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매매 '생계형 지정' 분수령…'황금알 거위' vs '천덕꾸러기'
입력 2019.10.08 07:00|수정 2019.10.10 09:39
    중고차 업계, 중기 적합 만료 후 생계형 지정 추진
    단체는 생존권 주장…지정시 대기업 진출·확대 제약
    기존 사업자도 영향…참여자간 의견 합치는 불투명
    •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앞두고 중고차매매 업계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현재는 대기업의 움직임에 제약이 없지만 섣불리 중고차 매매에 손을 댔다가 생계형 적합업종이 되면 사업을 늘리기도 접기도 난처한 상황에 몰릴 수 있다.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느냐에 따라 기존 사업자의 수익성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국내 중고차 시장은 지난 10년간 두 배 이상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매년 거래되는 중고차는 400만대에 육박하고, 거래 금액은 30조원대에 이르렀다. 중고차거래 플랫폼이 다양해졌고, 시장에 직접 참여하고자 하는 금융사도 늘고 있다. 국내 경기 침체, 합리적인 소비문화 확산으로 앞으로도 이 같은 추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대기업들은 일찌감치 중고차 매매업의 성장세를 점쳤지만 성과를 내긴 쉽지 않았다.

      일단 2013년 중고자동차판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고, 2016년 다시 3년의 기간이 연장됐다. 대기업은 점포수를 동결해야 했고, 시장 신규 진입도 어려웠다. 이에 SK그룹은 사업을 정리하기도 했다.

      이후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기한은 올해 2월 만료됐다.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이에 앞서 동반성장위원회(동반위)에 생계형 적합업종 추천을 요청했다. 동반위는 실태조사 및 의견수렴을 거쳐 추천 여부를 결정하는데 결론은 다음달 중 나올 예정이다.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이 적합업종 지정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중고차 매매업계에선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요구하고 있다. 95% 이상이 영세하게 사업을 하는 상황에서 대기업이 발을 들일 경우 생존권을 위협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와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양대 단체는 8일 간담회를 열어 대응책을 모색할 예정이다.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될 경우 업종, 품목마다 다르겠지만 중소기업 적합업종 때처럼 확장·진출 규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2일 제1호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서점업’에선 5년간 대기업의 인수·개시 또는 확장이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서점업은 소상공인이 약 90%에 달한다.

      중고차 매매업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이와 유사한 규제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이 새로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기도,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올해 정관을 바꿔 ‘온라인 중고차 거래 관련 일체의 사업’ 목적을 추가한 현대글로비스부터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어려워진다. 기존에 사업을 하던 곳이라면 현상 유지만 해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시 대기업의 확장·진출은 쉽지 않을 것이고, M&A 역시 소비자 후생 및 관련 산업에의 영향을 고려하여 불가피하다고 인정될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승인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의 범위는 좁지 않다. 관련 규정에 따르면 대기업엔 ‘중소기업이 아닌 기업’, 즉 중견기업 이상은 모두 포함된다. 평균 매출 1500억원 이하, 자산규모 5000억원 이하를 동시에 충족하지 않는 곳은 모두 제약을 받는다. 웬만큼 이름난 기업은 발을 붙이기 어렵다.

      투자회수를 꿈꾸는 사업자에 대한 영향도 예상된다. 대기업의 진입이 막히면 추후 매각과정에서 인수후보를 찾는데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한앤컴퍼니의 중고차 1위업체 SK엔카(직영몰, 현 K Car)를 인수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향후 투자회수를 위한 매각이 예외적인 M&A로 인정 받을지는 미지수다.

      과거 소상공인과 대기업이 '접점'을 찾은 사례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특수한 상황이었다. 음식점업의 경우 중소기업 적합업종 기간 만료 후 생계형 적합업종 신청 전에 단체와 대기업들이 상생협약을 맺었다. 제과점업, 메밀가루 등에선 생계형 적합업종 신청 후 시장 의견을 취합하는 과정에서 공감대가 형성되며 신청이 취소되기도 했다.

      이들은 성장세가 주춤하거나 대기업과 척을 져 유리할 것이 없는 경우였다. 성장세가 크고, 먹거리 경쟁이 심화하는 중고차 시장에서 단체와 대기업간 의견 조율이 원활하게 이뤄질 지는 미지수다.

      현재로선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기간이 만료된 현재로선 대기업들이 무엇을 하든 법적으로 제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이 무산되면 앞으로도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