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일본처럼? 저금리에 보험사 '휘청'..."3년은 답 없다"
이재영 기자 | leejy@chosun.com | 2019.09.26 07:00
Edited by 현상경 부장 | hs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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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금리 넘어 '마이너스 금리' 엄습
생보사들 주가 폭락·보험 수입 급감
20년 전 일본 생보사, 역마진에 몰락
국내, 한화·교보 등 대형사까지 '휘청'

금융시스템 불신...사회 혼란 우려
계약전환 허용 등 특단 대책 목소리

2019.09.24_20년 전 일본처럼 저금리에 보험사 '휘청'...3년은 답 없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한국에서도 재연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장기침체로 이어질 도미노의 첫 조각 중 하나로 '생명보험사의 위기'가 꼽힌다.

일본의 경기침체는 1985년 미국과의 '플라자합의'에서 비롯됐고 수치상으로는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됐지만, 본격적인 고통은 1990년대 후반 생보사 7곳이 잇따라 쓰러지며 시작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금융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미래에 대한 불신이 시작되며 여러 사회문제가 파생됐다는 것이다. 일례로 일본 생보사의 줄도산은 고성장기 직장생활을 한 현 노년층이 궁핍한 삶을 살고 있는 배경 중 하나로 지목된다.

생명보험업은 지금의 현금흐름을 쪼개 미래에 대비하는 대표적인 신뢰산업으로, 사회 시스템의 일각을 구성한다. 이 사회 시스템이 무너진다는 건 단순한 '한 회사의 파산'과는 맥락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이런 면에서 최근 국내 생명보험사를 둘러싼 기류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는 점은 '위험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올 하반기 들어 주요 생보사들의 주가는 폭락했고, 수입보험료는 본격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초저금리를 넘어 '마이너스 금리' 시대가 다가오며 이미 역마진에 신음하고 있는 생보사들이 살 길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부정적인 전망이 힘을 받고 있다.

주로 자산규모 10위권의 중소형 생보사가 무너진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상위권 대형사들도 휘청이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이 더 클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올 상반기 국내 생보사 전체 당기순이익은 2조1280억여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대비 1조원 이상 줄었다. 보험영업이익이 11조8260억여원 적자로 같은 기간 4500억원 더 악화했다. 특히 보험손익이 2조2390억여원 손실로 적자전환한 점이 뼈아팠다. 지급 보험금이 수입 보험료보다 훨씬 커지고 있다는 말이다.

반면 자산을 운용해 얻는 투자영업이익은 제자리 걸음을 했고, 변액보험 수수료로 대표되는 영업외이익도 크게 줄었다.

이는 국내 주요 상장 생보사 주가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업계 2위지만 업황 및 실적 악화가 두드러지는 한화생명 주가가 연초 대비 40% 이상 급락했고, 업계 1위 삼성생명은 물론, 신 국제회계기준(IFRS17) 이슈에도 별 타격이 없던 오렌지라이프마저 주가가 뚝 떨어졌다. 상반기 고점 대비 주가 낙폭은 너나 할 것 없이 20%를 훌쩍 넘는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생보사는 IFRS17의 도입 및 적용이 완료되는 2022년 이전엔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는 '주의보'가 내린 것으로 보면 된다"며 "배당수익이 기대되는 종목 일부만 단기적으로 담을만 하고 장기 보유는 추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상장 생보사 연초 이후 주가 수익률 추이

실적 악화의 주범으로는 역마진이 꼽힌다. 500조원이 넘는 보험사 부채의 평균 부담이율은 2017년 기준 4.4%에 달한다. 금리확정형 부채가 223조원이나 되고, 이들의 평균 부담이율은 6.1%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험사의 주력 자산운용처인 채권 금리가 뚝 떨어지니 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내 기준금리가 처음 1%대로 떨어져 '저금리 쇼크' 우려가 불거진 2012년에도 국고채 10년물 채권 수익률은 2.9% 안팎이었다. 지금은 1.39%다. 신규 수익원 발굴을 위해 2015년 이후 적극적으로 늘려온 해외 선진국 채권은 더 답답한 상황이다. 유럽 주요국 채권은 줄줄히 마이너스를 향해 가고 있고, 미국 역시 마이너스 금리 시대로 진입할 거라는 전망이 팽배하다.

저금리로 인해 생보업계 1위 삼성생명의 이원차마진율(스프레드)는 극적으로 악화했다. 2010년 상장 당시 -17bp(0.17%)에 불과하던 이원차마진율은 올 상반기 말 -95bp로 확대됐고, 내년 말에는 -101bp에 달할 전망이다.

지난해 말 주요 증권사와 금융연구기관들이 보험업황의 호전을 전망한 건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추이에 힘입어 국내 기준금리 추가 인상, 시장금리 상승 등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한국은행은 지난 7월 기준금리를 0.25% 인하했고, 10월 추가 인하는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전인미답'의 기준금리 1.00%까지는 불과 한 발자국만 남았을 뿐이다.

