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TF 체제 2년 반…실속은 없고 명분만 남았다
입력 2019.09.26 07:00|수정 2019.09.27 09:43
    전자·제조·금융 등 3 TOP 체제
    사업 조율 효과?…전자는 어닝쇼크, 물산은 목표에 반토막
    막강한 인적구성…”시어머니만 늘었다” 평가도
    임시조직이지만 사실상 상설기구 지적
    “TF 실적은 없지만, 오너 대변 조직도 못돼”
    • 삼성그룹이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계열사 태스크포스(TF) 체제를 운영한지 3년이 다 되어간다. 끝나지 않은 오너의 수사, 반도체의 위기,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의 실적 부진 등 그룹이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TF의 역할론이 수면위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미래전략실을 해체하며 ‘비선 조직을 없앴다’는 ‘명분’을 얻었으나 실질적인 그룹에 대한 장악력은 오히려 더 약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컨트롤타워가 사라지면서, 각 사업 부문의 조율 권한은 사실상 없어졌고, 외부와의 소통도 일원화하지 못하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7년 2월, 삼성그룹은 ▲미전실 해체 ▲그룹 사장단 회의 폐지 ▲대관업무 조직 해체 등을 발표했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임직원들의 수사가 진행되던 시점에 이재용 부회장이 밝힌 내용이다. 삼성그룹은 미전실 해체 이후 ▲전자 계열사를 관할하는 사업지원TF ▲제조 부문을 관장하는 EPC경쟁력강화TF ▲금융사를 총괄하는 금융경쟁력제고TF 등 3곳의 TF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각 TF는 미전실이 수행하던 인사 및 대관과 같은 역할을 대거 축소하고, 각 계열사의 사업적인 부분만 조율하겠다는게 설립 목적이었다. 하지만 미전실 해체 이후 각 계열사로 전배됐던 미전실 임직원들이 TF로 다시 모여들면서 ‘명칭’만 사라진 것 뿐 실상은 미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삼성전자 사업지원TF는 현재 40여명의 인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중 14명이 상무급 이상 인사로 구성돼 있고, 대부분 미전실 출신이다. 이 부회장은 미전실 해체 이후 사임하며 회사를 떠났던 정현호 사장을 ‘CEO 보좌역’으로 다시 불러들였고, 이후 사업지원TF 사장으로 선임했다. 김명수 삼성물산 EPC경쟁력강화 TF장(사장), 박종문 삼성생명 금융경쟁력강화 TF장(전무) 모두 미전실 핵심 인사로 활약했던 인사들이다.

      TF의 화려한 인적 구성만 보더라도, 단순히 사업적인 부문에서만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삼성전자 관련 계열사의 주요 의사결정을 맡아오던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과 과거 미전실 핵심 인사로 손꼽히던 안중현 사업지원TF 부사장과 관련한 내부 의사결정 체계에서의 혼선도 끊임없이 거론된다. 사업지원TF가 TF란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지만, 사실상 계열사 업무 전반에 걸쳐 깊게 관여하고 있는게 정설로 여겨지다 보니 임직원들이 느끼는 혼선도 적지 않다. 이는 각 계열사별 이사회의 의사결정, 자율적인 경영활동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삼성그룹 한 임직원은 “미전실이 있을 때 만해도 미전실의 지시사항에 각 계열사가 조직적으로 움직였지만, TF체제가 운영되면서 각 조직별로 이중으로 보고해야 하는 부작용이 나타나는 등 오히려 시어머니만 늘어난 모양새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룹 각 계열사별로 나타나는 실적은 예년만 못하다.

      승승장구하던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반도체와 모바일 부문의 실적저하가 눈에 띄었다. 고동진 사장도 “올해 말이 되면 내년엔 위기란 말을 해야할 것 같다”며 불안감을 나타냈다. 활발했던 삼성그룹의 M&A는 수년 째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2020년에 매출 60조원이란 청사진을 그렸던, 삼성물산의 지난해 연결 매출액은 30조원으로 목표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끊임 없는 구조조정으로 임직원들의 수는 매 분기별로 줄어드는 추세로, 한때 1만명이 훌쩍넘던 임직원은 현재 8000명 수준에 불과하다. 제조 계열사의 또다른 핵심인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 또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하기 이르다.

      금융계열사의 상황도 그리 좋지 못하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보험업 업황속에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자회사인 카드와 증권 모두 끊임없는 매각설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수치상으로 나타난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실적을 볼 때 전례없는 위기의 상황인 것만은 분명하다”며 “지금의 상황이 단순히 미전실의 해체로 인해 나타난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비상 상황에서 그룹 경영을 이끌어갈 주체인 인물과 조직이 없다는 것은 문제다”고 했다.

      태스크포스, 즉 업무 또는 임무를 받아 해결하는 임시조직이지만 이미 하나의 거대 조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지적도 끊이질 않는다. 미전실 또한 각 계열사의 파견 임직원으로 구성된 비공식 조직이었으나, 그룹 내에서 사업, 인사를 막론하고 각 계열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명확하게 어떤 임무를 맡고 언제까지 유지를 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보니, 포스트 미전실로 여겨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삼성그룹의 수요 사장단 회의는 사라졌고, 주요 임원들이 그룹의 현안을 논의할 테이블은 공식적으로 마련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각 TF가 지배구조개편 및 지분 정리 등 계열사 간 얽힌 문제를 풀어내는데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대표적으로 삼성생명은 향후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상당수를 처분해야 하는데, 아직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방향성 조차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삼성전자의 사업지원TF로 대표되는 삼성그룹의 TF운영을 비춰볼 때, 과연 각 계열사 TF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도 있다.

      대법원은 이재용 부회장의 고등법원 판결에 대해 파기환송을 결정했다. 앞으로 수 개월, 길게는 수년 간 이 부회장에 대한 불확실성은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일본의 무역갈등, 반도체와 모바일 위기론의 확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혐의, LG전자와의 갈등 등과 같은 현안이 산적해 있다. 그룹 차원에선 오너 부재의 최악의 상황도 고려해야한다.

      미전실 해체 이후 이 부회장의 그룹 장악력은 예전과 같지 않다. 전자와 제조를 막론하고, 각 계열사들은 외부에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TF는 사업적인 성과를 만들어 내는데 실패했고, SK그룹의 수펙스협의회와 같은 최고 의사결정기구로서 입지도 굳히지 못했다. 안팎으론 혼선이 일지만, 애매한 조직으로 남아서 오너를 대신 할 공식 조직으로 대변되지도 않는다. 오너의 부재 상황에 대응하고, 미전실 해체의 정당성과 TF의 설립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TF의 명확한 비전과 방향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