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투자은행 VIP 고객. '대기업'에서 '사모펀드'로
양선우 기자 | thesun@chosun.com | 2019.10.01 07:00
Edited by 현상경 부장 | hs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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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올해 M&A 시장에서 존재감 없어
대기업 빈자리 사모펀드가 채워
새모펀드간 거래도 빈번해지면서 중요도 증가
수수료 많이 주는 사모펀드들 외국계 IB의 VIP로

외국계 투자은행(IB) VIP 고객이 대기업에서 사모펀드로 옮겨가고 있다. 대기업이 M&A 시장에서 사라진 자리를 사모펀드가 메우면서 이들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하고 있다.

이에 과거 인적네트워크에 의존했던 대형 글로벌 IB들도 체계적으로 사모펀드 고객 관리에 나섰다. 주요 사모펀드들을 전담 관리하는 직원을 두고 시스템을 구축해 이전보다 철저하게 관리하는 체제를 마련했다.

사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관리할 필요성이 크진 않았다. 주요 외국계 IB는 사모펀드 사관학교라 할 정도의 주요 사모펀드 인력이 이들을 거쳐갔다.  IB나 사모펀드 인력 대다수가 어차피 같은 학교 동문이거나, 직장에서 선후배로 일했던 관계로 서로에 대해 친분이 있다. 이런 네트워크를 통해 일감을 따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사모펀드들 간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사적인 관계를 통해 일을 맡기는 사례는 크게 줄어들었다.

한 외국계 IB 관계자는 “과거엔 같은 학교 출신이나 직장 동료라는 인적 네트워크에 치중해 관리를 했다면 이제는 고객으로서 전담하는 팀을 만드는 방식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라며 “사모펀드간의 경쟁강도가 심해지면서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일을 주는 일은 점점 줄어 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경향은 대형거래를 사모펀드들이 주도하면서 더욱 심해지고 있다. 올해 나온 대다수의 조단위 거래는 사모펀드들의 경쟁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국내 최대 거래가 예상됐던 10조원 규모의 넥슨 M&A도 사모펀드들 간의 경쟁구도로 형성됐다.

칼라일, KKR 등 굴지의 글로벌 사모펀드뿐 아니라 IMM, 스틱 등 국내 사모펀드들도 이제는 조단위의 블라인드 펀드를 가지고 있어서 어지간한 대형 거래는 자력으로 진행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과거 외국계 사모펀드 정도가 IB들의 고객이었다면 국내 사모펀드들이 IB들의 주요 고객으로 자리메김하면서 IB들 입장에선 관리해야 하는 사모펀드가 늘었다.

이에 반해 대기업의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일감몰아주기 이슈를 피하기 위한 계열사 매각을 제외하곤 이렇다할 M&A 활동이 없다. 외국계 IB들은 과거에 대기업 관련 딜을 놓치면 홍콩에서 불호령이 떨어졌지만, 올해엔 거래 자체가 없다 보니 상대적으로 대기업의 중요도가 떨어졌다.

더욱이 최근에는 사모펀드들간의 사고파는 세컨더리 마켓이 성장하고 있다. 파는 쪽도 사모펀드, 사는 곳도 사모펀드다 보니 거래에 참여하기 위해선 사모펀드를 잡아야 한다.

IB들이 사모펀드에 목을 메게 된 또다른 이유 중 하나는 자문사 비용을 후하게 주는 점도 꼽힌다. 대규모 M&A 팀을 꾸리고 있는 대기업과 달리 사모펀드들은 소수정예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기업이야 자체 인력을 통해 M&A 전반을 검토할 수 있는 반면 사모펀드들은 IB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IB들에 충분한 대우를 해야 다양한 거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대기업은 해가 갈수록 수수료를 박하게 주고 있다.

한 M&A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사모펀드는 5명 내외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어 이들이 주요 딜에 참여하기 위해선 자문사의 서포트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대기업뿐만 아니라 다른 사모펀드들 보다도 높은 수수료를 지급한다”라며 “당연히 자문사들에겐 이들이 1순위 고객일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다양한 거래에 사모펀드들이 참여하다 보니 드러나지 않게 궁합이 잘 맞는 IB와 사모펀드들도 생겨나고 있다. 사모펀드들도 몇차례 거래를 통해서 신뢰가 쌓인 IB에 본인들의 포트폴리오 회사 매각자문을 맡기는 일이 빈번해졌다.

실제 사모펀드들은 셀러(seller)로 나설 때 더욱 신중하게 IB를 선택한다. 일례로 한 사모펀드는 매각자문사 선정시 전체 외국계 증권사 대표와 IB부문 대표의 겸직여부까지 살펴보기도 한다. 외국계 증권사 대표가 IB부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거래 성공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서다.

자연스레 IB들도 자문을 자주 맡기는 사모펀드에 더욱 신경쓰게 된다.

IB들 입장에서도 사모펀드는 까다로운 고객이다. 일단 사모펀드가 보유한 회사의 매각주관으로 나섰다가 실패할 경우 그 부담이 크다. 일례로 헬스밸런스 매각에 나선 앵커PE는 매각에 실패하자 주관사를 교체하고 재매각에 나섰다. 아무리 끈끈한 인적 네트워크로 엮여 있어도 딜에 있어선 철저하기 때문에 한번의 실패도 용납하기 어려운게 업계 현실이다.

한 외국계 IB M&A 담당자는 “거래성사 가능성이 높은 곳과 일을 해야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다 보면 몇몇의 사모펀드들과 지속적으로 딜을 진행하는 경우가 생긴다”라며 “다만 이 세계가 냉정하다 보니 한번 실패하면 두번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IB들도 사모펀드간 거래에선 더욱 터프하게 딜을 진행할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9월 25일 07:0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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