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알 낳던 부동산신탁, 레드오션化 '불 보듯'...'책임준공형' 쏠림 뚜렷
이시은 기자 | see@chosun.com | 2019.10.16 07:00
Edited by 이재영 차장 | leej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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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입형' 점령한 기존 신탁사…'책임준공형'이 대안
PF조달 '후광효과'…금융계 신탁사가 계약 쉬워
신규 3사 포함 금융계만 '8곳'..."수수료 악화 불가피"

국내 부동산 경기 침체가 연일 심화되는 가운데 ‘신규 3사’ 진입을 앞둔 부동산 신탁업계가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쟁점은 신탁사가 시공 책임 리스크를 지는 비차입형 상품인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이하 책준형 신탁)이다.

책준형 신탁은 보통 시공사가 부담하는 책임준공 의무를 신탁사가 부담하는 방식이다. KB부동산신탁·하나자산신탁 등 금융지주계열 신탁사들이 최근 2년간 이를 통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신규 3사 진입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며 수익성 악화 우려가 수면위로 드러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1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 7월 본인가를 받은 대신자산신탁에 이어 연내 출범을 목표로 하는 한국투자부동산(한투부동산신탁), 신영알이티(신영자산신탁)는 책준형 신탁을 중심으로 주요 매출 구조를 짜나갈 것이 유력히 전망된다.

신규 출범사를 상대로 금융당국이 2년간 차입형 영업을 제한하기로 한 게 우선 꼽히는 이유다. 여기에 더해 업계에서는 '빅4'(한국토지신탁·한국자산신탁·코람코자산신탁·대한토지신탁)이 차입형 신탁을 점령한 시장 상황을 주요 배경으로 분석한다.

최근까지 부동산 신탁업은 시장 지위와 계열에 따라 세 가지 영업 형태가 성장해왔다. 신탁사가 고객 토지의 소유권을 이전 받아 사업비를 직접 조달하는 '차입형 방식', 분양 리스크를 분리하고 신탁사가 시공 관련 위험 부담을 짊어지는 '책준형 방식', 리스크가 적고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비차입형 방식'이 그것이다.

2019.10.11_황금알 낳던 부동산신탁, 레드오션化 '불 보듯'...'책임준공형' 쏠림 뚜렷

지난 2017년 시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책준형 상품은 KB, 하나 등 금융권 신탁사들의 성장세에 핵심 기반이 됐다.

비차입형 시장은 자본규모가 작은 다수 독립형 신탁사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차입형 시장은 '빅4'가 과점하고 있다. 그 사이의 중위험시장이 바로 책준형 시장이다. 책준형의 성장세에 힘입어 관리형 토지신탁 시장의 전체 신규수주액은 지난해 2104억원을 기록하며 약 2년만에 두 배 가량 몸집을 키우기도 했다.

사업 형태에 따라 수익성도 차이가 난다. 통상 차입형 방식은 3.5~4%까지의 수수료를 보장받는다. 비차입형은 0.1~0.2% 수준의 '박리'(薄利)다. 책준형 방식의 수수료는 2% 내외로 그 중간 수준이다. 시공사보다 리스크를 더 지는 대신 일반적인 비차입형보다 높은 수수료를 보장받는다. 일종의 시행사 역할까지 겸해 레버리지를 직접적으로 일으키는 차입형에 비해서는 낮다.

신규수주액 기준 차입형 시장의 비중은 여전히 50%대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더구나 합산 시장점유율 40% 내외(영업수익 기준)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토지신탁과 한국자산신탁의 영업수익은 여전히 금융권 계열사가 넘보기 힘든 상태다. 차입형 사업을 영위하는 곳은 상대적으로 업력이 길고 신탁업 자체가 그룹 또는 회사의 주요 먹거리였던 경우가 상당수다. 이들은 구축된 차입형 시장 네트워크를 이용해 여전히 높은 시장 지위를 누린다.

'든든한 모회사'를 등에 업은 금융지주계열 신탁사가 책준형을 핵심 사업으로 밀고 있는 배경에는 이처럼 차입형으로 뻗어나갈 수 없는 시장 상황이 자리하고 있다는 평가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부동산신탁은 철저하게 영업과 인력으로 돌아가는 시장이라서 다른 방식을 시도하는 건 쉽지가 않다” 며 “다른데 줄 특별한 이유도 없으니, 차입형 큰 건의 90%는 빅4(한국토지신탁•한국자산신탁•코람코자산신탁•대한토지신탁)가 다 한다고 보면 된다”고 귀뜸했다.

금융권 계열사들의 구조적인 특징도 주요한 이유다. 차입형은 안정감 있는 자본과 레버리지를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사업 방식인데, 지주 눈치를 봐야하는 이들 신탁사 특성상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지주계열 4사의 경우, 지주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과 부채비율 등 당국의 엄격한 감시 속에 경기 불확실성까지 겹쳐 자본건전성 올리기에 급급해 차입형 사업 확장은 애초에 선택지에서 제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면 PF조달의 ‘후광효과’로 건수를 들여와 업계에서는 속칭 “잘 읽어준다(계약하기 쉽다)”는 평을 듣는 책준형은 금융권 계열사들에겐 ‘손 쉬운 먹거리’로 분류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책준형 부동산신탁사들의 경쟁 격화는 불 보듯 뻔한 형국이다. 책준형 시장이 아무리 호황을 보이고 있다 해도, 신규 3사의 진입을 감안했을 때 무려 8곳에 달할 금융계 신탁사 매출까지 떠받칠 정도는 아니라는 게 금융시장의 개략적인 평가다.

한 부동산신탁 연구원은 “경쟁이 심화되면 수수료부터 가장 먼저 떨어질 것"라며 "책준형에 들어오는 시공사는 대부분 신용등급이 낮은 경우가 많아 오히려 다수의 사업자가 우발채무 리스크만 더 지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지난 7월 금융당국이 부동산신탁에 관한 신용공여 법령해석을 새롭게 내놓으면서 영업 창구마저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부동산신탁사가 증권사 대주주의 특수관계인인 경우 증권사 사모사채 인수확약과 책임준공 확약은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해당 내용은 아직까지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진 않지만 계열사 내 시너지를 직접적으로 막을 수도 있는 위협 요소로 지목된다.

또다른 부동산신탁 연구원은 “신용공여가 막힌다 하더라도, 주택시장이 어려워 차입형 먹거리도 줄어드는 상황에 당장 그쪽으로 뛰어들 플레이어는 없을 것”며 “신규 3사가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하면 좁은 시장을 두고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10월 11일 11:28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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