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O 2020 회의론 부상...고도화 베팅한 SK이노·에쓰오일 '부메랑' 되나
입력 2019.10.21 07:00|수정 2019.10.22 09:28
    경유 수요급등 대비해 설비고도화 1조 투자
    규제시행 임박해 곳곳에 '맹점' 드러나
    IMO 2020 효과 없으면 주가에 이중악재
    • 지난 7일,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이 SK울산콤플렉스 내 감압잔사유탈황설비(VRDS) 건설 현장을 찾았다. SK이노베이션이 IMO 2020에 대비해 내놓은 '선제적 대응' 사례로 꼽히는 현장이다.

      IMO 2020은 내년 1월1일부터 선박연료유 황 함유량 상한선을 3.5%에서 0.5%로 강화하는 규제다. 174개 회원국을 둔 국제해사기구(IMO)가 2017년 발표한 '해운업 역사상 가장 강력한 환경보호 규제'로 회자된다.

      국내 정유사 중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이 각각 1조원을 투자, 설비고도화율을 높여 대응했다. 원유 정제설비 내 탈황설비 비중을 높이는 것으로, 황 함유량이 낮고 부가가치가 높은 경유 수요증가에 대비한다는 계획이었다.

      SK울산콤플렉스 내 VRDS가 가동을 시작하면 SK이노베이션은 글로벌 정유사 중 최초로 경유 생산 전용설비를 갖추게 된다. 지난해부터 '선제투자'와 '세계 유일'을 내세워 행사도 가져왔다. 에쓰오일과 함께 IMO 2020 수혜주로 꼽히며 정유화학 다운사이클에도 주가 프리미엄을 누렸다.

      김준 사장이 현장을 찾아 "SK이노베이션의 심장"이라고 치하한지 하루만에 임기택 IMO 사무총장이 "IMO 2020 규제 시행의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외신이 보도하면서 찬물을 끼얹은 모양새가 됐다. 금융투자업계 내에서도 IMO 2020 회의론이 부상하며 수혜론의 맹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회의론은 'IMO 2020으로 경유 수요가 급등할 수 있느냐'로 요약된다. ▲선박연료유를 제외하고 다른 부문에서 경유 수요가 줄어들거나 ▲규제가 연기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세계 유류소비 중 자동차수요 비중은 44%로 절반에 달하지만, 선박수요 비중은 약 4.75%다. 완성차업체는 내년부터 시작될 유럽 배기가스 규제강화에 대비해 디젤(경유)차량 비중을 줄이고 있다. 규제수준 미충족시 수천억원 규모 패널티가 발생한다. IMO 2020으로 인한 신규수요가 상쇄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규제 자체가 예정대로 시행되지 않을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 2017년에도 IMO가 선박평형수처리장치(BWMS) 규제 도입을 기존 2022년에서 2024년으로 연기한 전력이 있다. 증권사 한 연구원은 "당시 BWMS 설비투자를 늘렸던 기업이 규제 연기로 도산했다"며 "IMO가 이전에도 환경보호 규제를 내놨다가 시행이 임박해 연기한 전력이 있어 IMO 2020을 바라보고 고도화율을 높였다면 불확실성에 투자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IMO가 UN 산하기구이지만, 규제 강제성이 부족하다는 점도 거론된다. 미국을 시작으로 네덜란드, 인도 등 국가가 규제시행을 연기하거나, 비준을 거부했다. 2020년까지 대응할 수 없다고 공식입장을 낸 선급협회도 있다. 8일 보도된 임기택 IMO 사무총장의 발언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이 IMO 2020에 건 기대감과 그간의 수혜가 거꾸로 부담요인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분기 컨퍼런스콜에서 실적악화에도 1600원의 중간배당을 발표했다. 전년도와 동일한 수준이다. 당시 연말배당 관련 질문이 들어오자 "주주친화책을 이어가겠다"고 답했다. 에쓰오일 역시 2017년 이후 배당수준을 한해 8000억원, 6100억원 수준으로 늘려 재무부담이 가중된 상태지만, 올해 중간배당을 실시했다.

      이런 가운데 IMO 2020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주가에 이중부담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양사의 주력사업은 정유와 석유화학 부문이다. 석유화학 산업은 업계 전반이 중국발 공급부담으로 실적이 크게 악화했다.

      증권사 한 연구원은 "정유 부문에서 수익성을 회복하지 못하면 당분간 배당여력이 악화할 것으로 봐야 한다"며 "배당까지 줄이면 정유 부문 수혜 기대감으로 얻었던 프리미엄 이상으로 토해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정유4사 중 나머지 두 곳인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는 기존 고도화설비로도 수요상승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지만, 업황 하락에 대한 우려는 4개 기업 모두에 동일한 상황"이라고 했다.