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태평양 중재부문 '스타' 변호사 이탈, 로펌들 설왕설래
차준호 기자 | chacha@chosun.com | 2019.10.08 07:00
Edited by 현상경 부장 | hs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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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부문 대표 김갑유 변호사 퇴사 후 부티크로펌 세워
태평양 이례적으로 양 사 '협업' 보도자료
경쟁사들, 세대교체 등에 따른 성과 배분 원인으로 해석
태평양 "국제중재 업무를 확대하기 위해 합의된 최선의 방안"

법무법인 태평양의 핵심 인력인 김갑유 중재부문 대표 변호사가 퇴사 후 독립(부티크) 로펌을 차린다. 태평양은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내면서 상호간 합의에 따른 결별임을 설명했다. 아울러 향후에도 양사간 밀접한 파트너십을 유지해 시너지를 거둘 것이라 밝혔다.

반면 경쟁로펌들 사이에서는 김갑유 변호사가 국내에서 중재 분야를 개척했다고 평가받은 인물이어서 그의 공백을 메우기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다. 사실상 인력이탈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태평양은 지난 9월 보도자료를 배포해 김갑유 변호사(Kevin Kim·사법연수원 17기)가 국제중재 전문 로펌 설립을 위해 회사를 떠난다고 밝혔다. 로펌업계에선 기존 인력의 퇴사 및 개업 소식을 전 직장에서 알린 드문 사례로 회자됐다.

김 변호사는 지난 1996년 태평양에 합류한 이후 태평양 중재팀을 지금의 위치로 키운 인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국제중재 분야에선 김범수 KL파트너스 대표 변호사와 함께 국내에서 실무 및 사례 영역 자체를 만들어낸 권위자이기도 하다. 중재부문에서는 이른바 '스타' 변호사다.

그가 승소를 이끌어 낸 사례들도 다양하다. 분쟁금액만 당시 4조원에 이르렀던 현대오일뱅크 소유권에 대한 초대형 국제중재건을 완전한 승소를 거뒀다. 이를 통해 국제중재 전문지인 GAR(Global Arbitration Review)로부터 올해의 중재대상(Win of the Year)을 받기도 했다. 최근 1조원대 런던중재법원 사건에서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대우자동차, 삼성자동차, 현대자동차 등 각각의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사건을 도맡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바 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김갑유 변호사와 태평양 중재 팀은 미국이나 다른 현지의 로펌 없이도 국내에서 단독으로 다양한 중재 수임을 맡을 수 있는 트랙레코드를 쌓아왔다.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Investor-State Dispute)인 론스타 사건과 스위스 승강기 업체 쉰들러와의 ISD 분쟁에서 모두 정부 측 대리인을 맡아 해외 로펌을 상대하고 있다.

덕분에 로펌들 사이에서도 태평양은 국내 대기업의 해외분쟁에선 가장 먼저 찾는 곳으로 평가 받아 왔다. 인력 규모 측면에선 김앤장법률사무소의 위상도 만만치 않지만, 글로벌 로펌과 국내 로펌 간 분쟁 시 정책적으로 글로벌 로펌을 담당하는 김앤장의 특성으로 인해 국내 기업 자문은 태평양이 큰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이를 가능하게 만든 인물이 회사를 떠나는 터라 경쟁로펌들은 큰 관심을 보이면서도 이유에 대해 여러 해석을 내놓고 있다.

[사진자료]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국제중재소송팀

김갑유 태평양 국제중재팀 대표 변호사(좌측에서 네번째)

일단 회사 내 수익 분배 문제 혹은 세대 교체 기조와 연계된 것 아니냐는 시각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태평양의 '성장통'으로 판단하는 해석도 있다.

태평양 김성진 대표변호사의 임기 만료는 내년도까지다. 내부에서는 향후 세대 교체 기조가 사실상 확실시 된 상황이다. 현재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은 이준기 변호사(22기),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은 이형석 변호사(21기)가 경영 수업에 한창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다보니 김갑유 변호사 입장에서는 차기 경영진(매니징 파트너) 합류가 불투명해졌으니 회사를 떠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인 셈이다. M&A 등 태평양 내 주축 파트너 변호사들이 김갑유 변호사를 따라나설지 여부는 로펌들 사이에서는 초유의 관심거리다.

