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부 모두 찬양한 '벤처특례상장'…결국 리스크 전가 원흉으로
이재영 기자 | leejy@chosun.com | 2019.09.27 07:00
Edited by 현상경 부장 | hs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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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코스닥 활성화 염두 두고 도입
황우석 쇼크로 유명무실...신제윤 위원장이 되살려
임종룡-최종구 규제 완화 일변도 정책...결국 거품
'시장 신뢰 바닥인 지금이 제도 개선 적기'
왼쪽부터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부총리,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

왼쪽부터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

벤처기업 특례상장 제도에 대한 회의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특례상장 제도의 '기린아' 대접을 받던 신라젠이 무너진 데 이어 '국내 1호 특례상장기업' 헬릭스미스까지 시장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린 까닭이다.

이전까지 특례상장은 될성부른 기업을 미리 상장시켜 자본시장이 수익을 함께 향유하는 제도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조급하게 투자 리스크를 시장에 전가해 투기를 조장하고, 광범위한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는 원흉으로 지목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술력은 있지만 재무적으로 취약한 벤처기업에 자본시장을 통해 자금을 공급한다는 구상은 도입 초기부터 비판을 받았다.

2004년말 이헌재 당시 부총리가 이끌던 재정경제부는 코스닥 활성화 및 벤처기업 자금 공급을 위해 상장시 수익요건 심사를 면제하는 상장특례조항을 도입했다. 2005년 3월 한국거래소가 관련 규정 정비를 완료하며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다만 당시 금융시장은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 붕괴의 기억이 남아있던 시기였다. 정부는 결국 '자본잠식이 없을 것'이라는 조항을 없애지 못했다. 기술특례 본심사 전 1달동안의 사전심사 기간도 뒀다. 이를 통해 코스닥을 벤처·우량 중소기업 전문시장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제도가 본격 시행된 직후인 2006년 '황우석 쇼크'로 인해 줄기세포 관련주를 비롯한 바이오주들이 붕괴하면서 상장특례조항은 사실상 효력을 잃었다.

상장특례 1호였던 헬릭스미스(당시 바이로메드)는 2005년 12월 공모에서 280억원 모집에 1조6000억원의 청약증거금이 몰리는 흥행을 기록했다. 황우석 쇼크로 바이오가 무너지며 헬릭스미스 주가는 금세 공모가 1만5000원 아래로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엄습한 2009년엔 주가가 2000원대로 밀렸다. 당시에도 헬릭스미스는 개인 소액주주 비율이 54%에 달했다.

한 차례 고통이 더해지며 특례상장 제도는 사실상 사장됐다. 이후 몇몇 기업이 이를 활용해 코스닥에 입성했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연도별 기술특례 상장 기업 수

유명무실한 특례상장을 되살린 건 지난 박근혜 정부 초대 금융위원장인 신제윤 전 위원장이었다.

금융위원회는 2014년 4월 '기업 상장 활성화를 위한 규제 합리화 방안'을 통해 상장특례제도를 전반적으로 손 봤다. 당시 ▲자기자본 규제 완화 및 자본잠식 요건 삭제 ▲기술특례 업종제한 폐지 ▲사전심사 폐지 ▲기술평가기관 선정 및 통보기간 단축 ▲심사 수수료 할인 등 현행 특례상장 제도의 기반이 만들어졌다.

이 시기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없진 않았지만, '대세'에 묻혀버렸다. 창조경제를 앞세운 박근혜 정부는 코넥스 개설과 코스닥 활성화를 통해 치적을 쌓고 싶어했다. 당시 한국거래소는 상장 기업 수를 늘리기 위해 상장 영업조직을 만드는 등 혈안이 되어있었다. 증권사들은 더 많은 상장으로 더 많은 수수료 수입을 올릴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는 코스피지수는 물론 코스닥지수도 20% 이상 오르던 '대세 상승기'였기 때문에 투자자들로부터의 견제 목소리도 크지 않았다.

2015년 3월 취임한 임종룡 위원장은 전임 위원장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 결과 2015년, 2016년 단 2년간 22곳의 기업이 기술특례로 상장했다. 2017년 코스닥 급등 때 텐베거(ten begger;주가가 10배 오른 종목)를 달성한 바이오기업 신라젠이 기술특례로 상장한 것도 이 때의 일이다.

정권이 교체된 뒤에도 코스닥 시장과 상장특례에 대한 정부의 시선은 바뀌지 않았다. 혁신기업 육성을 외치던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은 2018년 11월 특례상장 기업을 현장방문하고, 12월 바이오제약기업 상장관리 특례 정책을 발표했다. 지난 6월에는 업종별 특례상장과 기술특례 바이오 기업에 대한 관리종목 지정 규제 완화 등 추가 규제 완화 정책을 내놨다.

정부의 지속적인 규제 완화와 육성 기조 속에 특례상장 제도는 '글로벌 선진 시장과 비교해도 특혜'라는 지적까지 받을 정도의 수준이 됐다. 문제는 이런 특혜를 통해 누가 이득을 봤느냐다. 2018년 상반기부터 이어진 약세장 속에서 특례상장주에 투자한 상당수 투자자들은 손해를 봤다.

당장 올해 상반기 상장한 특례상장사 7곳도 모두 공모가 대비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상황이다. 유일한 비(非) 바이오 상장사인 아모그린텍마저 현재 공모가 대비 -10%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임상에 실패한 신라젠은 말 그대로 주가가 최고가 기준 10분의 1이 됐고, 헬릭스미스 역시 24일부터 연속 하한가를 맞으며 연중 최고가 대비 67% 하락했다.

때문에 금융권 일각에서는 벤처전문투자자들이 떠안아야 할 투자 리스크를 이른 시점에 불특정 다수의 공모 시장에 풀어놓는 특례상장 제도에 의문을 가져야 할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문투자자 영역으로 남겨놔야 할 시장을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성급하게 풀어놓는 바람에 자본시장의 신뢰도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기업공개 담당 임원은 "국내 시장엔 일반투자자 20% 의무공모 제도가 남아있기 때문에 벤처기업 투자 리스크가 일반투자자들에게 전이되지 않을 수 없다"며 "잇따른 임상 3상 실패와 수익성 모델 확립 실패로 기술평가·성장성평가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바닥인 지금이 그간 완화 일변도였던 특례상장 제도를 손 볼 적기라고 본다"고 말했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9월 26일 07:0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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