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사람 안 앉힌다더니...금융권, 다시 '新 관치' 논란
이재영 기자 | leejy@chosun.com | 2019.09.27 07:00
Edited by 현상경 부장 | hs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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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1년간 주요 금융사 수장 임기 잇따라 만료
하마평 오르는 인사들 대부분 '정권과의 인연'
현 정부, 대놓고 인사 개입·관치 논란 부정했지만
결국 '내 사람 챙길 것'우려에 금융권 '공포'
왼쪽부터 이동걸 한국산업은행장, 전병조 전 KB증권 사장, 최희남 한국투자공사 사장

왼쪽부터 이동걸 한국산업은행장, 전병조 전 KB증권 사장, 최희남 한국투자공사 사장

국내 주요 금융사 수장들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심상치 않은 조짐이 일고 있다. 현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몇몇 인사들이 하마평에 오르내리며, 금융권에서 '정부발(發) 낙하산 인사'에 대한 공포가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는 출범 이후 인위적인 인사 개입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3연임을 결국 인정한 게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돌고 국정 수행 지지도가 점차 떨어지며 기류가 바뀌었다는 평가다. 대의명분 보다는 내 사람 챙기기가 중요해진 시국이라는 것이다.

현 시점을 기준으로 향후 근 1년 내에 3대 국책은행과 4대 금융지주 중 무려 6곳의 수장이 임기 만료를 맞이한다. 은성수 전 행장이 금융위원장으로 영전한 수출입은행장 자리는 비어있고, IBK기업은행 김도진 행장은 연임을 포기했다.

내년 3월 신한금융지주 조용병 회장과 우리금융지주 손태승 회장의 임기가 만료되고, 9월엔 이동걸 산업은행장, 11월엔 KB금융지주 윤종규 회장의 임기가 끝난다. 금융권 중량급 인사들에겐 말 그대로 '빅 마켓'이 열리는 셈이다.

철 마다 반복되는 정부의 인사 개입과 낙하산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주요 금융회사는 최고경영자 승계에 대한 규준과 원칙을 마련해두고 있다. 현 정부도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을 통해 이를 명문화했다.

그러나 최근 들려오는 금융권 안팎의 소문들은 정권 초기와는 결이 다소 다르다는 평가다. 일례로 청와대 주변에서는 이동걸 산업은행장이 KB금융지주 회장을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흘러나오고 있다.

파생결합상품(DLS) 불완전 판매 이슈로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한 우리금융지주의 차기 회장 후보로는 오갑수 글로벌금융학회장의 이름이 다시 언급된다. 오 학회장은 문재인 대통령 후보 대선 캠프에서 금융경제위원장을 맡았던 인물로, 지난해 지주 회장 선임 과정에서도 손 회장 다음으로 꼽히던 후보였다.

차기 수출입은행장 후보로도 현 정부와 연이 닿아있는 인물들이 유력하게 꼽히고 있다. 유력 후보인 최희남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은 관료 출신이지만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한양대 경제학과 동기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도 함께 고시반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후보로 급부상한 전병조 전 KB증권 대표 역시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을 지냈다.

내부 출신 김도진 IBK기업은행장의 후임으로는 일찌감치 현 정부에 연이 있는 관료 출신이 내정됐다는 소문이 금융가에서 번지고 있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2021년 3월 3연임을 끝으로 물러나면 그간 벼르고 있던 정부가 '고분고분한 인사'를 앉힐거라는 수근거림도 들린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유력한 차기 주자인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이 부당채용으로 김정태 회장의 뒤를 이을 수 없게 되면, 지주 회장 후보로는 막 행장 첫 임기를 소화한 지성규 행장 정도만 남게 된다"며 "김정태 회장 3연임에 반대하다 체면을 구겼던 정부가 구미에 맞는 인사를 심기 한결 편해지는 상황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현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돌면서 결국 '내 사람 챙기기'가 시작될 수밖에 없을 거란 풀이를 내놓고 있다.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논란 이후 국민 여론이 반으로 갈린 상황에서 청와대와 여당은 '피아식별'을 우선시 하는 듯한 목소리를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주변의 이런 움직임은 강화된 사외이사 제도와 맞물려 논란만 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미 상당한 수준의 정치적 독립성을 누리며 현직 최고경영자와 이해관계를 형성한 사외이사들이 고분고분히 정부에서 '점지'해주는 인사를 지지할 이유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정부와 금융회사 사이 인사를 둘러싼 괜한 논란은 주주 피해만 양산할 거라는 평가다. 지난해 1월 김정태 회장의 연임이 논란이 되자 하나금융지주 주가는 한달 새 5만5000원대에서 4만8000원대로 10% 넘게 급락했다. 지난 2월말 금융감독원이 함영주 당시 하나은행장의 연임을 반대했을 때에도 주가는 이후 일주일 간 불안한 하락세를 보였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9월 23일 07:0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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