중재업무 특유의 구조적 문제가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진입장벽이 큰 중재 부문에선 글로벌 차원의 네트워킹은 필수적이다. 이로 인해 변호사 개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회사 차원의 금전적·비금전적인 지원 없이는 자리를 잡기 쉽지 않은 구조다. 그러니 로펌으로서는 오랫동안 중재팀에 리소스를 투입한 만큼, 거둬들이는 성과를 '회수'의 시각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중재팀 소속 구성원 입장에서는 국내 중재자문을 거의 과점하다시피 했으니 좀 더 큰 폭의 분배를 요구할 수 있다.

즉 중재팀 성과에 대해 '회사'와 '구성원'이 생각하는 공과배분 관련 인식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중재업무가 넓게보면 M&A뿐 아니라 진술보장(W&I) 건설·해상·항공 등 모든 분야와 연계된 영역이다보니 중재 역량을 갖추는 건 사실 모든 부티크 로펌의 지향점이기도 하다"라며 "김갑유 변호사 입장에서도 친분있는 김범수 KL파트너스 대표 변호사가 성공적인 선례를 보여줬다보니 독립에 대한 욕심도 강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퇴사 시기마저 애매하다보니 경쟁로펌들의 관심은 더 커졌다.

김갑유 변호사 퇴사 시기는 마침 그가 앞장 서 활약해야 할 세계변호사협회(IBA) 서울 총회(지난달 27일 종료)와 겹쳤다. 이로 인해 태평양 내부에서는 김갑유 변호사 퇴사에 대한 공식 통보 직전까지 일제 함구령이 내려졌다. 중재팀 내 일부 변호사를 제외한 다른 변호사들도 당일에서야 해당 소식을 알게 됐다는 후문이다. 태평양은 과거 사모펀드(PEF) 팀 주요 인력이 한꺼번에 김앤장으로 이적하면서 타격을 입은 바 있는데 이번에도 유사한 상황이라 보도자료를 내 미리 진화에 나선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반면 태평양 측은 이를 근거 없는 해석이라고 설명했다.

태평양은 이번 과정이 회사와 김갑유 변호사 양 측의 성장을 위한 최선의 방안이라고 밝혔다. 특히 국제중재 부문의 경우, 국내에서 팀을 운영할 경우 기존 태평양의 대기업 고객과의 업무 중복 문제 탓에 글로벌 고객사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김갑유 변호사의 독립은 오히려 사세 확장 차원에서 합의된 결정이며, 현행 법률상 법무법인이 다른 법무법인의 지분을 보유하거나 조인트벤처(JV)형태로 사무소를 운영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파트너십 형태로 운영하게 됐다고 밝혔다.

태평양 관계자는 “해외에선 신생 법인이 태평양(BKL)의 오피스를 공유하고 국내 업무에 일부 김갑유 변호사가 조력하는 등 양사 간 협업은 꾸준히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보도자료 배포 역시 김갑유 변호사의 업계 내 위상과 향후 파트너십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다만 해석 여부와 무관하게 스타급 변호사의 퇴사로 인해 태평양으로서는 '공백'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최근 들어 중재 분야가 로펌 내 주요 수익원으로 부상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경쟁로펌들의 도전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최근 로펌들 사이에서는 중재부문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수년전 엘리엇과 삼성전자 간 분쟁은 물론,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재무적투자자(FI)간 갈등, 두산 DICC와 IMM PE간 소송 등 민간영역에서 중재부문의 파이는 확대됐다. 정부 차원의 ISD 자문도 로펌 입장에선 '큰 장'으로 분류된다. 이에 광장, 세종, 율촌 등 경쟁 로펌들도 인력 확충에 공을 들이며 팀 규모를 키우는 상황이다. 로펌간 인력 영입전도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더구나 중재 분야는 팀을 제대로 꾸리는 것 조차 쉽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재를 맡기 위해선 일반적인 소송 절차에 대한 이해는 물론 M&A 경험도 쌓여야 한다. 국제 중재의 경우, 주요 인력이 ICC(국제상업회의소), LCIA(런던국제중재법원), SIAC(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 HKIAC(홍콩국제중재센터) 등 유력 기관에 중재위원인지 여부에 따라 업무의 양과 질도 천차만별이다. 대형 법무법인에서 십 수년간 경험을 쌓지 않고서는 중재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기 쉽지 않다. 지난 2015년엔 세종 출신의 중재 전문가(김범수·김준민·이은녕)를 주축으로 KL파트너스가 설립됐고, 이 변호사들이 핵심 고객인 론스타 등을 수임하며 세종이 타격을 받기도 했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10월 04일 07:0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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