 회장 연임에 찬성표를 던졌다. 회추위 절반이 김 회장에 우호적인 상황에서 공정하게 차기 회장 선임 절차가 이뤄질 수 있겠냐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정부가 발 벗고 나섰다. 2016년부터 시행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 대표적이다. 당시 입법을 주도했던 금융위원회는 사외이사 추천을 사외이사 과반수와 외부 전문가에 의해 이뤄지도록 유도하고, 지주사 상근임직원의 자회사 사외이사 겸직 역시 금지시켰다.

      금융지주사도 자구안을 내놨다. 신한금융의 경우 ‘사외이사 주주추천공모제’를 활용해 주주가 표결뿐만 아닌 후보군 추천에서부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하나금융과 KB금융 등도 지배구조 건전성 강화 등을 기치로 사외이사 수를 늘리는 움직임에 동참했다.

      하지만 둘 다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금융회사 주요 임원 선임때 당사자는 참석을 금지하고 ▲사외이사 후보 추천 과정에서 대표이사의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며 ▲사외이사의 순차적 교체를 의무화하고 ▲퇴임 3년 이내의 관계회사 임원은 사외이사로 선임할 수 없도록 규정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올라왔지만 국회 파행 상태로 연내 통과가 불투명하다.

      당정은 사외이사가 대주주의 거수기 역할을 한다는 비판이 지적됨에 따라 ▲상장회사 사외이사를 6년 이상, 계열사 합산 9년 이상 재직하지 못하게 하고 ▲사외이사 결격기간도 2년에서 3년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금융지주사 내에서 5년 이상 사외이사를 역임하는 사람은 실상 거의 없다. 또 앞서 언급한 대로 '관' 출신을 중심으로 자회사 겸임 사례가 있긴 하지만 적법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순차적 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애초에 금융지주사 사외이사진 풀(Pool)이 작다는 데 있다. 금융산업이 규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관료직 출신의 사외이사 구성에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기가 무리라는 것이다.

      은행 관계자는 “비금융업에 비해 ‘관’과 밀접한 산업임을 감안하면 이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것도 아니다”라며 “해당 풀이 작다보니 사외이사 별로 큰 하자가 없으면 모두 최대 임기를 채우는 방향으로 가고 그렇지 않다면 재추천 공산이 크다”고 전했다. 다만 “금융회사가 가져야하는, 필요한 역량과 전문성이 있는데 앞으로 계속적인 성장을 위해서 개개인별로는 역량과 전문성을 가진 인사들인지는 검증해봐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사외이사 문제가 현 시점에서 다시 주목 받는 이유는 금융지주사 수장과 은행장들의 임기 만료 시점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신한·우리·농협금융지주 회장들의 임기가 내년 초에 끝나고 KB금융그룹의 경우 윤종규 회장을 제외한 은행장과 나머지 주요 계열사 대표의 임기가 하반기에 만료된다.

      시장에서 우려하는 것은 이 과정에서 정치권, 더 좁혀 말하면 정부와 금융당국의 개입이다. 정부와 여당은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해 공정경제 기치를 더 높게 들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럴 경우 과거와 달리 정부와 금융지주사 간의 갈등이 표면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권의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에도 포함돼있는 만큼, 향후에도 지속적인 보완이 있을 예정”이라며 “앞서 2016년의 지배구조법 시행 이후 시장의 여러 비판을 수용해 개정안을 만들어낸 만큼 국회 통과에 힘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당정 일각에선 은행 노동조합 등이 추천한 사외이사를 경영에 참여시켜 경영진을 감시·견제하는 노동이사제를 대안으로 거론하고 있지만 업계 다수는 성급하다는 의견이 나올 만큼 상반된 입장이 공존한다”며 “아직까진 사외이사진이 현 경영진과 나쁜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당정의 압박이 거세질수록 지주사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갈등의 결과는 결국 투자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