한 증권사 보험 담당 연구원은 "금리 하락과 초저금리 고착화는 보험사에겐 장점이 하나도 없는 비상상황"이라며 "역마진도 역마진이지만, 당장 금리 하락에 의한 듀레이션 갭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안 그래도 금리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초장기채 매입을 더 늘려야 해 운용수익률이 추가로 악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 하락에 따른 책임준비금과 변액보험 보증준비금 추가 적립은 당장 연말 이익을 갉아먹게 된다. 공시이율 하락과 자산운용의 어려움으로인해 저축성보험과 변액보험은 판매가 더 어려워질 것이란 분석이다.

생명보험사 일본 비교

시장금리 급락과 역마진이 보험사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는 20년 전 일본이 선례를 보여준 바 있다. 일본 생보사들 역시 1980년대 거품경제 시절 확정 고금리 상품을 경쟁적으로 판매했다.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시장 수익률이 급락하고 금리가 뚝 떨어지자 역마진 부담으로 하나 둘 무너지기 시작했다. 1999년 이후 2년간 7곳의 생보사가 차례로 문을 닫았다.

당시 파산한 일본 생보사들의 자산운용 내역을 들여다보면, 고마진 확보를 위해 대출 및 유가증권 투자를 크게 늘린 것이 눈에 띈다. 당시 일본 생보사들이 떠안고있던 확정 고금리 상품의 평균 부담이율은 6%로 지금의 국내 생보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94년 1.75%였던 일본 기준금리는 1995년 1%로 내려왔고, 1999년 0.04%로 인하되며 사실상 '제로'가 됐다. 가까스로 버티던 생보사들이 무너지기 시작한건 제로금리가 시작된 직후였다. 파산한 보험사들은 매각되거나 청산 후 보험 계약만 다른 보험사로 인계됐다. 이 과정에서 최대 15%의 보험료가 삭감됐으며, 보장 금리도 대부분 1%대로 갱신됐다.

이 사태는 일본 금융소비자들이 시스템을 불신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이후 일본 보험산업은 급속도로 '대형 금융그룹' 체제에 편입됐다. 4대 은행그룹과 2대 보험그룹이 생명보험은 물론 손해보험시장의 90%를 과점하는 체제가 만들어졌다.

이는 사회 혼란으로도 번졌다. 당시 연금보험계약의 30% 이상이 조정되며 상당수 수급자가 빈곤에 내몰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2017년 기준 19.4%로 경제협력기구(OECD) 평균 12.4%를 크게 상회한다. 절도 등 경범죄 3건 중 1건을 60세 이상 노인이 저지르고 있으며, 경범죄를 저지른 노인의 40% 이상이 재범을 한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당시 무너진 일본 생보사는 대부분 자산 기준 10~20위권의 중소형사였다. 지금 국내 시장에서는 상위권의 한화생명·교보생명·동양생명은 물론, 1위인 삼성생명까지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점에서 더 큰 혼란이 도래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올해 상반기 생보사 순이익 감소폭 1조200억여원 중 대부분인 8300억여원이 삼성생명·한화생명·교보생명 상위 3사에서 줄어든 이익이었다.

물론 국내 생보사들은 2000년대 초 일본 생보사들의 몰락을 지켜보며 금리연동형 상품의 비중을 크게 높였다. 이어 2012년 처음 기준금리 1% 시대가 도래하자 보험성 상품 판매를 크게 줄이며 자산 듀레이션 관리에 나서는 등 '예방접종'을 맞았다.

그러나 확정 고금리 상품 부채 부담이 여전한 상황에서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2010년대 초반은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4% 안팎에 달하던 '회복기'였지만, 지금은 연 2% 성장조차 힘겨운 '리플레이션'(경기침체)을 눈 앞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욱 크다는 평가다.

보험업계 일각에서는 조심스럽게 '계약전환 허용' 등 특단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행 국내 보험업법에서는 보험사의 파산이나 매각 때만 예정이율 변경 등의 계약 전환을 허용하고 있다.

그 외에 예정이율을 낮추려면 가입자가 예전에 가입한 상품을 청산하고 새 상품에 가입하는 방법 뿐이다. 실제로 2010년대 들어 일부 보험사가 설계사를 통해 가입자를 설득해 기존 계약을 청산하고, 새로운 계약을 권유해 역마진을 줄이는 영업에 나서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현재 보유 계약의 예정이율 인하를 위한 계약 전환을 허용하고 있다. 보험사들은 계약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보장성 기능이나 종신 기능을 강화해 전환을 유도한다. 일시납 양로보험을 보장성 종신보험으로 바꾸는 등의 방식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2008년 말 파산한 일본 야마토보험의 경우 지급여력(RBC)비율과 비슷한 솔벤시마진율이 기준치 200%를 한참 상회하는 555%에 달했으나, 불과 6개월만에 50%로 급락했다"며 "지금 당장 주요 보험사 RBC비율이 건전한 편이라고 손을 놓을 게 아니라,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라도 역마진 해소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9월 24일 07:0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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