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태엽 되감는 당국…금융시장 역동성 저하 우려
입력 2019.10.18 07:00|수정 2019.10.21 09:18
    혁신 외치던 당국, 잇딴 사고에 규제 강화 선회 움직임
    파생상품·사모펀드·증권사 등 금융업계 전반 위축될 듯
    금융시장 발전 선순환 구조?...정책 목적 달성도 난망
    • 금융시장이 잇따른 대형 악재로 긴장하고 있다. 혁신을 외치던 금융당국은 다시 규제와 관리 강화에 힘을 쏟으려는 모습이다. 금융업계의 생동감이 위축됨은 물론 금융시장 발전을 통한 선순환 구조 형성을 꾀하던 정부의 청사진도 어긋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금융당국의 지상 과제는 '혁신'과 '규제 철폐'였다. 데이터 경제 활성화, 모험자본 확산, 핀테크 강화 등 다양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문턱을 낮췄다. 금융위원회는 정부 부처 중 가장 적극적으로 ‘규제 샌드박스’를 활용하기도 했다.

      지난 8월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 DLS) 대란 사태가 불거지며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었고, 불완전판매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됐다. 4월 금융소비자 보호 종합방안을 내놨던 금융위로서는 뼈아플 수밖에 없었다.

      악재가 이어지다보니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선 금융감독당국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규제 철폐를 앞세우긴 어렵다. 벌써부터 고삐를 다시 죄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 10일 DLF 사태 관련 위법사항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다음달 소비자보호 조치 및 금융회사 내부통제 강화 방안을 내놓기로 했다. ‘소비자 권익 침해’를 민감하게 생각하는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보다 강력한 감독 권한을 행사할 것이란 예상도 많다.

      라임자산운용은 이달 대규모 펀드 환매 중단 사실을 알렸다. 코스닥 시장 침체에 발목 잡혔다. 업계 1위 운용사가 펀드 만기에 돈을 돌려주지 못하면서 시장 전반의 불안감은 커졌다.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의 사모펀드(PEF) 투자 의혹은 몇 달 째 정가를 달구고 있다.

      전문투자형과 경영참여형 사모펀드 모두 악재에 시름하는 셈이다. 사모펀드 규제 일원화를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빛을 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애초에 ‘지금까지 큰 사고가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전제에서 시작된 논의다. 지금처럼 부작용이 나타나고 여야 정쟁이 심한 상황에선 통과 가능성이 희박하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10일 “최근 악재가 반복돼서 나오다보니 투자자 보호 측면도 더 들여다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증권사들은 부실 투자와 도덕적 해이가 또 도마에 올랐다. KB증권은 호주 장애인 아파트 투자 손실이 예고됐고, 하나금융투자는 불공정·선행매매 혐의로 금감원 특별사법경찰의 1호 수사 대상이 됐다. 불법 신용공여, 차명 거래 등 문제들도 이어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당국으로서도 감독강화 기조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금감원이 너무 자주 증권사를 들락날락하는 것 아니냐는 푸념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불평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문제는 이런 움직임이 금융시장의 역동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 사례를 확대 해석해 규제할 경우 금융사의 활동을 제약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과거와 같은 관치금융의 시대로 회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금융당국 외부 자문위원은 “DLF에 앞서 이미 금리 연동형 상품이 많았고 고객들도 살 능력과 이해도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며 “법적 문제가 될만한 경우가 없지는 않겠지만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수사기관, 감독당국이 나서면 자본시장에 남아날 상품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DLF와 직접 연관은 없지만 금융위는 5월 파생상품시장 발전방안을 내놓는 등 시장 친화적인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가 작심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국이 지금보다 자본금 기준 등을 완화해주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사모펀드 업계는 보다 직접적인 타격이 예상된다. 자금 모집이 어려워질 것이고, 펀드 등록 등 절차도 보다 깐깐해질 수밖에 없다. 간신히 지워가던 부정적 인식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한 외국계 IB 관계자는 “그 동안 사모펀드 업계는 정부의 규제 완화 기조 속에 빠르게 성장해왔다”며 “일련의 사건들로 사모펀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생기거나 역행하는 제도가 나오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당국은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혁신성장’ ‘실물경제’ ‘모험자본 공급’ 등 화두를 제시해왔다. 규제가 강해지고 투자 심리가 악화하는 상황에선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그간 금융위의 큰 화두는 사모펀드, 코스닥 시장 등을 키워서 중소·중견 기업에 모험 자본이 들어가게 하겠다는 것이었다”며 “DLF 사태 등으로 인해 규제가 강화되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